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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혜경

충북여성문인협회장

살면서 절실히 필요한 것이 무엇일까. 욕심 많고 게으른 내게는 셀 수 없을 만큼의 것들이 필요하니 일일이 손가락으로 꼽기도 힘든 일이다. 엄마 친구들이 모여서 여자가 나이 들어 제일 필요한 것은 '돈과 친구와 딸'이라는 말을 하시며 깔깔 웃기도 하셨다. 나이가 들면 남편도 아들도 아니고 딸이라니 옆에서 듣고 있는 딸의 관점에서 묘한 기분이 들기도 한다. 감사하기도 하고 울화가 치미는 말씀이기도 했다. 예전의 대부분 부모가 그랬던 것처럼 내 어머니도 아들과 딸을 티 나게 차별하셨다. 딸들이 일주일을 울며 매달려도 되지 않던 것들을 아들은 퉁명스러운 말 한마디면 즉시 얻어낼 수 있었다. 그렇게 귀하게 기른 아들이 필요한 것이 아니라 늙고 병들면 딸이 필요하다니 이 무슨 이기적인 계산이란 말인가. 거동이 불편하신 어머니가 내 집에 오신지도 2년이 되어간다. 나날이 힘이 빠지고 정신도 흐려지신다. 매일 놀러 오던 친구들도 하나둘 주간 보호센터로 요양원으로 떠나고 만날 친구가 없다.

지나온 삶을 돌아보면 아이들을 키우는 동안 나를 치장하거나 친구를 만나고 사귈만한 시간도 여유도 갖지 못하였다. 남편과 자식의 주변만 맴돌며 살다 보니 함께 늙어갈 친구들을 챙기지 못했다. 30~40대에는 아이들의 교육문제며 잡다한 가족 친지들과의 관계에 얽혀 경제적 시간적 여유가 부족하기 마련이다. 또한, 살며 어려운 일이 닥쳐도 친구들과는 묘한 자존심에 얽혀 고민을 털어놓게 되질 않았다. 지천명의 나이쯤 되고 보면 그제 살림을 꾸려가는 일에서 한숨을 돌리게 되고 잃어버리고 살아온 자신의 이름을 되새겨 보게 된다. 하나씩 아이들을 짝지어 분가시키고 나면 가슴에 밀려드는 허한 바람을 혼자서 이겨내기란 쉬운 일이 아니다. 추억을 공유하고 갱년기우울증의 가장 좋은 도우미가 되어 줄 벗이 있다면 늙는 것도 그리 힘들지는 않으리라. 그런데 만날 친구가 없다는 것은 얼마나 쓸쓸하고 숨 막히는 일일까.

어머니는 걸음이 불편하시니 맛난 것을 먹으러 가기도 쇼핑을 하기도 꿈꿀 수 없는 일이 되고 말았으니 돈이 무슨 소용이겠는가. 노년이 되면 친구와 여행도 가고 맛난 곳이 있는 곳을 찾아다니며 친구와 즐겁게 지내는 날들을 희망하셨겠지만, 건강을 잃고 나서는 아무짝에도 소용없는 것들이 되고 말았다.

어머니에게 이제는 돈은 필요 없는 것이고 친구도 혼자 불러보는 이름으로만 존재하는 허망한 단어다. 오직 먹고 씻고 화장실 일을 돌봐줄 딸만이 유일한 필요가 되고 말았다.

어머니를 보면서 나도 더 늙기 전에 친구와 자주 만나고 맛있는 것도 먹고 함께 여행도 다녀야겠다는 생각을 하고 보면 돈과 친구와 딸이 내게는 꼭 필요한 것이다.

나는 돈이 넉넉하지는 않지만, 마음을 나눌 친구가 몇은 있으니 그리 우울하지는 않다. 그 친구들이 내 남은 여정을 함께할 거로 생각하면 참으로 소중한 사람들이다. 그들이 내 좋은 친구가 아니라 내가 그들의 좋은 친구가 되어야 한다. 어머니도 자매처럼 지내는 세분의 친구가 있었다. 치매가 심해진 친구, 몸이 아픈 친구, 걸음을 못 걷는 친구, 이런저런 기가 막힐 일들로 이렇게 흩어져 만나지 못다. 그런데 더 안타까운 것은 그리운 친구를 기억하지 못한다는 것이다. 꼭 필요한 것들의 불필요를 순리처럼 받아들이고 계신 것이다.

주간 보호센터에서 돌아오시면 매일 지난 일들에 관해 얘기를 나눈다. 어머니의 기억이 온전하기를 바라는 마음에서 시시콜콜한 것까지 질문해본다. 많은 기억이 사라지고 없다. 내 어린 날들이 어머니의 기억 속에서 뭉턱뭉턱 베어지고 있다. 그리운 아버지도 먼저 가신 언니의 기억도 지워져 간다. 다 지워도 꼭 필요한 딸은 오래 기억하시길 믿지도 않는 신께 빌어보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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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북일보가 만난 사람들 - 단양교육지원청 김진수 교육장

[충북일보] 몇 년동안 몰아친 코로나19는 우리 나라 전반에 걸처 많은 염려를 낳았으며 이러한 염려는 특히 어린 아이들에게 실제로 학력의 위기를 가져왔다. 학력의 저하라는 위기 속에서도 빛나는 교육을 통해 모범 사례로 손꼽히는 단양지역은 인구 3만여 명의 충북의 동북단 소외지역이지만 코로나19 발 위기 상황에서도 잘 대처해왔고 정성을 다하는 학교 지원으로 만족도도 최상위에 있다. 지난 9월 1일 자로 단양지역의 교육 발전에 솔선수범한 김진수 교육장이 취임하며 앞으로가 더욱 기대되고 있다. 취임 한 달을 맞은 김진수 교육장으로부터 교육철학과 추진하고자 하는 사업과 단양교육의 발전 과제에 대해 들어 본다. ◇취임 한 달을 맞았다, 그동안 소감은. "사자성어에 '수도선부(水到船浮)'라는 말이 있다. 주희의 시에 한 구절로 강에 물이 차오르니 큰 배도 가볍게 떠올랐다는 것으로 물이 차오르면 배가 저절로 뜨더라는 말로 아무리 어렵던 일도 조건이 갖춰지면 쉽게 된다는 말로도 풀이할 수 있다. 교육장에 부임해 교육지원청에서 한 달을 지내며 교육장의 자리가 얼마나 막중하고 어려운 자리인가를 느끼는 시간이었다. 이렇게 어렵고 바쁜 것이 '아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