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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대종

청주시립예술단 사무국장

지금의 386세대라면 폴 모리아 악단이 연주했던 감미로운 경음악 '이사도라'를 기억하리라 생각된다.필자도 그 시대의 한 사람으로서 라디오를 틀어 놓고 있으면 적어도 하루에 한번은 그 멜로디를 들었던 것 같다. '맨발의 이사도라'로 더 유명한 이 음악은 현대무용의 창시자 '이사도라 던컨(Isadora Duncan·1878-1927)'을 기리면 폴 모리아가 작곡한 것이다.

1878년 미국 샌프란시스코에서 시를 좋아했던 은행원인 아버지와 음악선생이었던 어머니 사이 막내로 태어난 이사도라는 현대무용의 개척자이면서 여성 해방의 불씨를 지핀 인물이라 할 수 있다. 걷기 시작하면서부터 춤을 추었다는 이사도라의 어린 시절은 그리 밝지 않았다. 부모의 이혼으로 언니 엘리자베스와 함께 이미 10살 때부터 동네 아이들에게 춤을 가르치면서 집안 살림에 도움을 주려 하지만 몇 푼 안되는 적은 돈으로는 다섯 식구의 생계를 위해서는 턱없이 부족하였다. 15세 때 이사도라는 시카고의 한 술집에 삼류무용수로 취직한 적이 있다. 그렇지만 그녀는 몇 푼의 돈을 위해 어쩔 수 없이 춤을 추는 자신의 현실과 싸구려 춤판에 환멸을 느껴 3일 만에 그만두었다. 1899년 그녀 나이 21세 때 유럽행을 결심하게 된다. 거의 무일푼으로 가축운송선을 타고 런던에 도착한 그녀는 우연찮게 런던 사교계에 소개 되는 기회를 맞게 된다. 그녀의 자유로운 춤의 표현은 당시 런던 무용계에 신선한 충격과 함께 극찬을 받았다. 전신이 드러나는 얇은 의상을 걸치고 풀어 헤친 머리를 휘날리며 맨발로 춤을 추는 그녀의 모습은 그야말로 춤의 요정이었다. 런던, 파리, 베를린, 뮌헨 등 아름다운 춤의 요정이 가는 곳마다 폭발적인 인기를 얻었고 그녀가 출연하는 공연은 매회 매진이었다. 뮌헨에서는 그녀가 공연이 끝나자 학생들이 그녀의 마차에서 말을 떼어내고 자신들이 마차를 끌고 거리를 달리기도 하였다.

젊은 시절 이사도라는 철저한 독신주의였다. 그렇지만 사랑에 있어서는 누구 못지않은 정열이 있었다. 그녀 나이 28살 때 독일의 무대디자이너 고든 크레이그를 만나 첫 딸 디어드리를 낳았으며, 1910년에는 미국의 부호 패리스 싱어와의 사이에서 아들 패트릭을 낳았다. 그렇지만 절대로 결혼을 허락하지는 않았다. 이렇게 결혼에 대한 부정적인 생각은 부모의 불행한 결혼생활을 보며 성장한 영향도 있었지만 결혼이라는 것은 자유를 억매는 속박이라는 생각이 더 강했기 때문이었다. 패리스와의 관계는 오랫동안 지속되지 못했다. 패리스의 강한 소유욕에 의한 속박이 싫어 결국 결별을 하게 된다. 그러고 얼마 지나지 않아 패리스가 한번 보자고해 아이들을 데리고 그를 만나러 가는 도중 세느 강에 차가 빠지는 사고로 두 아이를 모두 잃는 비운을 맞는다. 이때가 그녀 나이 35세 때였다. 두 아이를 잃은 엄청난 충격으로 그녀는 한동안 아무 것도 할 수가 없었다. 충격 속에 방황하던 던컨은 1922년 러시아에서 만난 16세 연하의 천재시인 세르게이 에세닌을 만나 오랜 독신주의를 깨고 결혼을 하지만 그 행복도 에세닌의 자살로 오래가지 못하였다.

사랑하는 자녀들의 죽음, 예술가로서의 좌절 그리고 남편의 자살…. 그녀의 말년은 비운의 연속이었다. 그녀의 화려하고도 파란만장한 생애는 극적인 죽음으로 종지부를 찍었다. 프랑스의 휴양지 니스에서 그녀를 숭배하던 한 청년의 드라이브 제안을 흔쾌히 허락하고 쌀쌀한 날씨에 빨간 색의 긴 스카프 목에 두르고 출발하는 순간 그 스카프가 차바퀴에 말리면서 목이 부러져 즉사하고 말았다. 이때가 그녀의 나이 마흔 아홉이었다.

틀에 갇히는 걸 싫어했으며 영원히 자유롭게 춤을 추며 자유롭게 생각하고 행동하기를 원했던 맨발의 이사도라 던컨이 온몸으로 보여 준 '미래의 무용'은 오늘날 현대 무용의 터전이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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