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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로 보는 인문학 - 영화 미나리를 통해 본 '정착을 위한 힘겨운 투쟁'

  • 웹출고시간2021.03.15 17:54:49
  • 최종수정2021.03.15 17:54:49

안소현

정치학 박사 / 지역문화커뮤니티 '함께' 대표

어려서는 습지에 흐드러진 미나리꽝을 쉽게 볼 수 있었다.

사실 어둑어둑한 습지에서 자란 미나리는 고급스러운 채소와 거리가 멀었다.

또 씁쓸한 맛과 특유의 짙은 향 때문에 젓가락으로 건져냈던 야채.

아마 어린아이 입맛을 사로잡기엔 미나리 향이 너무 강했던 것 같다.

미나리가 좋아진 건 40대 이후로 기억된다

씁쓸한 맛과 특유의 향이 어느 정도의 인생을 경험한 내 삶의 여정과 비슷해서 일까.

미나리는 다른 야채와 달라서 어느 재료와 섞여도 자신의 식감과 향기를 포기하지 않는다.
TV와 인터넷을 떠들썩하게 하는 영화 미나리가 궁금해졌다.

영화에 대한 세계적인 평판과 주연배우들이 한국인이라는 자부심 때문이었을까.

아무래도 이 영화는 영화관에서 봐야 할 것 같았다.

그리고 저예산이지만 훌륭한 결과물을 만들어 낸 영화인들에 대해 최소한의 예의를 갖추고 싶었다.

3월 3일 개봉 일에 맞춰서 집 근처 영화관에 갔다.

관객이 어느 정도는 있으리라고 기대했는데 예상과 달리 관객은 다섯 명 정도. 넓은 영화관이 썰렁해서 마음이 씁쓸했다.
잔잔한 음악(rain song)으로 시작하는 영화 '미나리'는 렘브란트의 초상화에서 볼 수 있는 빛과 그림자의 음영을 넣은 한 소년의 얼굴을 클로즈업한다.

영화는 한국에서 이민을 가서 1980년대 캘리포니아에서 병아리 감별사로 일하던 제이콥(스티브 연)의 가정이 미국 아칸소로 이주하면서 시작된다.

제이콥은 아칸소의 기름진 땅에서 채소를 기르겠다며 허허벌판에 트레일러 집을 마련하고 땅을 개간하지만 모니카(한예리)는 불확실한 미래와 아이들 관리 때문에 캘리포니아로 돌아가고 싶어 한다.

제이콥은 앤과 데이빗을 돌보기 위해 한국에 있는 모니카의 엄마 순자(윤여정)를 초청한다.

순자는 고춧가루, 멸치, 데이빗의 선천성 심장병을 치료하기 위한 한약, 화투, 미나리씨 등을 가지고 온다.

손자인 데이빗은 TV만 보고 화투를 치며 남자 팬티를 입는 할머니와 함께 지내는 것이 달갑지 않았고 번번이 무례하게 굴어서 아빠에게 꾸중을 듣게 되지만 오히려 자신을 감싸는 할머니에게 마음을 열게 된다.
할머니는 도랑의 끝자락 웅덩이에 미나리를 씨를 뿌리고 데이빗과 함께 미나리의 성장과정을 지켜본다.

"미나리는 참 좋은 거란다. 아무 데서나 잘 자라고 부자든 가난하든 다 먹을 수 있어. 맛있고 국에도 넣어먹고 아플 땐 약도 되고 미나리는 원더플이란다."

부부는 병아리 감별사 일을 계속하면서 농사를 짓는 불안하고 힘든 하루하루를 이어가고 한국전에 참전했다는 폴(월 패튼)의 도움으로 채소를 기르고 교회에도 다니기 시작한다.

마침내 품질 좋은 채소를 수확하고 한인 슈퍼에 납품도 약속했지만 갑작스런 뇌졸중으로 거동이 불편한 순자가 낸 화재로 채소저장고가 모두 타버린다.

책임감을 느끼는 순자를 보듬는 손녀 앤과 손자 데이빗.

영화의 마지막 시퀀스에서 가족은 화해하고 제이콥은 수맥을 제대로 찾아서 농사를 짓기로 결심한다.

제이콥과 데이빗은 순자가 심어 놓은 미나리를 채취하면서 영화는 끝이 난다. 애써 기른 채소는 모두 타버렸지만 미나리는 도랑을 가득 메우며 싱싱하게 자라고 있었다.

질긴 미나리의 식감처럼 꿋꿋하게 자라고 있었다. 실제 아칸소에서 태어난 정 감독은 "윌라 캐더가 네브래스카 농장에서의 경험을 토대로 쓴 '마이 안토니아'에서 많은 영감을 받았고 1980년대의 기억에 진실하게 다가가려고 했다. 미나리는 딸에게 들려주고 싶은 가족 이야기다.
그들만의 언어로 이야기하는 가족, 그 언어는 미국 언어나 다른 외국어가 아닌 진심의 언어(Language of Heart)다."라고 소감을 전했다.

미국의 플랜 B가 제작을 하고, 미국의 웰 메이드작품 배급사 A24가 투자 배급하고, 한국계 미국인 감독이 만들었음에도 "극 중 대화의 50% 이상이 영어가 아닌 경우 외국어 영화로 구별한다."라는 시상식 규정 때문에 외국어 영화로 분류됐다.

이 영화는 미국으로 이민 간 한국가정이 문제시 해오던 인종차별 문제 등은 언급하지 않고 오히려 한국인 교회에서 상처를 받은 가족이 미국교회에서 환대 받고, 아이들도 미국인 아이들과 쉽게 친구가 된다는 점에서 한국인 관점에서 영화를 만들지 않았음을 알 수 있다.
'낯선 땅으로의 이민'이라는 무겁고 불안한 주제 보다 시골지역으로 이사한 가족이 현지인의 적극적인 도움으로 잘 적응해 간다.

한국인 등장인물과 한국적인 소재를 이입시켰지만 전반적으로 모든 국적의 이민자들을 포용하는 미국 관점의 영화임에도 미국 영화 대열에는 끼지 못했다.

이민자로서 갖게 되는 제도적인 불이익이나 사회 전반적인 차별 등이 배제되어서 '다른 나라에 정착하고 적응하는 것이 얼마나 힘들었을까·'라는 공감은 없었다.

그러나 잔잔한 OST와 넓은 잔디 밭, 맑은 물가에 풍성하게 자란 미나리를 보면서 어떤 어려움이나 역경 속에서도 꿋꿋하게 견뎌내는 보통의 현대인들에게 주는 희망의 메시지를 보았다.

이민이라는 이슈가 이 영화처럼 차별을 수반하지 않는다면 얼마나 바람직한가.

이 영화는 보편적인 인간관계를 보여주면서 위기와 갈등을 가족이 함께 헤쳐 나가는 설정에 공감하게 된다. 배우들의 연기가 너무 훌륭했고 그들의 인터뷰에 감동했다.

미나리는 가족을 위해서라면 어디에도 적응하고 무슨 일이라도 마다하지 않는 우리들의 어머니 모니카(한예린) 같다.

미나리는 힘들고 고된 환경에서도 가족들을 호강시켜주려는 일념으로 성공을 꿈꾸는 우리들의 아버지 제이콥(스티븐 연)같다.

또한 손주들에게 무시당하면서도 하염없이 안아주고 보듬어주는 우리들의 할머니 순자(윤여정)같다.

언제 어디에서 무엇을 하고 어떻게 살던지 미나리처럼 끈질긴 생명력으로 사회에 선한 영향력을 전하라는 감독의 의도. 그래서 영화 제목이 미나리인가 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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