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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호종

프리랜서

때는 크로아티아에서었습니다.

크로아티아 두브로브니크 라는 도시에서 보스니아 헤르체고비나의 모스타르라는 도시로 향하는 중이었습니다. 아침 일찍 버스를 타니 한국 분이 아는체를 하더랍니다.

거의 3주일 만에 우연히 한국인을 만나 반갑게 인사를 나누고, 서로의 여행 스타일과 한국에서의 삶과 가치관 등 전반적인 이야기들을 하던 중이었습니다. 그 신사분의 나이는 70대 초반이셨는데요. 60여 개국 이상을 여행한 베테랑 중 베테랑이셨습니다. 그 정도 경력을 가진 분인데, 의외로 인생에서 가장 충격적인 일을 겪었던 장소는 한국의 한 시내버스 안 이었다고 합니다.

어느 날, 시내 버스에 탑승한 채 이동하던 중, 지팡이를 짚은 백발이 성성한 한 나이 지긋하신 노인분이 버스에 타더랍니다. 이내 자리를 양보해 드렸고, 노인분은 흔쾌히 자리에 앉으며 물으셨다고 합니다.

"내게 왜 자리를 양보해주시지요?"라고요.

신사분은 "저보다 나이가 많아보이셔서요."라고 대답하셨답니다.

그러자 노인분은 "내가 나이가 그대보다 많은지는 어케 아시었소?"라고 하셨답니다.

신사분은 당황하셔서 나이를 여쭈어보니 노인분은 본인의 나이가 94세이며, 현재 동창회를 가고 있다고 하셨더랍니다.

73세이신 신사분은 본인이 이제껏 살면서 들었던 가장 충격적인 대화였다고 하셨는데요, 저 또한 그랬습니다. 그 한마디에 경외감이 들어 순간 소름이 돋았습니다. 마땅히 살아야 할 방향으로 정확히 나아가고 있는 현자의 어떤 것을 본 느낌이었달까요. 어떠한 깊이로 94세의 현인이 그러한 질문과 대답을 하셨을까요.

현재 100여 일 동안, 머나먼 유럽의 소국들과 마을들을 유심 카드 없이 다니며, 행복에 대해 고민하고 있는 요즘입니다. 알바니아, 마케도니아, 코소보, 몬테네그로, 보스니아 헤르체고비나, 혹자는 이름조차도 생소한 나라들을 여행하고 있노라니 은퇴하고 밭 갈며 시골에서 살고 싶다는 부모님의 생각을 벌써부터, 이해할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더군요. 우리 기준으로 하면 정말 '아무것도' 없는 곳들에도 정말 많은 사람들이 살고 있습니다. 서로 눈을 마주치면 인사하고, 지인들끼리는 만날 때 헤어질 때 꼭 포옹을 합니다. 여아들까지도 모두 축구를 하며, 마치 우리네 1990년대 동네를 보는 느낌이랄까요. 삼삼오오 카페테리아에 앉아 대화를 하는 사람들 중 휴대폰을 만지는 이들은 거의 없습니다. 심지어 유심 카드를 아예 구매하지 않고 사는 이들도 종종 봤습니다. 시내버스의 개념이 없어 고속버스에 일정금액을 지불하고 버스정류장이 아닌 승객의 집 근처에 정차를 하며, 버스 기사는 간혹 운전하며 담배를 태우는 이 곳에서, 삶과 행복을 배우고 있습니다.

도망친 곳에 낙원은 없다지만, 낙원이 없다는 사실을 알게 될 것이 두려운 나머지 계속해서 찾아 헤메이는 척을 하고 있는 것일까요. 여행 초기의 저는 그 길 너머까지는 지혜가 닿지 않더군요. (물론 지금도 닿지 않습니다.) 지혜를 찾을 수 없던 저는, 큰 나라로 가기로 마음먹었습니다.

그리하여 이탈리아 밀라노에 갔을 때의 일입니다. 우연히 스웨덴에서 유학을 하고 있던 한국 여학생을 호스텔에서 만났는데요. 제가 먼저 운을 띄웠습니다.

"아 여기 이태리 사람들요. 너무" 라고 말을 하자 그 여학생이 제 말을 끊으며 이러더군요. "그쵸?· 너무 친절하고 착하지 않아요?" 라고 말입니다. 저는 정반대의 생각을 하고 있던 터라 당황스러웠습니다. 이탈리아 인들은 제가 여행하던 나라들의 사람들에 비해 너무 '서울사람' 같다는 생각이 들던 중이었거든요. 이해를 하지 못했지만 여차저차 대화를 갈무리 했었습니다.

와중에, 사우나가 핀란드어인것을 알고 계셨나요? 핀란드의 공공 사우나는 남녀노소 다 옷을 벗고 같이 증기찜질을 합니다. 때는 한겨울, 핀란드인들과 함께 같이 증기 사우나를 즐긴 후 얼어붙은 발트해의 바다를 깨트린 바다수영장에 들어가 몸을 식히고 나왔던 때였습니다. 젊은 백인 소녀가 벤치에 앉아 나체로 기타를 연주하며 노래를 부르는 모습을 본 나체의 저는, 그제서야 스웨덴에서 유학하는 여학생의 마음을 이해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나만 또 섣부른 편견에 휩싸여 있었구나' 하고 말이죠.

한국인을 만나 한국말로 대화한지가 언제였는지 손으로 셀 수 없는 날들이네요. 저는 지혜를 찾고자 다시 보스니아에 왔습니다. 다시 처음으로 돌아왔습니다. 과연 행복의 지혜가 있다고 믿는 것이 잘못된 것일까요? 아니면 믿을 수 있는 힘이 지혜인 걸까요?

네 달 넘게, 근처도 가지 못했다는 생각에 부끄러운, 제 속도 모르는 야속하게 화창한 봄날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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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뷰>임기근 39대 조달청장

[충북일보] "미래성장동력의 핵심인 중소벤처혁신기업이 지속 가능한 성장으로 지역은 물론 한국경제를 이끌어갈 수 있도록 지원하겠습니다." 임기근 조달청장은 21일 본보와의 인터뷰에서 "조달청 핵심 정책 추진 방향인 '중소벤처기업의 벗'이 돼 잠재력 있는 기업들이 마음껏 실력을 발휘할 수 있도록 돕겠다"며 이같이 밝혔다. 임 청장은 지난해 말 취임 후 경제 현장을 찾아 소통 행보을 이어가고 있다. 충북 방문 이유에 대해서도 "지역 민생경제 소통으로 미래먹거리를 발굴하기 위해서"라고 요약했다. 임 청장은 지난해 첨단재생바이오 분야 글로벌 혁신특구 후보 지역으로 선정된 충북은 앞으로 신제품·서비스 개발이 활발하게 이뤄질 것이라고 진단했다. 이어 "충북 내 다양한 유무형의 경제적 파급효과를 낼 수 있도록 공공조달의 전략적 활용을 통해 지역 내 중소벤처혁신기업 발굴부터 마케팅, 수출, 금융 등 총체적이고 입체적으로 지원해 나갈 것"이라고 강조했다. 특히 "혁신 조달기업의 성장과 도약, 글로벌 진출을 돕는 범부처 협업프로젝트가 지원정책이 핵심"이라고 소개했다. 혁신조달기업 범부처 협업프로젝트는 임 청장의 행정철학과 조달기업의 성장 핵심 지원 방향성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