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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혜경

충북여성문인협회장

 어제보다 조금 더 길어진 햇살이 창문을 넘어와 내 거실에서 논다. 배를 쭉 깔고 소파에 누웠다가 바닥에 누웠다가 얌전히 앉아 한나절 TV도 보다 간다. 함께 동백이 피는 것을 보자고 햇살의 손을 끌고 화분 앞에 앉는다.

 올해는 유난히 동백의 꽃망울이 많이 맺혔다. 더러는 벌써 피었다 지고 더러는 아직 붉은 기운을 내지 못하고 작은 봉오리로 맺혀 있다.

 "비올레타, 안녕"하고 눈인사를 건넨다. 가지 끝마다 당알당알 꽃망울을 맺었다. 몇 겹의 꽃잎으로 활짝 핀 꽃은 내 주먹보다도 크다. 꽃의 무게가 버거운 가지는 축축 늘어져 허리를 펴지 못한다.

 겨우내 꼼짝을 하지 않던 햇살이 찾아오자 너도나도 햇살에 얼굴을 들이밀고 꼭꼭 여미고 있던 붉은 치마를 풀어 놓는다.

 그 헤프고 화려한 기색이 '슬픈' 이라는 말에는 어울리지 않지만 나는 언제나 슬픈 비올레타라고 부른다.

 햇살 속에서 맘껏 사치를 부리며 라트라비아타 축배의 노래를 부르고 있는 것 같다.

 피가 끓는 쾌락에 빠져있는 파티장의 화려함이다. 무대의 조명처럼 햇살은 쏟아져 내리고 무희들의 춤은 어지럽게 돌아간다. 나도 붉은 드레스를 입은 여인처럼 그 화려함에 빠져 있다.

 이 정열의 꽃을 왜 나는 꼭 슬픈 비올레타라고 부르는 걸까.

 비올레타의 가슴에 달려있던 붉은 동백 탓인지도 모르겠다.

 쾌락과 방종을 열정이라고 말할 수 없듯이 사랑 또한 기쁨일 수만은 없는 것인가 보다.

 흥건하게 쾌락에 젖어 살던 비올레타가 사랑을 알면서부터 고통을 알게 됐으니 사랑은 덫이 된 셈이다.

 다 시들지 않았는데도 순간 뚝 떨어져버리는 동백을 보는 일은 슬픔이다. '아 그대였던가.'를 다 부르기도 전에 '지난날의 아름다운 꿈이여, 안녕'을 말하는 것 같다.

 환하게 웃고 있던 비올레타가 갑자기 쓰러져버리는 것처럼 동백은 뚝뚝 떨어져 내린다. 아무런 미련도 애착도 없었다는 듯이, 바닥의 출신은 바닥으로 돌아가겠다는 듯이 뛰어내린다.

 생생한 채 떨어진 꽃을 주워 와인 잔에 띄워 놓는다. 아직 파티는 끝나지 않았다고 흔적 없이 사라지는 순간까지 파티를 즐겨보자고. 내 집에서는 신분의 차이도 돈도 따질 필요가 없으니 조금이라도 더 축배의 잔을 들어보자고 떼를 쓰듯 졸라대고 있다.

 내가 제일 좋아하는 꽃은 양귀비와 동백이다. 색이 고와서도 아니고 사연이 있어서도 아니다. 시들지 않은 상태로 져버리는 모습이 애처롭기 때문이다.

 순결한 여인처럼 피어나는 백합이 지는 모습은 안타까울 정도로 오래간다.

 빛이 퇴색하고 모양이 말라 뒤틀리고도 떨어지지 않으려 줄기를 움켜쥐고 있다. 한생을 다 살고도 미련이 남아 생을 구걸하고 있다는 느낌마저 든다. 달큰한 향내로 천지를 뒤흔들며 우아하게 피어나는 치자 꽃이 지는 모습도 추레하다.

 양귀비와 동백은 한창 화려할 때 생을 놓아버린다. 채 피지 못하고 떨어져버린 꽃처럼 애처롭다.

 삭막한 겨울의 문을 열고 제일 먼저 나를 찾아오는 동백이기에 더 애잔하고, 내 사랑 따위는 아랑곳 하지 않고 사라져가기에 더 미련이 남는지도 모르겠다.

 뚝뚝 동백이 떨어질 때마다 내 가슴도 뚝뚝 한 조각씩 떨어져 나가는 것 같다. 내 끝인사는 언제나 '슬픈 비올레타, 안녕.'

 봄 햇살이 슬그머니 자리를 털고 일어선다. 갈 사람은 가고 언제나 새로운 사람이 오는 것이라고 내 어깨를 다독이곤 긴 그림자를 끌고 사라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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