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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대종

청주시립예술단 사무국장

악성(樂聖)베토벤은 평생을 총각으로 살다가 갔다. 스스로가 독신을 주장해서 평생 혼자 살다 간 것이 아니고 사랑에는 지독하게 운이 없었기 때문에 그리 되었다. 어쩌면 신이 이 거장의 능력을 시샘하여 평생 혼자 살게 하였는지도 모른다.

독일 본에서 태어나 오스트리아 비엔나에서 생을 마감한 베토벤은 살아서나 죽어서나 그야말로 유명 인사였다. 그의 장례식에 무려 2만명의 비엔나 시민들이 모여들어 그의 죽음을 애도한 것만 봐도 그의 명성을 짐작할 수 있다. 그런데 이렇게 유명한 베토벤이 평생 혼자 독수공방했다면 믿을 수 있을까. 실제 베토벤은 그림에서 보는 것과 같이 핸섬하게 생긴 인물은 못되었다. 험상한 얼굴에 괴팍한 성격은 여자들에게 그렇게 호감을 주지 못하였다.

베토벤의 오랜 친구이자 음악가로서 베토벤의 비서 역할을 했던 안톤 쉰들러(1795-1864)가 그의 유품을 정리하던 중 그의 서재에서 '나의 천사, 나의 전부, 나의 분신이여'로 시작되는 세 통의 편지를 발견하였다. 이 편지는 받는 사람이 누구인지도 모르고 오로지 알 수 있는 것은 7월 6일, 7월 7일 양일 아침에 쓰여 졌다는 것뿐이었다. 고독한 귀머거리 천재에게 '나의 분신'이라고 불리울 정도의 연인 있었다는 것 자체가 놀라움이고 흥밋거리가 아닐 수 없었다.

그렇다면 이 세기의 거장의 마음을 사로잡은 여인은 누굴까. 수 많은 베토벤의 연구 자료에 의하면 베토벤은 몇몇 여성에게 청혼을 하였지만 모두 보기 좋게 퇴짜 맞았다고 한다. 자신의 피아노 제자였던 이탈리아 백작의 딸 줄리에타 귀치아르디에게 홀딱 빠져 그녀에게 과감히 청혼을 하였지만 그녀의 아버지를 비롯한 주변 사람들의 반대로 결실을 맺지 못하였고, 또 다른 그의 제자였던 요제피네 프른스비크에게 청혼을 하였지만 일언지하에 거절당하고, 유부녀 안토니에 브렌타노와도 사랑에 빠졌지만 이 또한 허무하게 끝나고 말았다.

그러나 베토벤이 누구보다도 뜨거운 열정으로 관심을 가졌던 여인은 바로 테레제 폰 말파티(Therese von Malfatti)였다. 테레제 폰 말파티는 우리가 잘 알고 있는 베토벤의 피아노 소품 '엘리제를 위하여'의 엘리제 장본인이기도 하다. 이 곡의 악보는 베토벤이 죽은 지 40년 뒤에 독일 뮌헨에서 발견되었다. 연주를 들어보면 베토벤이 작곡했으리라고는 믿기 어려울 정도로 감미롭고 서정적인 분위기의 곡으로 악보에는 '엘리제를 위하여. 4월 27일, 추억을 기리며. 베토벤' 이렇게 적혀있었다.

그렇다면 엘리제는 누구일까. 베토벤은 생전에 엘리제라는 여성과는 사귄 적이 없었다. 짐작해 보건데 지독한 악필인 베토벤이 '테레제'라고 쓴 것을 출판업자가 잘못 읽고 '엘리제'라고 표기를 해서 출판하였기 때문에 현재까지 그대로 사용된다는 것이 정설이다. 테레제 폰 말파티는 베토벤 주치의의 딸로서 그의 제자였다. 39살 노총각 베토벤이 그녀에게 사랑을 느껴 청혼을 하지만 보기 좋게 거절당했다. 이 때 그녀의 나이는 17세. 지금의 사회적 잣대로 보면 실로 원조교제(?)의 수준이었다.

소품 '엘리제를 위하여'는 사모하는 테레제에게 보내는 음악 러브레터였지만 그녀는 이 편지를 쳐다보지도 않고 헝가리 귀족에게 시집 가버렸다. 베토벤은 그야말로 닭 쫓던 개 지붕만 쳐다보는 꼴이 된 것이다. 고독한 음악가였던 악성 베토벤은 완벽한 그의 음악과는 달리 사랑의 상처가 거듭되면서 그는 사랑에 마음을 닫고 살았다. 그리고 오로지 음악에만 마음을 열고 자신 모든 열정과 사랑을 쏟아 부었다. 그 결과 인류가 존재하는 한 영원히 멸하지 않을 불후의 명작들이 탄생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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