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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로 보는 인문학 - 지친 나를 찾아서 떠나는 여행 '와일드'

  • 웹출고시간2021.10.11 15:57:25
  • 최종수정2021.10.11 15:57:32

안소현

지역발전연구소함께 대표

내가 절에 가는 이유는 두 가지다. 첫 번째, 산을 따라 올라가다 보면 가장 높은 곳에 터를 잡은 암자들이 등반의 마침표를 찍어 주는 느낌이고, 두 번째 이유는 높은 산에 있는 법당에 들어가서 절을 올리고 기도를 하고 법당 앞의 툇마루에 앉아서 마을을 내려 다 보면 하늘과 산과 계곡을 한눈에 바라보면서 그동안의 나를 돌아볼 수 있기 때문이다. 땀으로 젖은 채로 깊은 심호흡을 하고 눈을 감아 보면 좀 전에 펼쳐진 아름다운 자연과 나의 삶이 오버 랩 되면서 반성을 통한 마음의 안정이 찾아온다. 얼마 전 경상남도 하동군 화개면에 있는 쌍계사에 갔다. 840년(신라 문성왕 2)에 진감선사 최혜소가 개창하여 옥천사(玉泉寺)라고 부르다가 헌강왕 때 한 고을에 같은 이름의 절이 두 개가 있어 혼동을 일으켰으므로, 앞에 흐르는 쌍계천을 따라서 '쌍계'라는 호를 하사하고 학사(學士) 최치원에게 '쌍계석문(雙磎石門)'의 4자를 쓰게 하여 바위에 각자(刻字)했다고 한다. 그 후 두 차례나 화재로 절이 소실되었으나 1632년(인조 10)에 복구되었다. 경내에는 국보 제47호인 진감선사대공탑비를 비롯하여 보물 제380호의 쌍계사 부도(浮屠), 보물 제500호의 대웅전 등의 지정문화재가 있고, 이 밖에 5층 석탑·석등·일주문·팔상전·명부전·천왕문, 중국의 승려 혜능의 두상을 봉안했다는 금당(金堂)에 있는 육조정상탑과 나한전·금강문·마애여래좌상 등 많은 문화재가 있다. 쌍계사도 장엄하지만 사실 2.4㎞ 위에 있는 불일암과 불일폭포의 비경을 보는 호사를 누릴 수 있길 소원했다. 비탈진 돌길을 걷노라니 여름 막바지에 쏟아 내리는 땀과 나의 일상에 대한 반성이 마음 한 자락을 움켜쥐고 발걸음을 무겁게 했다. 작은 것에 상처받는 나약함, 혹시라도 상대를 오해했던 마음들을 쏟아내야 한다. 걷다가 보니 오랜만의 산행이라 발가락에 물집이 잡힌 느낌이다. 고작 2~3㎞ 정도의 산행에.
2015년 개봉한 영화·와일드·의 주인공 '셰릴 스트레이드'가 생각났다. 과거의 상실과 고통의 기억들과 꺼져가는 인생의 불씨를 다시 살리려는 심정으로 그녀가 선택했던 PCT(Pacific Crest Trail). PCT는 미국 서부 해안을 따라 황량한 사막과 거친 산맥을 거처 녹아내린 빙하의 계곡을 트래킹 하는 악마의 코스로 전해진다. ·와일드·는 셰릴 스트레이드의 자전적인 소설을 리즈 위더스푼과 장 마크 발레 감독이 공동 제작했다. 금발이 너무해 등으로 국내에 알려진 밝은 이미지의 리즈 위더스푼이 이 소설을 읽은 후에 영화제작에 관심을 가졌다고 한다. 가장 사랑했던 엄마의 죽음으로 인생을 마감하려는 셰릴 스트레이드는 마약에 중독되고 거리의 여자로 추락했던 망가진 삶, 이혼과 삶에 대한 좌절 속에서 PCT에 도전한다. 셰릴 스트레이드는 혼자서 1,700㎞의 거리를 도보로 여행한다. 자신보다 더 큰 배낭을 메고 어떤 정보나 경험도 없이 첫걸음을 시작한다. 온갖 시행착오와 위기의 순간들을 온몸으로 부딪히는 100일 동안의 여정을 고스란히 보여주는 영화이다. 야생의 한가운데서 자기 자신과 극한 외로움의 승부를 시작한 것이다. 발이 물러터지고 몸에 패인 상처 자국에도 불구하고 대자연의 경관 앞에서 숭고해지는 그녀. 의지할 가족도 돈도 사랑도 없는 그녀가 선택했던 '자기 자신과의 싸움'은 우리가 맞이하는 일상의 작은 고통들을 부끄럽게 만들었다. 대자연과의 불편하고 불안한 여행 속에서 따뜻한 이웃들과 마주하게 되고 과거에 경험하지 못했던 평온함이 서서히 그녀의 내면에 자리 잡는다는 내용이다. 얼핏 보면 지루해 보이지만 나는 이 영화를 보면서 나에게 주어진 환경 속에서 안일해 왔던 자신을 반성해 보고 누구에게나 따뜻한 이웃이 되어주겠다는 생각을 하게 만들었다. 그러한 행동은 누군가를 도와주는 것이 아니라 나를 더욱 단단하게 해주기 때문이다. 어떤 사람들은 귀여운 착각을 한다. '내가 베풀고 있다.' '누군가를 도와주고 있다.'라고 자랑스럽게 말한다. 그들은 누군가를 위로하고 마음 하나를 내주었을 때 내가 더 위로받고 기쁘다는 것을 모르는 것 같다.
스페인의 산티아고, 미국의 PCT, 애팔래치아 트레일, 한국의 올레길을 걷는 사람들이 있다. 굳이 무엇을 찾으려고 고집하지 않고 무작정 떠난다. 그러나 돌아오는 길에는 가슴 가득히 무엇인가 담아온다. 떠나는 걸음걸음마다 미움, 질투, 원망, 비난 등 삶에서 오는 짐들을 내려놓고 돌아오는 길에 사랑, 용서, 여유, 풍요로움, 따뜻함을 주워 담아 올 것이다. 이것이 대자연의 가르침일 것이다. 가끔은 혼자여도 좋다. 비울수록 더 많은 것들로 채워진다는 말이 마음에 와닿는 영화·와일드·를 이 가을에 꼭 보길 추천한다.

생각의 끝자락에 불일암 꼭대기에 올라 앉아 하늘과 산과 계곡을 한눈에 내려다본다. 눈을 감아도 선명하게 떠오르는 비경들로 내 마음이 가득 채워진다. 꼭꼭 숨어 있는 불일폭포는 물줄기가 얼마나 장대한지.
'셰릴 스트레이드'가 처절한 고통 속에서 무작정 걷기를 선택했던 이유를 알 것 같다. 오로지 자신 속으로 파고 들어가는 여행이다. 생각하고 비우기를 반복하고 새로움으로 채워지는 매력을 느껴 보길 바란다. 칠불사를 거쳐서 쌍계사 불일폭포에서 종지부를 찍은 이번 도보 여행의 여독을 하동읍 작은 온천에서 풀려고 하는데 사우나실에 이런 글이 있다. 이번에도 많이 채워서 간다.

매듭이 있다면 풀고 사세요

세상 살면서 어찌 나를 싫어하고 질시하는 사람이 없겠는가.

내가 잘 나가든 못 나가든 질시하거나 질투하는 사람은 있다.

그 문제를 잘 헤아리는 지혜가 그 사람의 인생의 길을 결정해 주는 지표이다. 그 치우쳐져 있는 것을 바르게 세우는 것이 교육이요, 수련이며 자기성찰이다. 그 모든 수단이 자기에게 도전하는 적을 없애는 좋은 방법이다.

쌍계사 불일암

그래서 옛말에 '백 명의 친구가 있는 것보다 한 명의 적이 무섭다고 했다.

백 명의 친구가 나를 위해줘도 한 명의 적이 나를 무너뜨리기에 충분하다는 뜻이다. 그래서 세상을 뒤돌아보라는 것이다.

지금 내가 강하고 세다고 남을 보잘 것 없다고 무시한다면 언젠가 내 앞에 강한 사람이 서 있게 된다는 것은 거짓 없는 현실이다.

어쩌다가 행여 매듭이 만들어진 부분이 있으면 훗날 풀기 힘든 매듭이 될 수 있다. 인연은 운명이고 관계는 노력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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