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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혜경

시인

뭘 해야 할까. 조문을 하러 가야 하나 욕을 해야 하나. 온 국민이 충격에 빠졌다. 이래서 사랑과 미움을 양면이라고 했나 보다. 지난 주말은 의미 있는 분들이 세 분이나 운명하셨다. 가까이는 건강하셨던 큰 외삼촌이 밭일하다가 돌아가셨고, 최고의 장군으로 어려서부터 존경했던 백선엽 장군이 소천하셨고, 또 한 분이 서울 시장이다.

외삼촌은 참으로 유쾌하고 머리가 명석한 분이었다. 팔순에 가까운 지금도 현직에서 일하고 계셨고 사회 참여도 적극적인 분이시다. 외삼촌의 단점은 여성 편력이다. 잘생긴 외모 탓인지 팔십이 코앞인 지금까지도 여자문제를 일으켰다. 이럴 때마다 어머니와 나는 의견 충돌이 일어난다. 어머니는 팔이 안으로 굽는다는 말대로 여자들이 잘난 동생을 가만히 두질 않는다고 하시고 나는 그것이 어째서 여자 탓이냐고 다투게 된다.

이런 대립은 어제 회의에서도 일어났다. 연세가 조금 있으신 회원이 그 여비서가 공연히 아까운 사람 하나 잡았다는 표현을 해서 공분을 사기도 했다. 여성이 사회에 나가 안전을 보호받는 일이 요원한 일인지 도저히 믿기지 않게도 끊임없이 성추행이 일어난다. 당당하고 똑똑한 여성도 상사라는 직권을 가지고 저지르는 추행을 피해가지 못하는데, 그 직장에라도 나가야 입에 풀칠하는 힘없는 여성들은 절망에 빠질 수밖에 없다. 그런데 인권 변호사에 미투를 적극적으로 응원해주시는 분을 어찌 존경하지 않을 수 있겠는가. 당을 구분하지 않고 진보와 보수를 떠나서 인간적인 면 하나로 존경하고 그가 하시는 일에 갈채를 보냈었다. 그래서 충격과 실망은 더 컸나 보다. 한동안 사건을 모르니 아무 말도 할 수 없었다. 조금만 더 기다려보자며 지냈는데 어제부터 보도된 일은 정말 빛이 사라진 것처럼 기가 막혔다.

한 가지 흠 없는 사람이 어디 있느냐고 하지만 국민의 지지를 얻어 일하는 공인은 자세가 달라야 하지 않은가 한다. 선거에 출마할 때 그들은 공복이라는 단어를 썼었다. 당선되자마자 공복 대신 상전이라는 단어를 쓰는 것은 아닌지 모르겠다.

이제 구십을 목전에 두신 어머니는 남자가 여자 좋아하는 것은 배냇병이라고 하신다. 여자가 좋아서 여자를 사랑해서 그러는 것과 성추행은 다른 문제이니 아름답지 않은 것이다.

잠룡이라는 사람들이 성추문으로 명예를 잃고 목숨을 잃는 것을 보면 정말 안타깝다. 국민의 존경을 한 몸에 받고 앞을 향해 바르게 가셨다면 어쩌면 우리나라의 지도자가 될지도 모르는 분들인데 이게 무슨 일이란 말인가. 한 나라를 이끌어 가는 지위와 명예보다 무엇이 더 중하단 말인가.

그래도 참 다행한 일이다. 예전에 이런 일로 높은 분들을 어찌할 수는 없었다. 여성은 그냥 피해를 보고도 말하지 못했고 더 큰 불이익을 당할까 봐 두려워 숨어야 했다. 그런데 지금은 문제가 불거지면 직장을 잃고 감옥에 가기도 하고 목숨을 잃기도 한다. 여성의 인권이 요만큼은 좋아졌다는 말인 것 같아 조금씩 희망을 가져본다.

내가 무척이나 존경했고 좋아했던 분들을 잃고 사는 일이 쉽지만은 않다고 생각했다. 도덕적이고 바른생활을 해야 하는 데는 높고 낮음이 구분되지 않는다. 끝까지 숨길 수 있는 것이 어디 있겠는가. 잘못과 흠은 어디서 새어 나와도 나오는 법 아닌가. 내가 한 번도 써보지 않은 修身齊家 治國平天下라는 말이 입에 맴도는 것은 무슨 이유일까.

계속 비는 오고 사무실의 천장은 양동이를 더 가져오라고 한다. 비 새는 건물에 근무하는 데도 이제 이골이 났다. 높고 부유한 사람들의 사는 방법까지 내가 짐작할 수는 없겠지만 낮고 가난한 사람들은 지금도 비 오는 날 양동이를 바쳐놓고 산다. 높은 곳에서 존경을 받는 분들이 더 큰 그림을 그리며 당당하고 아름다운 일만 했으면 좋겠다. 내가 보냈던 사랑의 무게만큼 미움이 나를 누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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