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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로 보는 인문학 - '피아니스트'

이념을 초월한 예술의 힘

  • 웹출고시간2023.01.09 16:55:41
  • 최종수정2023.01.09 16:55:41

안소현

지역발전연구소함께 대표

평화와 화합을 구가했던 세계의 기류가 자국의 이익을 위해서는 전쟁도 불사하겠다는 제스처를 취하고 있다. 우크라이나 블로디미르 젤린스키 대통령의 친서방정책에 대한 러시아의 대응이 전 세계를 불안하고 안타깝게 만들고 있다. 과거의 전쟁이 이념분쟁이었다면, 작금의 현실은 이념보다 천연가스 등 자원의 유통과정과 식량문제의 주도권 분쟁이 결부되어서 더 복잡하고 예민하다. 우리나라도 예외는 아니다. 중국의 부상을 우려하는 미국의 '신냉전주의'에 휩쓸리지 않고 유연하고 세련되게 대처해야 하는데 긴장감을 조성하는 남북관계에 불안함을 떨칠 수 없다.

국가는 국민에게 안정된 삶을 보장해야 한다. 국가의 위정자들이 슬기롭고 평화적으로 밀고 당기기를 잘해서 이 땅에서 전쟁의 아픔을 경험하지 않도록 최선을 다해야 한다. 저조한 출산율과 높은 자살율, 국민들이 감지하는 불평등적인 경제구조로도 삶이 극도로 피폐한데 '전쟁'이라는 단어는 상상도 해서는 안 된다. 사람들은 이렇게 지치고 피폐한 마음을 달래기 위해서 음악과 미술작품, 가슴을 울리는 따뜻한 공연을 찾는다. 특히 올겨울은 공연의 홍수처럼 많은 공연과 전시가 있었다. 펜데믹으로 고통받은 마음을 달래주는 불꽃놀이처럼 많은 음악가와 미술가 그리고 영화와 연극인들이 위로와 행복감을 선물해 주고 있다. 이러한 불안한 상황에서 클래식 음악이 주는 황홀한 경험은 타는 목마름을 해소해 주는 오아시스일 것이다. 전쟁의 폐허 속에 오직 피아노 연주를 위해서 비굴해져야 했던 예술가와 그 예술가의 비굴함 마저 아름다운 2003년 로만 폴란스키 감독의 영화 '피아니스트'가 생각난다.
◇쇼팽이 허문 국가와 이념의 벽

1939년 폴란드 바르샤바. 유명한 유대계 피아니스트 블라디슬로프 스필만은 한 인기 라디오 프로그램에서 쇼팽의 야상곡을 연주한다. 방송국 밖은 폭탄이 떨어지고 폭격으로 건물이 흔들리는데도 스필만은 연주를 끝내려 하지 않는다. 쇼팽의 '녹턴 C# 단조 '아주 느리게 풍부한 표정을 담아서''로 시작되는 영화의 첫 장면은 흑백의 영상으로 이 영화의 주인공인 홀로코스트 생존자 피아니스트 블라디슬라프 스필만(애드리언 브로디 분)의 연주 장면을 천천히 보여준다. 방송국 건물이 폭격을 당하게 되자 피아노 연주를 중단하고 자리를 피하는 순간까지 스필만의 손가락은 피아노 건반에서 떠나지 않는다. 나치군대가 바르샤바를 점령하자 유대인 피아니스트 스필만과 그의 가족이 집을 떠나서 게토로 이주하고, 나중에는 소를 실어 나르던 기차에 가축보다도 못한 취급을 받으며 수용소로 끌려간다. 가족 모두 죽음의 수용소로 끌려가지만 운 좋게 빠져나온 스필만은 바르샤바에서 숨어 살지만 굶주림으로 고통받는다. 폴란드에서 유명한 피아니스트였고 폭격 속에서도 맘에 드는 여인에게 데이트를 신청하는 순진하면서도 자신만만한 예술가였던 스필만이 나치의 폭력에 무방비하게 노출되고 피아노를 쳐야 할 손가락으로 노동을 하며 음식을 구걸한다. 그의 몸은 점점 수척해지고 얼굴은 수염으로 뒤덮이고 누더기를 걸치고 있다. 스필만이 유대인 도망자라는 사실을 알면서도 단 한 번의 쇼팽 연주를 듣는 순간 그를 도와주기로 선택한 독일인 장교 호젠펠트(토마스 크레취만 분)는 스필만에게 먹을 것을 구해주고 호의를 베푼다. 호젠펠트가 등장할 때마다 베토벤의 '월광 소나타'가 흘려서 그가 음악을 얼마나 사랑하는지 알려준다. 독일 장교가 가져온 잼을 손가락으로 찍어 먹으면서 내쉬는 만족한 숨소리가 처절하다. 숨어 지낼 아파트 거실의 피아노를 열고 건반을 치지 않은 채 오직 손가락을 허공에 움직이면서 연주하는 장면은 간절히 원하는 것을 할 수 없는 애절함이 느껴졌다. 음악을 사랑하는 호젠펠트는 오직 쇼팽의 연주에 감동해서 국가를 배신하고 이념도 무시한 채 유대인 피아니스트를 은신하도록 도와주었을까.

이 영화는 실화를 기반으로 만들어졌다. 전쟁의 가해자와 피해자가 국가와 이념의 허물을 벗어 던지고 인간 개인으로 돌아왔을 때 둘이 감내해야 할 고통과 마음의 짐을 '쇼팽에 대한 공감'으로 포장됐다고 여겨진다. 전쟁에서 애국이라는 명분으로 어쩔 수 없이 총을 겨누는자의 양심이 음악이라는 매개체로 인하여 인간 본연의 모습으로 돌아오게 한 것이다. 아름다운 음악 한 곡이 사람을 더 사람답게 만들고 상대방을 이해하고 공감하도록 이끌었다.
◇쇼팽과 피아노라는 완벽한 오브제 그리고 루바토

"여기서 뭘 하고 있는 거요?"

"깡통을 따고 있었습니다."

스필만(애드리언 브로디 분)은 떨리는 목소리로 말한다. 2차 세계대전으로 폐허가 된 도시에서 몰래 숨어 있던 유대인 스필만은 배가 고파서 피클 깡통을 따려다가 독일군 장교 호젠펠트(토마스 크레취만 분)에게 발각된다.

"직업이 뭐지, 뭘 하는 사람이죠?"

"저는, 저는 피아니스트입니다"

장교는 고개를 갸우뚱하며 먼지가 가득한 낡은 피아노가 있는 방으로 그를 부른다. 그리고 피아니스트라면 피아노 연주를 해보라고 명령한다. 그는 온몸이 얼어붙는 상황에서 손가락을 떨면서 쇼팽의 발라드 1번의 첫 음을 무겁게 누른다. 그의 손가락은 추위와 전쟁으로 굳어졌지만, 생의 마지막이 될지 모르는 쇼팽 연주를 차분하게 해낸다. 장교는 의자에 앉아 집중해서 음악을 끝까지 듣는다. 그가 독일군의 사무실 다락방에 있다는 사실은 독일군 장교만이 유일하게 알고 있었다. 장교는 스필만에게 몰래 식량을 가져다주며 그의 목숨을 유지시켜 준다.

전쟁이 끝나갈 무렵 독일군이 바르샤바에서 철수하게 되자 마지막으로 장교가 스필만에게 묻는다.

"전쟁이 끝나면 뭘 할 거지?"

"다시 국영방송 무대에서 연주할 겁니다."

"당신 이름이 뭐지?"

"제 이름은 스필만(Szpilman)."

"피아니스트에게 아주 잘 어울리는 이름이군."

스필만의 이름은 독일어로 '연주하다'라는 뜻의 'Spielen'에 명사 Man를 붙였으니 '연주하는 사람'이라는 뜻이다. 자기가 입고 있던 외투까지 벗어주며 뒤돌아서는 독일 장교. 전쟁 후에 두 사람은 피아니스트와 청중으로 다시 만나고 싶었을 것이다.
피아니스트 블라디슬로프 스필만(1911~2000, 폴란드)의 생존 수기를 원작으로 제2차 세계대전을 겪으며 한 유태인 예술가로서의 삶을 다룬 내용이지만 이유 없이 죽어간 많은 유태인들을 위해 만들어졌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블라디슬로프 스필만은 71살까지 살았고 자신을 살려준 독일군 장교 호젠펠트는 연합군에게 생포돼 1952년 포로수용소에서 죽었다. 쇼팽 음악의 아름다움과 피아니스트의 가치를 인정했던 그가 더 일찍 죽었다. 전쟁이 끝나고 스필만이 그를 찾았지만 그는 이미 이 세상 사람이 아니었다.

스필만도, 이 영화를 만든 로만 폴란스키 감독도 그리고 영화 속에서 가장 멋지게 연주됐던 쇼팽도 전부 폴란드 사람이다. 모든 것이 너무나 완벽한 조화를 이루어서 이 사실을 알고 본다면 영화의 감동이 한층 더하다. 쇼팽의 '발라드 1번 사단조 Op. 23'는 폴란드를 대표하는 민족시인 '아담 미츠키에비치'의 서사시 '콘라드 발렌로드'에서 영감을 얻어 작곡된 곡이다. '템포 루바토(Tempo Rubato)'라는 용어는 쇼팽의 작품에서 중요하다. 루바토란 '도둑맞다', '잃어버리다'라는 뜻의 이탈리아어다. 쇼팽은 획일적인 템포(빠르기)가 아닌 자유롭게 느렸다 빨라졌다 하며 감정을 표현하라고 했다. 쉽게 말해 절제된 자유를 의미 한다.

전쟁 속에서도 루바토가 필요하다.

아름다운 음악을 즐길 자유.

음악에 감동할 자유.

그 연주가와 공감할 자유.

감내할 고통과 마음의 짐에서 벗어날 자유.

그리고 전쟁을 거부할 자유.

전쟁에서 이유 없이 죽어간 영혼들을 기리기 위해서 이 영화를 추천한다.

마음이 힘들고 지친자들의 안식을 위해서 쇼팽의 발라드를 추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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