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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로 보는 인문학 - '대니쉬 걸(Danish girl)'

남성, 여성보다 한 사람으로 살아가라

  • 웹출고시간2022.01.17 14:54:35
  • 최종수정2022.01.17 14:54:35

안소현

지역발전연구소함께 대표

얼마 전 한 드라마 제작발표회에서 남자 탤런트 '봉태규'가 치마로 스타일링을 하고 등장해 화제가 됐다. 그의 의견대로 남자도 치마를 입을 수 있고, 그의 모습은 너무나 당당해 보여서 남자가 치마를 입어도 멋질 수 있다는 새로운 관점을 주지시켰다. 물론 그의 의상에 혹평을 가하는 사람들도 없지 않았으나 봉태규는 이에 대해서도 아주 의연하고 우아한 말과 태도로 답변했다.

"어떤 경계가 사라진다는 건 개인에게 놀라울 만큼의 자극을 주고 새로운 우주가 펼쳐지더라고요"

오랜 관습에 의해서 금기로 여겨지는 의복에서의 남녀의 경계는 언제든 사라질 수 있고 변형될 수 있음을 시사했다. 치마를 입을 것인가, 말 것인가에 대해 선택할 수 있다는 사실만으로도, 사회가 규정한 경계가 사라지는 것을 경험하는 일만으로도, 우리에게는 새로운 우주가 펼쳐질 만큼 '중요한 것'임을 알게 된다는 것이다. 영국 스코틀랜드의 수도 에든버러에 여행을 가면 주로 남성들이 거치는 코스가 있다고 한다. 전통 의상인 킬트를 입어보는 것이다. 우리에겐 그저 체크 무해의 여성용 치마에 불과하지만 1700년대 한 잉글랜드 자본가가 스코틀랜드 노동자들에게 입힌 유니폼으로 시작해 19세기 이후에 이르러 스코틀랜드 귀족들에게 잉글랜드와 구분되는 정체성을 드러내기 위한 상징적인 의상으로 선택됐다고 한다. 그 이후, 스코틀랜드에는 여성 의복이 아니라 전통 의상으로서 킬트를 입은 남자들을 발견할 수 있는데, 처음에만 좀 낯설 뿐 어렵지 않게 익숙해진다. 오히려 단단한 종아리 근육이나 패드를 사용해서 남성들의 강한 이미지를 더 부각시키도록 하는 효과를 준다. 바지가 남성만의 전유물이 아닌 것처럼 치마 또한 남성이 금기해야 할 복장은 아니다. 즉, 의상을 성별을 드러내는 용도로 사용하는 사고방식 자체가 변하지 않는 가치관에 기반을 둔 게 아니라 결국 해당 사회의 필요에 따라 생성된 상대적인 결과물인 것이다.

이러한 소소한 행위들이 누군가에게는 한낱 가십거리에 불과하지만, 또 다른 누군가에게는 목숨만큼 소중한 '성'의 경계에 대해서 숙고하게 된다.

여성과 남성의 구분과 경계를 뛰어넘으려고 절규한 한 남자의 실화를 그린 톰 후퍼 감독이 2016년에 제작한 영화 '대니쉬 걸(Danish girl)'을 소개한다.
'대니쉬 걸'은 세계 최초로 성전환 수술을 받은 남성으로 알려진 덴마크 화가 에이나르 베게너(1882∼1931)의 실화를 바탕으로 만들어진 영화이며 소설가 데이비드 에버쇼프의 베스트셀러가 원작이다.

실화를 바탕으로 한 이 영화는 1920년 덴마크를 배경으로 한 폭의 그림 같은 풍경들이 심장을 요동치게 만든다. 영화 속의 유럽 풍경은 실제 '에이나르'와 '게르다'가 살았던 덴마크 코펜하겐과 벨기에 브뤼쉘을 그대로 담아냈다. 아름다운 시대와 풍경, 몽환적인 색감이 스토리에 상관없이 눈과 마음을 황홀감에 빠뜨린다. 스크린을 통해서 사랑을 시작한 장소인 덴마크 왕립 미술아카데미, 무도회 장소인 샤를로텐보르 궁전 등 아름답고 호화로운 건축물은 관객들의 미적 욕구를 제대로 충족시켜 줄 것이다. 이 영화에 몰입하는 순간 어느새 '에이나르'가 되고, '베게너'가 돼서 아름다운 코펜하겐 항구를 거닐고 있는 착각에 빠질 것이다. 에이나르 베게너(에디 레드메인)는 1920년대 덴마크 코펜하겐에서 풍경화로 이름을 떨치던 화가이다. 그의 아내 게르다 베게너(알리시아 비칸데르)는 남편의 명성에는 미치지 못하지만, 화려한 명성을 얻고 싶은 초상화 전문 화가이다. 둘은 서로 누구보다 아끼고 사랑하며 예술적 영감을 주고받는 동반자이자 동료 화가로서 서로의 미술적 영감을 교류하고 예술적 가치를 존중해 주는 이상적인 관계이다.
결혼 6년 차가 되는 어느 날 '게르다'는 초상화 모델 울라(앰버 허드)의 초상화를 완성하기 위해서 장난삼아서 남편에게 자신의 모델 대역이 돼달라고 부탁한다. 못 이기는 척 아내의 청을 승낙한 '에이나르'는 드레스를 입고 캔버스 앞에 서게 되고 그때까지 한 번도 느껴본 적이 없던 감정의 소용돌이 속에서 또 다른 자신의 모습을 마주한다. 부드럽고 하늘하늘한 드레스와 발에 느껴지는 스타킹의 촉감에 온몸이 감동한다. 무겁고 뻣뻣한 옷만 입었던 그의 피부가 부드러운 실크의 감촉에 전율을 느끼며 그에게 황홀함을 안겨 준 것이다. '새로운 경험을 통해서 경계가 허물어지는 순간'을 경험한 것이다.

얼마 후 베게너 부부가 무도회에 초청을 받게 되고 '에이나르'가 자신의 유명세로 그런 자리에 나가는 일에 부담을 느끼자 '게르다'는 에이나르에게 여장을 권유한다. 처음에 망설이던 '에이나르'는 변장을 마치고 '릴리 엘베'라는 여성 이름까지 지어서 무도회장으로 향한다. 에이나르는 무도회장에서 '헨릭'(벤 위쇼)을 만나게 되고 그의 적극적인 구애에 키스까지 하게 된다. 이 장면을 목격한 아내 '게르다'는 큰 충격에서 헤어나지 못한다. 그날 이후 영원할 것 같던 베게너 부부의 사랑이 조금씩 어긋나기 시작하고, 둘은 모든 것이 송두리째 바뀔 선택의 갈림길에 서게 된다. '에이나르'가 여성의 삶을 선택했고 성전환을 결심한 것이다. 충격을 받은 아내 '베게너'는 결국 그를 사랑하기 때문에 그의 선택을 받아들인다. 그가 행복하길 원한다면서.
다양성이 부족하던 1920년대 한 남성이 자신의 성 정체성을 받아들이고 여성으로 다시 태어나고자 수술대 위에 오르기까지의 두렵고 불안한 감정을 영화는 담담히 보여준다. 전체적인 영화의 분위기는 섬세하고 민감하며 차분하지만, 등장인물들의 내면과 감정은 풍부하고 역동적이다.

1930년대 세계 최초로 성전환을 위해 수술대에 눕기까지 '에이나르'는 어떤 고민을 했을까, 사랑하는 남편의 성전환을 허락한 아내의 가슴은 얼마나 갈기갈기 찢어졌을까를 생각하면 온몸이 몸서리친다. 그들의 내면을 표현하는 눈빛과 파스텔톤의 따뜻한 화면이 오히려 잔인하게 느껴진다.

네 그루의 나무와 바다와 산과 안개와 구름으로 시작한 영화는 네 그루의 나무와 바다와 산과 안개와 구름으로 끝이 난다. 아내 '게르다'의 비명과 훨훨 날아가는 릴리의 스카프.
'킹스 스피치'(2010), '레미제라블'(2012)로 그해 미국 아카데미(오스카) 영화상을 휩쓴 영국 '톰 후퍼' 감독은 너무나 아름다운 한 편의 예술작품을 우리에게 안겨줬다. 이성애와 동성애라는 이분법적인 사고를 최대한 자제하고 인생의 전환을 보편적인 사랑이라는 관점에서 풀어내서 더 아름답다. '사랑에 대한 모든 것'(2014)에서 스티븐 호킹 박사를 연기해 골든 글로브와 미국 아카데미 시상식에서 남우주연상을 받은 '에디 레드메인의' 파격적인 연기도 완벽했다. 레드메인은 완벽한 변신을 위해 약 1년 동안 여성의 신체적인 특성을 연구하고 익히는 데 몰두했다고 한다. 그는 '대니쉬 걸'로 2년 연속 미국 아카데미 시상식 남우주연상 후보에 올랐다. 또 남편의 변화에 흔들리다가 그가 성전환 수술을 택한 이후 조건 없는 사랑과 연민을 보여주는 연기를 펼친 알리시아 비칸데르는 미국배우조합(SAG)상에서 '대니쉬 걸'로 여우조연상을 받았고 아카데미 시상식 여우조연상 후보에 올랐다.

중요한 것은 '여성과 남성의 양분법'이 아니라 주어진 틀에 연연하지 않는 힘, 우리 안에 내재한 삶을 향한 주체성이 아닐까. 옷이나 겉모습으로 성별을 나누는 게 가능한 사회는, 결국 개인의 정체성이나 삶 또한 재단할 수 있는 곳이다. 이러한 맥락을 인지하고 있지 않으면, 우리는 해당 사회가 제시하는 틀이나 경계를 마치 태초부터 존재하는 근본적인 질서인 것처럼 따르며 자발적으로 우리의 삶과 생각을 내려놓는 것이다. 조금만 사고해보면 편견이나 고정관념에 불과하다. 우리가 무엇에 우리의 생각과 삶의 주도권을 이 사회에 양도하고 있는 기분이다. 어떤 틀도 경계도 처음부터 당연한 것은 없다.

남성들이여! '클림트'처럼 헐렁한 원피스 잠옷을 입어보라.

그리고 자유를 느껴보라.

아무도 손가락질 하지 않을 것이다.

여성들이여! 가죽자켓을 입고 모터사이클을 타보라.

그리고 볼을 스치는 강한 바람을 느껴보라.

아무도 손가락질 하지 않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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