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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대기

전 충주예총 회장

88년의 역사를 자랑하는 세계 축구의 대제전인 월드컵 경기는 언제 보아도 전세계인들을 열광시키기에는 충분했다.

국가와 국가의 명예를 걸고 열리는 경기라서 그 열기는 자못 총성없는 전쟁을 방불케 한다.

지구 반대편에서 열릴때에는 밤잠을 못자며 보기 일쑤이고 전 세계인의 생활 패턴까지 뒤흔들 정도이며 에피소드 또한 많다.

1930년에 열린 우루과이 월드컵대회 결승전에서 우루과이는 4대 2로 아르헨티나를 누르고 초대 월드컵 우승을 차지했는데 당시에는 공인구가 없었기 때문에 아르헨티나와 우루과이의 결승전에서는 전반전에 아르헨티나의 공으로 경기를 하고 후반전에는 우루과이 공으로 경기를 할 만큼 신경전 또한 치열했다. 준우승국 아르헨티나의 팬들은 결승전 패배 이후 폭동을 일으켰으며 양국의 국교가 일시적으로 단절되기도 했다. 가장 유명한 우승컵은 줄 리메가 기증한 30㎝ 높이의 순금제 여신상 트로피로 1970년 브라질이 통산 3번째 우승을 차지하며 영구 보관하기까지 '줄리메컵'으로 불렸다.

2회 월드컵이 열렸을 때 이탈리아 정부는 월드컵 대회를 파시즘의 정치적 지지기반의 확립을 위해, 이탈리아가 우승할 수 있도록 주심을 비롯한 심판들에게 사전에 접근해 압력을 가했다. 이로 인해 이탈리아는 최종 우승국의 자리에 올랐음에도, 월드컵 역사상 가장 불미스러운 우승으로 기록되었다.

독일의 독재자 아돌프 히틀러는 독일 축구 대표팀이 준결승전에서 체코슬로바키아에게 패했다는 이유로 선수 전원을 집단 구속하기도 했으니 역시 독재자의 면모를 톡톡히 보여줬다고 본다.

2차 세계대전이 끝난 직후 열린 월드컵은 1946년 룩셈부르크에서 열린 FIFA 총회에서 FIFA 창설 50주년을 기념하며 본부가 위치한 스위스에서 개최한다는 의미에서 스위스로 확정되었다.

한편으로는 당시 유럽 대부분의 국가들은 2차 세계대전 이후 폐허가 된 국토로 인하여 전후 복구 문제로 대회를 개최할 만한 상황이 아니었고, 여력이 있는 국가는 중립국인 스위스뿐이었다는 웃지 못할 상황이 연출되었고 그래도 월드컵은 계속 열렸다.

6회 대회 때 북한의 본선진출이 눈에 띄는데 지역 예선은 유럽, 남미, 북중미와 카리브해 지역, 아프리카·아시아·오세아니아 지역에서 개최되었다. 유럽에서는 예선에 참가한 32개국 중 개최국 잉글랜드를 비롯해 불가리아, 서독, 프랑스, 포르투갈, 스위스, 헝가리, 소비에트 연방, 이탈리아, 스페인 등 10개국이, 남미에서는 9개국 중 전 대회 우승국인 브라질, 우루과이, 칠레, 아르헨티나 등 4개국이 4조에 속한 소련과 북한이 8강에 진출할 수 있게 되었는데 북한의 8강 진출은 당시 아시아 국가로서는 최초의 일이었다.

9회 멕시코 월드컵의 최종 우승은 브라질이며 축구 황제로 일컬어지는 펠레는 이 대회에서 브라질이 세 번째 우승을 차지하는 데 큰 기여를 했다. 또한 같은 브라질의 자이르지뉴는 출전한 모든 경기에서 득점하는 기록을 남기고 그 유명한 순금 줄 리메컵을 영원히 브라질의 소유로 만들어 버렸다.

우리나라는 1954년 스위스에서 개최된 월드컵을 시작으로 본선에 총 8회 연속 진출했다. 첫 본선 진출이었던 스위스 월드컵 때는 3일에 걸쳐서 간신히 도착하고 여독으로 만신창이가 된 선수들이 9대 0으로 대패했으나, 멕시코 월드컵과 이탈리아 월드컵 축구대회를 거치면서 점진적인 성장세를 보였다. 한국 팀은 아시아 축구 연맹에 속한 국가 중 FIFA 월드컵 최다 출전국이자 최고 성적을 기록한 팀으로 성장하게 되었다.

한편, 한국은 2002년 대회에서 역대 대회 참가 사상 최고의 기록 뿐 아니라 전 세계 축구계에도 경이적인 4강 진출이라는 기록을 남기는 큰 성과를 거두었다.

이번 러시아 월드컵에서는 비록 본선에 오르지는 못했지만 세계 1위인 독일을 이기는 쾌거를 보여줌으로서 희망을 국민들에게 심어주는 계기가 되었다.

결승전을 앞두고 대 단원의 막이 내려지고 있는 시점에 우승을 떠나 참가한 모든 팀들에게 박수를 보내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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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북일보가 만난 사람들 - 단양교육지원청 김진수 교육장

[충북일보] 몇 년동안 몰아친 코로나19는 우리 나라 전반에 걸처 많은 염려를 낳았으며 이러한 염려는 특히 어린 아이들에게 실제로 학력의 위기를 가져왔다. 학력의 저하라는 위기 속에서도 빛나는 교육을 통해 모범 사례로 손꼽히는 단양지역은 인구 3만여 명의 충북의 동북단 소외지역이지만 코로나19 발 위기 상황에서도 잘 대처해왔고 정성을 다하는 학교 지원으로 만족도도 최상위에 있다. 지난 9월 1일 자로 단양지역의 교육 발전에 솔선수범한 김진수 교육장이 취임하며 앞으로가 더욱 기대되고 있다. 취임 한 달을 맞은 김진수 교육장으로부터 교육철학과 추진하고자 하는 사업과 단양교육의 발전 과제에 대해 들어 본다. ◇취임 한 달을 맞았다, 그동안 소감은. "사자성어에 '수도선부(水到船浮)'라는 말이 있다. 주희의 시에 한 구절로 강에 물이 차오르니 큰 배도 가볍게 떠올랐다는 것으로 물이 차오르면 배가 저절로 뜨더라는 말로 아무리 어렵던 일도 조건이 갖춰지면 쉽게 된다는 말로도 풀이할 수 있다. 교육장에 부임해 교육지원청에서 한 달을 지내며 교육장의 자리가 얼마나 막중하고 어려운 자리인가를 느끼는 시간이었다. 이렇게 어렵고 바쁜 것이 '아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