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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혜경

충북여성문인협회장

마른빨래를 걷어 차곡차곡 접으며 펑퍼짐한 엄마의 바지를 본다. 치마를 입으신 것이 언제일까. 줄무늬 치마를 오래도 입으셨는데 결국 내 손으로 버리고 보라색 원피스는 끝내 버리지 못하고 다시 넣어두고 말았다. 가끔 삶에 지쳐 쉬고 싶을 때 엄마의 품속, 치마폭을 생각하곤 한다.

오늘은 엄마의 주간보호센터를 옮기는 날이다. 친절한 요양사 선생님 덕에 일년여를 큰 걱정 없이 맡길 수 있었지만 내 출퇴근 시간과 맞지 않아 옮길 수밖에 없는 사정이 생겼다. 성격이 우직한 엄마는 옮기기를 원치 않으시는 눈치지만 자식이 옮기자니 아무 말씀도 하지 않으신다. 새 주간보호센터를 수소문하러 다니며 오래전 엄마를 모시고 할머니의 요양원을 찾아다니던 생각이 났다.

할머니가 요양원에 계실 때 엄마는 자주 할머니를 보러 가셨다. 비가 오면 비가 온다고, 바람이 불면 바람이 분다고, 봄이 오면 봄이 왔다고 할머니가 계신 요양병원을 찾으셨다. 장마 소식이 있던 날 엄마는 또 길을 나섰다. 무릎이 좋지 않은 엄마를 마지못해 따라나서며 날 나를 알아보지 못하시는 할머니를 보러 가는 일이 짜증이 나기도 했었다. 할머니는 늘 배가 고프다고 잔뜩 화가 난 얼굴로 간병인에게 욕을 퍼부어댔다.

노인들의 비릿한 살 냄새와 침대 옆 변기에서 나는 오줌 냄새가 억지로 눌러 놓은 눈물과 함께 자꾸 속을 치받는다. 창문을 열면 졸음 같은 햇살이 병실에 스며들었다. 깡마른 다리에서 떨어진 비듬처럼 할머니의 짧은 머리 위에서 햇살이 부서져 반짝였다. 동백기름 자르르 흐르던 비녀 꽂은 쪽머리는 간데없고 사내아이보다 더 짧게 자른 머리카락만 제멋대로 흩어져 있었다. 내 기억 속의 외할머니는 하얀 무명치마에 하얀 앞치마를 두르고 한 올 흘러내림 없이 참빗으로 곱게 빗어 쪽을 찐 모습이었다. 갯가에서 조용히 오가는 두루미 같았다. 아흔아홉 간 집 외딸의 자태를 고이 간직하고 계셨던 분이셨다. 세월을 이길 장사 없다고 했던가. 90이 넘은 할머니는 치매를 앓고 계셨다. 할머니는 딸의 치마를 만지작거리며 엄니라고 불렀다.

창문 사이로 음습하고 퀴퀴한 공기가 노인의 콧속에서 새어 나오는 명주실 같은 생명의 끈처럼 빠져나간다. 문병 온 가족들은 가지고 온 떡 몇 조각을 서둘러 환자에게 먹이고 촘촘히 자리를 뜬다. 아마 그들은 병원 문밖을 빠져나가기도 전에 오늘처럼 날 좋은 날 돌아가셨으면 좋겠다는 말을 할지도 모른다. 그리고 그들을 못 됐다고 말할 사람도 없을 것이다. 90이 넘어 돌아가시면 호상이라고 했던가. 호상이라는 잔인하고 폭력적인 말을 우리는 아무렇지도 않게 사용하고 있다. 함께 밥을 먹고 말하고 나를 쓰다듬어주고 나를 세상에 있게 해주신 분께 호상이라는 말을 한다는 것이 비인간적이지만 삶이 망가지는 가족을 생각하면 비난할 수만도 없는 노릇이다.

그날의 할머니처럼 엄마도 허물어져 간다. 새로 가야 하는 주간 보호센터에 적응하실지 걱정이 된다. 엄마의 보호를 받고 있을 때 학교에 입학하거나 전학할 때 엄마의 치마꼬리를 붙들고 다녔다. 새로운 환경에 적응하는 것은 두려움이었다. 엄마도 내심 불안하신 모양이다.

평생 엄마의 치마폭은 내 삶의 은신처였고 휴식처였고 삶을 다친 나를 치유해주는 병실이기도 했다. 그런데 이제 엄마는 내 치마폭에 숨으려 하신다.

엄마는 아직도 할머니가 꿈에 오셨다는 말을 자주 하신다. 놀라거나 당황하시면 나를 엄니라고 부르신다. 엄마는 포근하고 아늑한 치마폭을 잃어버리시고 새 치마폭을 찾으려 하시지만 내게는 비단으로 지은 아늑한 치마폭이 없다는 것이 못내 죄송하다. 엄마가 잃어버린 치마폭을 그리워하는 것처럼 나도 어린 날의 엄마 차마폭에 싸여보고 싶다. 엄마만의 냄새가 나는 그 치마폭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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