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주 사창동에 위치한 꽃집 '꽃이피다' 이진 대표가 가게 앞에서 둘째 딸 재민이와 포즈를 취하고 있다.
ⓒ김지훈 기자
“최근엔 리시안셔스가 참 보기 좋아요. 자주 보니까 더 자세히 보게 되고. 그래서 더 예쁜 거 같아요. 원래는 해바라기를 가장 좋아했어요. 그런데 대학시절 차마 밝힐 수 없는 이벤트가 해바라기와 함께 절 찾아왔어요. 그 이후로 해바라기를 보면 뜻하지 않던 그때 일이 생각나 멀어지게 됐죠. 아무리 친해지려고 노력을 해봐도 잘 되지가 않았어요. 근데 이젠 거짓말처럼 다시 예뻐 보여요. 좋아할 수 없던 것들이 다시 좋아지는 것. 거리를 두었다가 다시 가까워지는 것. 세월이 흐른다는 건 그런 게 아닐까요?”
“평소 꽃을 너무 좋아했던 시한부 어머니에게 저희 가게 꽃을 꼭 보여주고 싶다던 여성분이 계셨어요. 사연을 듣자마자 바로 그 어머님의 딸이 된 것 같은 느낌이 들었어요. 돈을 떠나 정말 정성껏 꽃을 만들어드리곤 앞으로 더 많은 꽃을 만들어 드리겠다 약속했죠. 두 달 후 그 여성분에게 어머님의 임종 소식을 전해 들었어요. 아쉬웠어요. 꽃을 한 번 밖에 전해드리지 못한 게. 아직도 눈에 아른거려요. 임종 소식을 전하던 그 손님의 슬픈 눈빛이요. 엄마가 되어보니 남녀의 사랑보단 부모 자식 간의 정에 마음이 훨씬 동하는 것 같아요.”
“대게 남성은 꽃과 함께 전달될 메시지를 직접 작성하는 걸 굉장히 부끄러워 해요. 그럴 땐 일단 제가 스토리를 쭉 전해 듣고 이 꽃의 역할을 파악하죠. 그 후 바로 러브스토리의 여주인공으로 빙의를 시작해요. 그러곤 '상대 여자 분은 이런 말을 듣고 싶겠구나' 하는 메시지를 생각해서 적어드려요. 만족도가 상당히 높은 편이에요.”
청주 사창동에 위치한 꽃집 '꽃이피다' 이진 대표가 가게 작업대에서 꽃다발을 만들고 있다.
ⓒ김지훈기자
“둘째 애가 생겨 육아로 인해 한동안 꽃을 잊고 살았어요. '언젠가 다시 만지겠지' 하는 막연한 생각만 하며 살았었죠. 둘째 애의 옹알이가 시작될 무렵 꽃을 가르쳐주신 선생님의 권유로 재미삼아 꽃꽂이 대회에 참가했어요. 작은 대회였지만 운 좋게 1등을 하게 됐죠. 그때 가슴 속에 불씨가 ‘탁’하고 터져 나왔어요. ‘나는 꽃을 해야 하는 사람’이란 운명 같은 걸 느낄 수 있었어요.”
“꽃을 가르쳐주신 선생님에게 배울 점이 많았어요. 꽃에 대한 열정 뿐만 아니라 매사에 겸손하시던 모습이 기억에 남아요. 특히 자제들에게 용돈대신 책을 선물로 주신다는 점이 가장 인상 깊어요. 그런 모습을 지켜보면서 나도 저런 부모가 되어야 겠다 싶었죠. 그런데 막상 제 아이에겐 그게 또 안 되더라고요.”
“꽃말을 싫어했어요. 억지로 붙여진데다 그 의미가 제각각이라서요. 꽃말 물어보는 분들에겐 ‘그냥 눈으로 보는 게 가장 예쁜 꽃’이라고 대답을 해줬죠. 근데 아이가 생기니까 꽃말이 좋아지기 시작했어요. 과거 꽃말을 묻던 분들을 난처하게 만들었다는 미안한 마음과 함께요.”
“단골과는 일상을 공유하는 느낌이에요. 자연스럽게 그분들의 생활을 엿볼 수 있죠. 가령 부모님 생신선물로 꽃을 사신 분이 다음에는 부모님 병문안을 준비하기 위해 가게에 들르는 식으로요. 이따금씩 그들의 삶과 사연들이 제 머릿속에 주마등처럼 스쳐가요. 응원과 위로의 마음이 뒤엉킨 채로요.”
/김지훈·김희란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