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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인

김혜경

남자 작가님들이 아직도 먼 저녁 시간을 손꼽으며 기다리신다. 남자들도 이렇게 노래를 좋아한다는 것을 처음 알았다. 미스트로트가 한바탕 우리나라를 들썩이게 하더니 이제는 미스터 트로트가 다시 전국을 흔들고 있다. 뽕짝이라고 속되게 불리기도 하는 트로트를 좋아하는 사람이 이렇게도 많았다니 놀라울 따름이다.

사촌 중에 이미자의 동백아가씨를 기가 막히게 잘 부르는 언니가 있었다. 외모가 곱지 않아서 가수가 되지는 못했지만 가수가 되었다면 한 획을 그었을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든다. 그 언니는 노래 부르기를 좋아하고 춤추기도 좋아했다. 아마도 가슴 속에 내재되어 있는 끼가 자주 요동을 치는 모양이다. 끼라는 것은 언니에게만 있는 것이 아니라 우리민족의 공통된 감성일지 모른다. 어려서부터 역사시간에 우리민족은 가무를 즐기는 민족이라고 배웠다. 그때는 그 말에 동의하기가 좀 어려웠는데 어른이 되고 보니 우리나라 사람은 참말로 노래 부르기를 즐긴다는 것을 알았다. 반주나 악기가 없어도 손바닥 장단으로 장소를 불문하고 흥을 끌어 올리는 사람들이 우리민족이다.

오늘 저녁에는 어떤 사람이 본선에 올라가고 어떤 사람이 아깝게 탈락을 할는지 여러 사람들의 의견이 분분하다. 어린 신동들이 나와 트로트를 맛깔스럽게 부르는 것을 보고 빠져들지 않은 사람은 없을 것이다. 어린 신동들이 탈락하는 것을 보고는 마치 내 손자가 떨어진 양 바닥을 치며 아쉬워했었다. 동요를 부르고 아이들 율동을 해야 할 나이에 목소리를 꺾어가며 떨림의 창법을 구사한다. 구성지게 넘어가기도 하고 어깨에 신명을 담기도 한다.

트로트는 일본의 엔카(演歌)의 영향을 받은 일본 가요라는 주장이 강하다. 엔카는 1920년대 이전에 서양의 음악인 Foxtrot의 영향을 받은 노래로 주로 번안곡으로 불렸다고 한다. 재미있는 것은 1919년에는 우리나라의 소설 장한몽한의 이수일과 심순애를 등장 시켜 《금색월차(金色月叉)》를 취입 하여 드디어 일본이 자국가수 취입시대로 접어들었단다. 그러나 일본가수의 취입은 이어지지 않았고 1930년대에 우리나라 가수 윤심덕의 사의찬미, 이정숙의 낙화유수 등이 엔카의 주류가 되었다. 그러고 보면 우리의 남도민요가 깊이 배어있는 트로트를 엔카라고 해야 하는지에 의문이 가기도 한다. 판소리와 민요가 우리의 전통가요라고 하는 것처럼 트로트도 서양과 일본의 영향을 받긴 했으나 우리의 정서가 속속들이 어우러진 우리나라의 독특한 장르의 노래가 되어야하는 것은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든다.

노래를 잘 한다는 것은 삶이 부드러워지고 생기가 도는 일일 것이다. 속이 상한 일이 생겼을 때 술을 먹거나 화를 내는 일로 푸는 것보다 노래 한곡 목 터지게 부르고 나면 모든 속 터지는 일이 사라질 것 같다.

나는 참으로 노래를 못하는 사람 중 하나다. 누구 앞에서 노래를 불러야 하는 일을 격하게 거부하는 사람이다. 최악의 음치인 것도 있지만 트로트의 감성을 잘 살리지 못한다. 문학이나 예술은 똑같이 표현을 잘 하려면 감성이 충분히 녹아들어가야 한다고 본다. 아직은 기교도 발성도 감정이입도 못하는 이 음치는 TV에서 눈을 떼지 못하고 탈락하는 사람들을 위해 안타까워만 하고 있을 것이다.

세상엔 그림을 그리는 화가가 있으면 잘 봐주는 사람도 있고 피고름으로 글을 쓰는 사람이 있다면 눈물로 읽어주는 독자가 있고 온 마음으로 노래하는 사람이 있다면 진심을 다해 들어주는 청자도 있는 법이다. 나는 성실한 청자가 되어 오늘 밤도 트로트에 몰입할 준비가 되었다. 어느 아름다운 노래와 어느 아름다운 가수가 내 마음을 흔들어 놓으려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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