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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로 보는 인문학 - '프리다 칼로'를 통해 본 '고통을 승화시킨 예술'

  • 웹출고시간2021.03.29 16:27:53
  • 최종수정2021.03.29 16:27:53

안소현

정치학 박사 / 지역문화커뮤니티 '함께' 대표

천변에 봄꽃이 흐드러지게 피었다.

사춘기 소녀의 볼 같은 연한 핑크색 벚꽃, 우윳빛 목련, 노란 프리지어와 개나리, 그리고 나의 시선을 멈추게 하는 짙은 초록잎과 와인색 모란.

며칠 전에 마이아트 뮤지엄 '앙리 마티스전'에서 본 바로 그 색들.

미술관에 가는 것은 나의 유일한 사치이다.

봄이 오면 가슴 벅차게 피어오르는 감성을 쏟아내야 한다.
"내가 꿈꾸는 것은 균형과 평온함의 예술, 즉 안락의자처럼 인간의 마음을 가라앉히고 진정시키는 예술이다."라는 글귀로 시작한 전시회답게 그의 드로잉과 컷 아웃 작품은 단순하고 편안했다.

내가 앙리 마티스를 좋아하는 이유는 그 단순함에 입혀진 강렬한 색채의 콜라보 때문이다.

파블로 피카소와 함께 20세기 표현주의 화가로 그가 주도한 야수파(Fauvisme·고흐와 고갱의 영향을 받아 프랑스에서 일어난 미술 사조) 운동은 원색의 강렬한 색채 사용이 특징이다.

고흐의 깊은 노랑만큼 마티스의 짙은 빨강과 쪽빛은 나의 삶을 열정적으로 만드는 요소이다.

"나는 내 노력을 드러내려고 하지 않았고 그전에 그림들이 봄날에 밝은 즐거움을 담고 있었으면 했다. 내가 노력했는지 아무도 모르게 말이다." 앙리 마티스
색채의 마술사인 앙리 마티스(1869~1954)의 그림, 병상에서 그림 대신 만든 컷 아웃 작품과 34곡의 재즈를 감상하면서 문득 떠오르는 영화가 있다.

짙은 빨강과 파랑이 주는 '앙리 마티스'의 강렬함이 짙은 빨강과 초록의 '프리다 칼로'를 연상시켰다.

영화'프리다 칼로'는 2003년 개봉한 작품으로 초현실주의(프리다 칼로는 자신의 작품을 현실주의라고 명명했지만), 상징주의와 전통문화를 결합시킨 멕시코 화가 프리다 칼로(Frida Kahlo de Rivera, 1907∼1954)의 생애와 사랑, 작품을 보여주는 자전적인 영화이다.

유대계 독일인 아버지 빌헬름 칼로와 스페인과 인디오의 혼혈인 어머니 마틸데 칼데론 사이에서 1907년 멕시코 코요아칸에서 태어난 프리다 칼로는 어머니로부터 물려받은 강한 성격과 기질로 혁명 당시 멕시코 청년공산당에 가입했을 정도로 열성적인 스탈린주의자였다.

영화에는 나오지 않지만 프리다 칼로는 6세 때 소아마비에 걸려 다리를 절었다.

친구들은 그녀를 '목발의 프리다'라고 놀렸고, 이는 그녀에게 깊은 상처를 남겼다.

사춘기 시절에는 오른발이 제대로 자라지 않아 다리 길이가 다른 것을 감추기 위해 늘 긴 멕시코 전통 치마를 입고 다녔다고 한다.

영화는 가장 큰 비극을 가져 온 버스사고에서 시작된다.

1925년 9월 17일 그녀가 탄 버스가 전차와 충돌하면서 전차의 금속 기둥이 그녀의 몸을 관통했고, 버스가 폭발하면서 그녀의 몸에 무수히 많은 파편이 박힌 것이다.

프리다 칼로는 사고에서 회복되는 데만 2년이 넘게 걸렸으며, 꼼짝하지 않고 누워 있어야 하는 지루함과 고통을 이겨 내기 위해 그림을 그리기 시작했다.

사고는 그녀의 신체적 고통뿐만 아니라 의사로서의 꿈도 빼앗아 갔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프리다 칼로는 굴복하지 않고 침대의 캐노피에 거울을 달고 자화상을 그리기 시작한다. 그녀의 작품 대부분이 자화상이다.

"나는 자주 혼자이고 내가 가장 잘 아는 주제가 나이기에 나를 그린다." 프리다 칼로

멕시코 공산당에 가입한 프리다 칼로는 평생의 사랑이자 고통, 연인이자 적인 디에고 리베라를 만난다.

당시에 명성이 높은 화가이자 혁명가인 디에고 리베라와 사랑에 빠져 21세의 나이차를 극복하고 결혼한다.

"나의 평생의 소원은 단 세 가지, 디에고와 함께 사는 것, 그림을 그리는 것, 혁명가가 되는 것이다."이라고 말할 정도로 디에고 리베라는 그녀의 인생을 송두리째 지배했다.

그러나 두 번의 이혼과 심각한 여성 편력을 가진 디에고는 프리다 칼로를 고통과 좌절의 늪으로 빠지게 한다.

사고로 손상된 골반과 등뼈의 고통과 세 번의 유산을 경험하고도 계속되는 디에고의 바람기는 이혼이라는 결과를 안겨준다.

척추의 고통과 몇 차례의 대수술을 받은 후 프리다 칼로와 디에고 리베라는 재결합을 하게 된다. 혈액순환이 되지 않아서 다리 아랫부분을 절단했음에도 사회 활동과 당에 봉사하는 삶을 계속한다.

앙리 마티스 작품의 강렬한 색채에 몰입하다가 떠 오른 영화'프리다 칼로'를 통해 내 삶에 펼쳐진 고통이 부끄러워지는 순간이다.
프리다 칼로는 여자로서 사고로 인한 상처투성이의 몸, 원하는 아이도 낳을 수 없는 고통, 사랑하는 디에고 리베라로부터 받은 배신과 상처를 극복하고 예술에 대한 열정으로 '삶을 예술로 승화시킨' 완벽한 화가였다.

1954년 47세의 고통스러운 삶을 마쳤다.

그녀의 마지막 일기에는 '이 외출이 행복하기를. 그리고 다시 돌아오지 않기를'이라고 쓰여 있었다.

1년 후 디에고 리베라는 그녀가 태어나고 죽은 '푸른 집'을 국가에 기증했고, 이곳은 1958년 프리다 칼로 미술관으로 개관됐다.

요즘처럼 힘든 상황에서 나의 불행과 좌절을 남의 탓으로 돌리지 않고 프리다 칼로처럼 나를 더 성장시킬 대상에 몰입할 수 있기를 소망해 본다.

그녀의 그림은 그녀의 고통을 말해 주듯이 강렬하지만 그녀는 그림을 그리는 순간 그 고통에서 해방되었을 것이다.

영화를 통해 본 프리다 칼로는 누구도 원망하지 않는다.

몰입할 대상이 있고 사랑할 대상이 있고 기억해 줄 사람들이 있는 것만으로도 행복하지 않을까.

잠깐 스치는 생각. "힘들어도 손가락을 밖으로 향하지 않도록 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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