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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웹출고시간2015.08.18 18:06:55
  • 최종수정2015.08.18 18:06:55

김대종

전 청주시립예술단 사무국장

'마치 벨벳으로 포장한 쇠망치를 휘두르는 것 같다. 몸에 닿아도 힘만 느끼지 아프지 않다. 그는 쇠처럼 강하고 솜사탕처럼 부드럽다.', '그는 무법자다. 정해 놓은 길을 가지 않고 자기 마음대로 간다. 그런데 그게 너무 멋지다.', '그는 곡예사다 그는 완벽한 테크닉으로 어떠한 장애물도 다 뛰어 넘는다 그는 진정한 의미의 마초(Macho :남자답다는 뜻)다. 이 말들은 20세기 최고의 테너 엔리코 카루소(1873~1921)를 두고 하는 말이다. 1873년 2월 이탈리아 나폴리에서 태어난 카루소는 7명 중 셋째였다.(그의 어머니는 18명의 자녀를 낳았지만 11명이 일찍 죽고 7명만 남았다) 어려운 환경 속에서 노래를 좋아했던 카루소는 아버지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성악을 직업으로 선택하였다. 카루소는 타고난 재능도 있지만 인복(人福)도 있었다. 운 좋게 당시 최고의 성악교사였던 굴리엘모 베르지네(Gulielmo Vergine)를 알게 되어 체계적으로 성악발성을 배우게 되었고 또 지휘자이자 탁월한 성악코치였던 빈센초 롬바르디(Vincencho Rombardi)를 만나 벨리니의 오페라<청교도>에 출연하는 행운을 얻게 되고 지오다노의 신작오페라<페드라>에 출연하여 대성공을 거두면서 카루소의 인생은 탄탄대로를 달리게 된다.

카루소와 관련된 에피소드는 많다. 그가 파리에서 갑자기 돈이 필요한 적이 있었다. 카루소는 파리의 한 은행에 가서 지점장을 만나 내가 엔리코 카루소인데 돈을 좀 빌려달라 하였다. 그랬더니 지점장이 "당신이 카루소인지 무슨 수로 증명을 하겠소"하고 하니 카루소가 대답 대신에 고음의 아리아 한 구절을 불러 주었다. 그랬더니 지점장 왈 "오 카루소 선생이 맞군요 얼마가 필요하십니까?" 하며 즉석에서 대출해주었다. 한번은 미국에 있을 때 한 파티에 초청되어 가게 되었다. 마침 그날 카루소가 노래를 부르기로 한 특별 순서가 있었다. 카루소가 파티장에 도착하였지만 그를 알아보는 사람이 한 사람도 없었다. 이에 기분이 상한 카루소가 돌아가려고 발걸음을 되돌리는데 마침 엘리베이터보이가 자신을 알아 보고 "아니, 카루소 선생이 아니십니까? 제가 돈을 모아서 선생님 공연을 보러가는 게 꿈입니다."라고 하였더니 카루소가 "아 그래요? 그럼 내 노래 중에 무슨 곡을 좋아하나요" 라고 물었다. 그 보이가 곡명을 말하니까 카루소는 즉석에서 그 노래를 부르기 시작하였다. 이때 파티장에서 카루소를 기다리고 있던 사람들은 밖에서 그의 노래 소리가 들리자 모두 복도로 몰려 나왔다. 거기에서 엘리베이터보이 한 명만 놓고 노래를 부르고 있는 카루소를 본 것이다. 카루소의 발성은 질은 물론이거니와 성량 또한 대단하였다. 세계적인 지휘 거장 토스카니니는 카루소를 "인류 역사상 전에도 없었고 앞으로도 영원히 나올 수 없는 목소리"라고 하였다. 카루소가 당시 최고의 오페라 작곡가인 푸치니의 오페라 '라보엠' 주인공 루돌프 역 오디션에 참여한 적이 있었다. 그 자리에 있던 푸치니가 "오 하나님 이런 사람을 저에게 보내 주셔서 진정 감사드립니다."라고 하였다. 이러한 천재도 병마를 이기지는 못했다. 그는 만성 늑막염과 폐렴을 앓고 있었다. 의사의 만류에도 늦둥이 딸을 위해 노래를 부른다며 무대에 섰던 카루소는 1920년 12월 24일 뉴욕 메트로폴리탄 오페라극장에서 엘레비의 오페라 '유태여인'의 엘레아자르 역을 끝으로 공식적인 활동은 막을 내린다. 그리고 그 다음에 여름 8월 2일 나폴리에서 숨을 조용히 거두었다. 이 때가 그의 나이 48세였다. 옆구리에 재떨이를 차고 다닐 정도로 지독한 애연가였던 엔리코 카루소… 48년이라는 그리 길지 않은 삶을 살다 갔지만 그의 위대한 목소리는 우리 가슴 속에 영원히 변치 않는 황금처럼 남아 있으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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