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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혜경

시인

백수가 과로사한다는 말이 있듯이 공연히 바쁠 날들의 연속이다. 여러 가지 흩어진 일들로 집중이 되지 않는 날에는 일들을 치워버린다. 며칠을 매달려도 끝이 보이지 않으면 지쳐버린다. 문학회동인지를 만드는 일도 그중 번잡스러운 일 중 하나다. 기간 내에 글을 받기도 어렵고 행사 사진을 취합하는 일이 단독으로 할 수 없는 일이기에 힘이 든다. 그럴 때는 한동안 밀쳐둘 필요가 있다는 생각이다.

나이가 들어가며 어딘가에 집중하는 일이 어려워진다. 신체적인 문제도 있지만, 정신적인 몰입도도 떨어진다. 뭔가를 곰곰이 생각하여 결론을 내려야 하지만 몰입이 되지 않는다.

이럴 때 잠시 여행하거나 영화를 보러 가고 싶기도 하지만 그럴 상황이 아니니 내가 몰입하는 것은 스도쿠를 푸는 일이다. 방정식이나 미적분을 푸는 것도 아니지만 침대 끝에 작은 테이블을 놓고 스도쿠를 풀기 시작하면 시간 가는 줄 모른다. 줄잡아 1천200문제쯤 풀었으니 선수가 될 만하지만 자주 틀려 지우개 가루가 수북하게 쌓인다. 학생을 가르치는 일에서 손을 떼고 숫자와는 멀어지고 싶었다. 사실 숫자와 엄청 친하지도 않았지만 그래도 다른 학문보다야 숫자가 많은 과목을 배우고 가르치고 밥을 벌어 먹고살았다. 그걸 배운 도둑질이라고 하는 것인지 살며 종종 마음이 심란하고 뭔가 풀리지 않을 때는 스도쿠를 풀면서 잡념에서 벗어나곤 했다. 여든한 개의 빈칸에 겹치거나 엉키지 않게 숫자를 넣는 일이 그리 간단하지는 않은 일이지만 사는 일의 복잡함에 비하면 너무나 단순한 일이다. 남들은 문제 푸는 일이 더 머리 터지게 한다고 하지만 나는 세상일이 더 머리 터진다.

어떤 일에 흐르는 물에 내 몸을 맡기듯 시간 가는 줄 모르고 빠져드는 상태를 몰입이라고 한다. 마음이 무겁거나 어찌할 방도가 떠오르지 않을 때 또는 할 일이 너무 쌓여 의욕을 잃게 할 때 침대 끝에서 푸는 스도쿠는 한두 시간이 흐르는 것은 의식하지도 못하게 한다. TV 드라마에 빠져 있을 때 세상의 잡다한 일에서 벗어나 자신을 드라마의 주인공과 일체화시키는 것처럼 나도 숫자와 하나가 된듯하다. 1은 생긴 모양이 뻣뻣하여 옆으로 기울여준다. 좀 더 겸손하여지라고 말이다. 2는 여성의 숫자라고 누군가 말한 것처럼 안정감 있어서 좋다, 3은 늘 불안한 상태로 건들거리고 4는 화살처럼 날카롭다. 중간에 끼여서 아무런 특징도 없는 5를 가능하면 예쁘게 모양 잡아 써주려고 노력한다. 이렇게 숫자와 놀다 보면 복잡한 일들을 까맣게 잊는다.

몰입에도 중독이라는 위험이 있다. 어쩌면 핸드폰 게임에 빠지거나 게임방에서 밤을 새우는 게임광들에게 중독이라는 말을 써야 하는지는 모르겠지만 나처럼 잠시 복잡한 일에서 머리를 비우고 싶은 거로 생각해 본다.

그런데 참으로 신기한 것은 어느 순간 묵은 일들을 삽시간에 해치울 새로운 능력과 에너지가 생긴다는 것이다. 잔뜩 밀려있던 일들이 손을 대는 순간 척척 끝을 맺는 것이다.

에이브러햄 매슬로는 내가 원하는 것과 내가 안 하면 안 되는 것 사이의 조화를 이루는 것이 성장의 과정이라 말한다. 내가 원하는 것만 하면서 살고 싶은 것이 모든 사람의 마음일 테지만 그럴 수는 없는 일이고 내가 '하지 않으면 안 되는 일'이 '하고 싶은 일'보다 훨씬 많은 것 같아 힘든 것은 아닌지, 그래서 더 하고 싶지 않은 것은 아닌지 모르겠다.

하지 않으면 안 되는 일과 하고 싶은 일 사이에서 조화를 이루지 못하고 있는 그 머리 아픈 사이를 숫자를 지팡이 삼아 잠시 건너보는 것도 행복한 일이었다. 하지 않으면 안되는 일에 몰입하기 위해서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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