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구름많음동두천 17.6℃
  • 맑음강릉 20.3℃
  • 구름많음서울 18.2℃
  • 구름조금충주 17.0℃
  • 맑음서산 18.6℃
  • 맑음청주 18.1℃
  • 맑음대전 18.5℃
  • 구름조금추풍령 19.0℃
  • 맑음대구 19.0℃
  • 맑음울산 20.0℃
  • 맑음광주 18.4℃
  • 맑음부산 19.1℃
  • 맑음고창 18.4℃
  • 맑음홍성(예) 18.0℃
  • 맑음제주 21.3℃
  • 맑음고산 18.8℃
  • 구름많음강화 15.3℃
  • 구름조금제천 17.2℃
  • 구름조금보은 17.3℃
  • 구름조금천안 17.8℃
  • 맑음보령 18.9℃
  • 맑음부여 18.7℃
  • 맑음금산 18.1℃
  • 맑음강진군 18.7℃
  • 구름조금경주시 20.7℃
  • 맑음거제 19.7℃
기상청 제공

최근기사

이 기사는 0번 공유됐고 0개의 댓글이 있습니다.

김혜경

시인

"꿈이 뭐에요?"라고 묻는 질문처럼 황당한 질문이 또 있을까.

나이 이순을 지나 꿈을 꾸는 사람이 과연 몇이나 될까. 꿈이 무엇이었는지 까마득히 잊은 지 오래다. 단발머리 어린 소녀일 때도 나는 꿈이 없었던 것은 아닌지 모르겠다. 지금은 벌어먹고 사는 일이며, 아이를 교육하는 일에 지쳐 그런 것을 생각해볼 여유가 없다 해도 분명 그때는 꿈이 있었을 텐데 말이다.

어느 날 좀이 반쯤은 먹은 중학교시절의 일기장 묶음을 찾았다. 누가 볼까싶어 깊이도 감춰두었던 것이다. 자물통이 달려있는 것도 아니고 그냥 회색의 얇은 대학노트였다. 붓글씨를 가르쳐주시던 선생님께서 먹으로 쓴 글씨는 천년이 가도 변하지 않는다고 하셨고 연필로 쓴 글씨도 변하지 않는다고 하셨다. 나는 그 말을 믿고 주로 연필로 일기를 썼다. 그런데 마치 손으로 뭉개놓은 것처럼 뿌옇게 번져있었다. 역시 영원한 것은 없는 모양이다.

글씨는 번져있지만 한자 한자 꼭꼭 눌러쓴 글씨가 소녀처럼 예뻤다. 주로 친구와 하굣길에 어디를 돌아다닌 이야기가 전부였다. 도서관에서 빌려온 책 이름도 적혀있었고 독후감도 열심히 썼던 것 같다. 나름 참으로 건전하고 얌전한 소녀였던 것 같다. 한참을 읽다가 중3무렵에 뜬금없이 나는 소설가가 되어야겠다는 말이 나와서 깜짝 놀랐다. 얌전한 교복차림처럼 얌전한 소녀가 아니었단 말인가.

기억을 더듬어보니 최인호라는 소설가가 나오면서부터 그의 소설에 빠져서 살았던 것 같다. 그 무렵 신문에 별들의 고향이 연재되고 있었다. 얼굴을 붉히면서 경아가 나오는 소설을 읽고 또 읽었다. 언니는 어린애들은 그런 걸 보면 안 된다고 했다. 그래서 더 열심히 봤는지도 모른다. 그 후로 나는 최인호 작가를 따라서 경아가 되었다가 깊고 푸른 밤의 제인이 되고 불새의 지은이가 되어 갔던 것 같다.

사춘기 소년들이 음란잡지에 빠져들듯 소녀들도 그랬다. 최인호 소설가는 지금의 아이돌처럼 나의 영웅이었다. 어쩌면 저렇게 달콤한 문장을 쏟아낼 수 있는지 어떻게 저리 멋진 남자주인공을 그려낼 수가 있는지 오래도록 그는 나를 설레게 했다. 고등학생의 신분으로 신춘문예에 당선이 되다니 천재임에 틀림이 없다고 생각했다. 차마 그에게 편지를 쓸 용기는 없어서 아름다운 문구와 우리는 도저히 표현할 수 없는 문장들을 베껴 쓰며 소설이란 것을 배웠다. 일기장 귀퉁이에 이런 글귀가 나와서 혼자 깔깔거리고 웃었다.

'나는 서울행 열차를 타야한다. 두려움에 앙다문 입술이 파랗게 질렸다. 서울 그 넓은 세상만이 내가 숨을 쉬고 날아다닐 곳이다.'

그 시절 아마도 나는 가출을 꿈꾸기도 했었던 모양이다. 통속소설에 빠져있고 무단가출을 꿈꾸는 불량한 소녀이기도 했었다니.

나에게도 꿈이라는 것이 있었다는 것이 새삼스러운 일처럼 가슴이 뛰었다.

몇 년 전 최인호 작가가 세상을 떠났을 때 슬픔에 통곡할 여유가 네겐 없었다. 잊힌 꿈처럼 그도 내게서 잊히고 있었다. 아직 변변한 소설을 쓴 적도 내놓은 적도 없지만 어쩌면 나도 소설가가 될지 모르겠다는 늙은 꿈 하나를 가져본다.

최인호의 마지막 산문집『인연』에서 '이토록 넓은 세상에서 이토록 많은 사람 중에 나는 당신을 만났다. 나는 당신을 사랑하고 당신은 나를 사랑한다. 사랑하는 남녀의 인연이란 그래서 눈부시게 두렵고 아름다운 기적이다.'라는 문장을 나는 지금도 기억하고 있다. 세상의 인연은 두렵도록 아름다운 것이라고 한다. 내 어린 날의 꿈 한 조각도 나와의 인연이 닿은 소중한 나였을 것이다. 그것이 조금 불량하였다 해도 말이다.
이 기사에 대해 좀 더 자세히...

관련어 선택

관련기사

배너

배너


Hot & Why & Only

실시간 댓글


배너

매거진 in 충북

조경순 인구보건복지협회 세종충북지회장 인터뷰

[충북일보] 지난 1961년 출범한 사단법인 대한가족계획협회가 시초인 인구보건복지협회는 우리나라 가족계획, 인구정책의 변화에 대응해오며 '함께하는 건강가족, 지속가능한 행복한 세상'을 위해 힘써오고 있다. 5월 가정의 달을 맞아 조경순 인구보건복지협회 충북세종지회장을 만나 지회가 도민의 건강한 삶과 행복한 가족을 지원하기 위해 하고 있는 활동, 지회장의 역할, 앞으로의 포부 등에 대한 이야기를 들어 봤다. 조경순 지회장은 "인구보건복지협회 충북세종지회는 지역의 특성에 맞춘 인구변화 대응, 일 가정 양립·가족친화적 문화 조성, 성 생식 건강 증진 등의 활동에 앞장서고 있다"고 설명했다. 그는 자신의 33년 공직 경험이 협회와 지역사회의 협력 네트워크를 강화하는 일에 도움이 될 것으로 내다봤다. 충북도 첫 여성 공보관을 역임한 조 지회장은 도 투자유치국장, 여성정책관실 팀장 등으로도 활약하고 지난 연말 퇴직했다. 투자유치국장으로 근무하면서 지역의 경제와 성장에 기여했던 그는 사람 중심의 정책을 통해 충북과 세종 주민들의 행복한 삶과 건강한 공동체를 만드는 일에 참여할 수 있다는 점에 비상임 명예직인 현재 자리로의 이동을 결심했다고 한다. 조 지회장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