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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웹출고시간2021.04.22 20:45:19
  • 최종수정2021.04.22 20:45:19

4월, 사람들이 다시 길을 걷는다. 마침내 닫힌 공간에서 나온다. 온몸으로 자연과 만나 교감한다. 확 트인 공간에서 몸과 마음을 편다. 코로나 시대 비대면 활동이다. 신이 자연을 만들고 사람은 역사를 쓴다. 자연의 힘으로 행복의 꽃씨를 피운다. 한티 가는 길 도암지 풍경이 화사하다. 소나무와 벚꽃이 멋들어지게 만난다. 언택트 힐링 여행에 최적의 공간이다. 느린 걸음으로 자신을 되돌아보게 한다. 마음을 되돌아볼 여유를 되찾아 준다.

[충북일보] 코로나19 사태가 나고 벌써 두 번째 봄이다. 바이러스와 1년 넘게 사투 중이다. 해가 바뀌고 다시 꽃이 피고 진다. 사람들은 여전히 봄을 잃고 산다. 춘래불사춘(春來不似春)이다.

코로나 시대에 여행은 여전히 조심스럽다. 길 여행 취재도 마찬가지다. 당연히 어렵고 힘들다. 충북일보클린마운틴이 그 쉽지 않은 일을 하기로 했다. 1년여 만에 다시 길 여행에 나서기로 했다. 코로나19로 지친 독자들의 몸과 마음을 조금이라도 위로하기 위해서다. 비대면으로 함께 호흡하는 걷기의 지혜를 알리기 위함이다.

가실성당

4월 봄날 꽃구경의 소란을 뒤로 하고 떠난다. 순례자가 되어 길을 따라 걷는다. 길이 끝나는 곳엔 언제나 또 길이 있다. 그 곳에서 길이 되는 사람들을 만난다. 길은 누가 뭐라고 하지 않아도 스스로 길이 된다. 저절로 사랑이 되어 순례자들을 맞는다.

꽃피어 화려한 때를 벗어나 경북 칠곡으로 간다. 거기서 순례자들의 자취를 따라 걷는다. 작은 터 위에 서 있는 가실성당 본당 풍경이 동화 같다. 로마네스크 양식이 제법 드러난다. 고전의 색채미가 더해져 고아하다. 붉은 벽돌이 맑은 하늘과 어울린다.

가실성당 정원

작은 성당이 아늑하고 고즈넉하다. 잘 가꿔진 정원이 편안함을 더한다. 하늘에서 내린 빛이 생명을 가꾼다. 소박한 고혹미에 한 번 더 반한다. 자연과 위대한 영적 유대를 갖는다. 성당을 둘러싼 벚꽃향이 코끝을 스친다. 잠시 멈춰서 꽃 향을 즐긴다.

정원의 성모마리아상을 둘러보고 여정을 시작한다. 성당 뒤편 후문 쪽으로 길을 잡는다. 길은 성당을 나서며 바로 마을길로 이어진다. 공장지대를 지나는 초기 구간은 다소 단조롭다. 낮은 언덕을 벗어나니 평지로 든다. 포장도로가 끝나고 숲길로 이어진다.

솔 숲길

제법 긴 소나무 길이 펼쳐진다. 가장 고운 자연의 액자가 눈앞으로 들어온다. 온 자연이 하나 돼 봄 색칠을 한다. 더해질 것도 덜어낼 것도 없이 담백하다. 파란 하늘 아래 잿빛 바위마저 조화롭다. 전망쉼터와 바람쉼터가 여행자들의 땀을 씻어준다.

지금은 스러지고 만 숯 가마터와 옛 기도터를 지난다. 봄볕 아래 고요하게 걷는 맛이 좋다. 봄의 한복판으로 들어서는 계절의 맛을 즐긴다. 걷는 내내 모자람이 없다. 시원한 바람이 묘한 감동을 일으킨다. 청량한 울림이 숲 가운데로 조용히 흐른다.

더워진 봄의 기운이 한 겹 더 깊어진다. 산이 뿜어내는 생명의 숨이 좀 더 가빠진다. 그 열기로 때 묻지 않은 봄꽃들이 피고 진다. 격렬한 몸짓으로 빚어내는 4월의 봄 풍경이다. 숲길로 들어서니 편안하다. 산벚꽃과 개복숭아꽃이 솔숲에 점점이 숨는다.

수수하면서도 예쁜 색깔이다. 걷는 내내 새 소리가 길안내를 한다. 요란하지 시끄럽지도 않다. 낮은 소리로 지저귀는 기분 좋은 데시벨이다. 길옆엔 보랏빛 고깔제비꽃이 함초롬하다. 금무봉 나무고사리 화석 산지에 닿는다. 생소한 이름이 낯설다.

순교자 묘지

길옆으로 망자(亡者)의 무덤들이 널린다. 삶의 무상과 허무를 수없이 생각한다. 가끔은 명당 이야기가 나오기도 한다. 죽어서 스스로 명당이 무슨 소용이 있겠는가. 삶과 죽음의 아이러니를 생각한다. 사는 동안 복 짓고 업 짓는 일이 뭘까.

걷는 이유가 좀 더 깊게 다가온다. 칠곡군 지천면 연화리 도암지에서 잠시 숨을 고른다. '그대 어디로 가는가'를 되뇐다. 도암지 소나무와 벚꽃이 황홀하다. 물에 담긴 반영이 찬란하게 빛난다. 수줍은 듯 숨은 모습이 더 아름답다. 벚꽃 잎 분분함이 봄날 맛을 더한다.
저수지 고운 풍경에 자꾸 빠져든다. 연못과 노송과 벚꽃의 조화가 일품이다. 순례자들의 쉼터로 그만이다. 그 멋스러움에 흠뻑 빠져 여유를 부린다. 봄의 정서를 온전하게 담아낸다. 자연의 화폭에 감탄이 절로 나온다. 잉어 한 마리가 텀벙거리며 존재를 알린다.

아쉬움을 뒤로하고 순례자 스탬프를 찍는다. 바람과 꽃들이 봄의 중심을 알린다. 만발한 벚꽃 잎들이 꽃비로 날린다. 저수지가 온통 벚꽃 잎 세상이다. 둑 위론 소나무가 압권이다. 하얀 벚꽃과 어울려 장관을 이룬다. 사철 푸르른 빛으로 마을을 지킨다.

산길을 다시 걷는다. 숲이 깊어지며 봄 냄새가 짙어진다. 햇빛의 산란이 숲을 더 곱게 채색한다. 찰나의 볕뉘가 숲의 색을 이리저리 바꾼다. 조금 일찍 핀 벚꽃 잎이 분분이 날린다. 내 안의 다른 내가 가만히 꿈틀댄다. 봄날 찾은 한티 가는 길이 길어진다.

산모퉁이를 돌고 작은 재를 반복해 넘는다. 걷고 걸으며 조금씩 더 생각해 본다. 지나온 세월을 돌아보며 성찰한다. 신나무골 성지가 저 아래로 보인다. 순례길 5개 구간 중 제1 코스의 종착지다. 십자가 형상의 한옥 지붕이 보인다.

신나무골 성지 본당

신나무골 성지에 다다른다. 기도하는 성모상이 눈에 띈다. 모두 뉘우치고 용서하고 사랑하란다. 삶이 새롭게 다가온다. 걷기를 통해 삶에 대한 성찰을 경험한다. 느린 걸음으로 자신을 되돌아본다. 무엇 얻으려 어디로 하염없이 가는 가.

인생길은 시작과 끝이 정해져 있는 외길(One-way)이다. 누구에게는 삶의 전반을 돌아보는 성찰의 길이다. 누구에게는 믿음을 단련시키는 순례의 길일 게다. 코로나의 고통은 아직 끝나지 않았다. 결국 좀 더 나은 방식의 삶으로 이끄는 과정일 게다.

한티 가는 길 이정표

한티 가는 길은 봄볕 맞으며 찾기 좋은 성지다. 언택트 힐링 여행에 최적공간이다. 고즈넉한 시간여행으로 잡아끈다. 한 번쯤 걷기를 소망하게 하는 길이다. 가는 길엔 굽이마다 많은 사연이 깃들어 있다. 모퉁이마다 박해의 현장이 널려 있다.

종교를 떠나 한 번 쯤 걸어볼만한 길이다. 나를 되돌아볼 기회다. 소박한 아음다움으로 빛나는 가실성당으로 다시 간다. 비스듬히 비치는 햇빛 뒤로 성자가 웃는다. 어는 순간이든 지금 이 순간보다 더 좋을 순 없다.

<취재후기>

그대 어디로 가는 가다시 걷기여행을 시작한다. 전국의 명품 걷기길 중 한 곳을 찾아 걷는다. 그래도 비교적 덜 알려진 '다크 투어리즘'에 집중하려 한다. 걷는 길이 코로나19 백신이자 치료제임을 알리려 한다.

마음이 공허해질 때 가끔씩 스스로에게 묻는다. '너는 어디로 가는 가'. 문득 떠오르는 길이 있다. 칠곡군 '한티 가는 길'이다. 한말 천주교 박해의 고스란한 현장이다. 믿는 자에게만 열려 있는 건 아니다. 누구든 걷고 싶은 사람들에게 길을 내준다.

한티 가는 길은 순례길이다. 칠곡군 동명면 득명리에 있는 한티성지를 찾아 가는 길이다. 한티는 19세기 초 천주교 박해 때 천주교인들이 피신한 순교성지다. 칠곡군이 국·공유지와 천주교 재단법인의 토지를 이용해 2016년 만들었다.

순교자들은 박해를 피해 한티에서 살았다. 포졸들을 피해 살다 죽고 묻힌 곳이다. 어떻게 보면 교우들이 박해를 피새 함께 모여 살던 곳이다. 무명 순교자들은 깊은 숲속에서 미사나 고해성사를 마다하지 않았다. 그들이 묻혀 있는 성지다.

길은 모두 5구간으로 나뉜다. 1구간은 '돌아보는 길'이다. 2구간은 '비우는 길'이다. 3구간은 '뉘우치는 길'이다. 4구간은 '용서의 길'이다. 5구간은 '사랑의 길'이다. 가실성당을 나서며 바로 이어진다. 전체 테마는 '그대, 어디로 가는 가'다.

한티 가는 길은 45.6㎞의 100리 길이다. 걸으면서 수없이 이 물음의 답을 찾게 된다. 길옆 순교자 묘지 앞에 서면 더욱 또렷해진다. 죽음으로써 신앙을 지켰던 믿음을 보기 때문이다. 종교를 떠나 내 인생 행로에 대해 한 번씩 되돌아보게 한다.

모든 순례자들은 길 위의 사람이다. 믿음의 길을 사랑의 발걸음으로 걷는다. 걸을 수 있음을 기적으로 여긴다. 숙연해져 고개를 숙이지 않을 수 없다. 새로운 길은 일방통행로가 아니다. 모두 함께 걷는 마주 오는 길이다. 만나는 길이다.

아무튼 한티 가는 길은 순례길이다. 종교를 떠나 모든 사람에게 치유의 숲길이다. 서로 오가며 만나는 길이다. 순교의 고결함을 느낄 수 있다. 고귀하고 경건한 걸음으로 걸어야 한다. 그래야 올바로 느낄 수 있다. 영적 체험을 할 수 있다.

짧아 보이지만 결코 만만치 않다. 1구간만 해도 산을 3개나 넘고 저수지를 하나 끼고 돌아가야 한다. 많은 사람들이 산티아고 가는 길을 닮았다고 전한다. 그래서 어떤 순례자들은 이 길은 '한티아고 순례길'로 부르기도 한다.

성인(聖人)들의 삶 속에서 나를 찾아보려 한티로 간다. 무욕(無慾)으로 산을 오르내리듯 삶도 그렇게 가꿔보리라. 그대 어디로 가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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