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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혜경

시인

바람이 제법 거칠게 나뭇잎을 흔들고 있다. 햇빛에 반짝이던 억새가 휘청 허리를 꺾고 엄살이 심한 강아지풀도 땅에 붙어 일어날 기미를 보이지 않는다. 우리 집 강아지 가을이도 방바닥에 붙어 뒹굴뒹굴하고 있다. 가을이가 내게 온 지 어느새 열네 해가 됐다. 잔병치레 없이 건강하게 잘 지내 준 것이 참으로 고마운 일이다. 작은아들이 학교에 다닐 때 손바닥보다 작은 간난이로 왔다. 겨우 눈을 뜬 핏덩인데 온몸에 진드기가 감염되어 아들과 나도 호되게 진드기 감염병을 앓았다. 유난히 강아지를 좋아하는 작은 아이의 정성으로 밥도 잘 먹고 잘 노는 순한 아이로 자랐다. 10년이 지나고 나니 가을이는 강아지가 아니라 능구렁이였던 것 같다.

아이들도 취직하고 결혼해 모두 집을 떠나고 저와 나밖에 남지 않았는데 가을이가 나를 외면한다. 예전에는 내가 안방으로 가면 안방으로 거실로 가면 거실로 졸졸 따라다니더니 지금은 화장실 매트에 둥지를 틀고는 비켜주지 않는다. 예전처럼 저와 놀아 줄 기운도 없고 운동장에 나가 함께 달리기하지도 못한다. 자주 씻기고 꾸며주지도 못한다. 더더욱 코로나 때문에 안아주는 것도 꺼려지니 나를 멀리할 만도 하다.

며칠 전 개 훈련 프로그램에서 사납게 주인을 무는 개를 반려견으로 길러야 하는지에 관한 고민을 하는 것을 보았다. 나도 지금은 같은 고민에 빠져있다.

한동안 집에서 기르는 강아지를 애완견이라고 하다가 지금은 반려견이라고 한다. 개인적 생각이 다르겠지만 반려라는 단어까지 써야 한다는 것에는 반대하는 사람 중 하나다. 반려라는 뜻은 생각이나 행동을 같이하는 짝이나 동무, 또는 항상 가까이하거나 가지고 다니는 물건을 비유적으로 이르는 말이라 한다. 집에서 기르는 개가 과연 나와 얼마나 같은 생각을 하는 것일까. 반려라는 단어는 배우자에게만 쓰는 것이 좋겠다는 생각이 드는 나는 어쩌면 노인의 사고를 벗어나지 못하고 있는 것인지도 모른다.

요즘 가을이는 제 맘에 안 들면 무조건 무는 것으로 만사 해결하려 든다. 온 가족이 돌아가며 물린다. 목줄을 걸기도 무섭고 목욕을 시키기도 어렵다.

프로에서 고민을 털어놓던 부부는 아기가 태어나면서 기르던 개가 아기를 보면 으르렁거리는 데에 문제가 있다고 했다. 그걸 보면서 아기가 소중할까 개가 소중할까 하는 생각에서 나는 고민의 여지가 없이 아기를 선택한다. 인간이 꾸려가는 가족을 바탕으로 반려견도 있는 것이지 개가 중심이면서 사람이 개의 반려인이 되어서는 안 되는 것이다.

우리 집도 사례자와 같은 상황에 있다. 두 해 전에 연로하여 몸이 불편하신 어머니가 우리 집으로 오셨다. 한동안 어머니를 향해 지독하게도 짖고 물어서 집안이 지옥 같았다. 요양보호사도 물리고 찾아오는 사람 모두에게 적대감을 보였다. 더는 함께하기 어렵다는 생각에 유기견 보호소에 문의 전화를 하기도 했었다. 그것도 못 할 짓이었다. 수화기를 들면서부터 눈물이 나서 제대로 상담도 못 하고 전화를 끊었다. 나도 감당하기 어려운 저 천둥벌거숭이 같은 녀석을 누구에게 보낸단 말인가. 누가 저 아이를 예뻐해 줄 수 있겠는가. 어떻게든 서로 참고 생을 마감하자는 생각에 밤새 가을이를 안고 울었다. 어머니는 약간의 치매가 있고 혼자 거동이 어렵다. 내가 보기에 가을이도 노인성 치매인 것 같다. 어제도 요양사를 향해 한바탕 성질을 부린 모양이다.

원앙 같았던 반려자도 시간이 흐르면 으르렁거리는 것이라는데 반려견이야 오죽하겠는가. 젊고 어리고 싱싱할 때 반려라는 이름도 예쁘고 향기롭다. 그러나 늙고 병들고 추레해진다는 것도 반려라는 단어의 무게에 실려있다는 것을 기억해야 할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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