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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진영

세명대 상담심리학과 교수

한여름의 무더위에도 늘 두터운 후드티를 입고 검은 모자를 푹 눌러 쓴 채로 상담실에 오던 아이가 있었다. 중학교 2학년의 여학생이었는데, 아이를 돌봐온 사회복지사를 통해 의뢰된 아이였다. 개인위생 관리가 전혀 안 되고, 사람들과의 관계에 대한 욕구가 없다는 것이 주된 문제였다. 그 외에도 학교를 결석하는 날이 점점 잦아졌으며, 사람들이 모여있는 장소에라도 가면 귀를 막고 몸을 움츠리고 있는 때가 많아 선생님의 걱정이 컸다. 아이는 또래 아이들과는 사뭇 다른 모습이었다. 모자 사이로 삐져나온 머리카락은 떡져 있었고 검은 후드티 위에는 비듬이 가득했다. 옷차림은 계절이 맞지 않았고 지저분했으며, 마주 앉았을 때는 불쾌한 냄새까지 나는 정도였다. 아이는 고개를 숙인 채 눈을 맞추려 하지 않았고, 무표정한 얼굴이었으며, 묻는 말에는 단답형으로 짧게 대답할 뿐이었다. 선생님을 통해 들은 아이의 가정환경은 심각한 수준이었다. 아이의 어머니는 알코올중독 환자였고, 부모는 아이가 학교에 입학하기도 전에 이혼을 했다고 했다. 아이는 두 오빠와 함께 아빠와 살게 되었지만 초등학교 2학년 무렵 아빠가 급작스럽게 사망하면서 다시 엄마에게로 보내졌다고 했다. 엄마는 대부분의 날을 술로 지새웠고, 아이들을 보살피지 않았다. 국가에서 보조해주는 생활비는 엄마의 술값과 옷값으로 다 써버렸고, 술에 취하면 아이에게 욕을 해댔다고 했다. 큰오빠는 집을 나갔고, 작은오빠 역시 고등학교를 자퇴하고 비행 청소년이 되어 엉망인 삶을 살고 있었다. 아이의 상황을 확인하기 위해 가정방문을 했을 때 집 안에는 담배 냄새가 가득했고 쌓아놓은 옷가지와 쓰레기들이 여기저기 널려있었다. 너무 지저분해서 발을 디딜 엄두가 나지 않을 지경이었다. 엄마는 술을 마시지는 않았지만 대화가 쉽지 않은 상태였고, 안타깝게도 작은오빠마저 술을 마시면 집에 들어와 행패를 부리기 시작했다고 했다. 사례 회의를 거쳐 아동학대로 신고를 했지만, 학대의 정황이 명확하지 않다며 별다른 조치가 취해지지 않았다. 당시만 해도 아동학대에 대한 인식과 대응이 지금 같지는 않았던 것 같다.

아이는 방임과 학대 속에서 성장했다. 아이가 살아가는 데 반드시 필요한 기본적인 조건조차 갖춰지지 않은 상황이었고, 불결하고 위험한 환경에 방치되어 있었다. 부모로부터 마땅히 받아야 하는 따뜻한 애정과 보살핌은 먼 나라 이야기였다. 아이의 우울과 위축, 세상에 대한 불신과 거부는 당연해 보였다. 아이의 신체·정신건강은 물론 생존마저도 위협받고 있는 상황이었다. 퇴직하기까지 대략 1년 정도 상담을 진행했지만, 근본적인 환경이 개선되지 않은 상태에서의 심리상담은 별다른 도움이 되지 않는 것 같았다. 아이에게 도움을 주고자 여기저기 관련 기관을 찾아 상의를 해보기도 했지만, 뾰족한 대책을 얻지 못해 무력함과 분노를 느꼈던 기억이 있다. 지금은 성인이 되었을 그 아이가 어떻게 살아가고 있을지 가끔 궁금해진다.

최근 성인기 정신건강의 취약성 요인으로 아동기 부정적 경험(Adverse Childhood Experience: ACE)이 주목받고 있는데, 우리나라의 경우 다양한 ACE 유형 중에서도 아동학대의 비중이 가장 큰 것으로 보고되었다. 학대의 가해자는 주로 부모이며, 외상의 유형 중에서는 방임이나 정서적 학대가 가장 높은 비중을 차지한다고 한다. 아동기 학대 경험은 성인기의 정신건강 및 신체건강과도 높은 관련성을 갖는데, 예를 들어 아동기 외상적 경험이 많을수록 성인이 되어서 알코올 중독, 우울증, 자살시도의 위험이 높으며, 당뇨, 암 등의 신체 질환의 발병률이 높아진다고 한다.

다행스럽게도 현재는 아동학대에 대한 인식과 대처가 많이 개선되고 법적인 조치도 상당히 강화되었다. 그럼에도 여전히 감시와 보호의 손길이 닿지 않은 사각지대가 존재하고, 학대 피해자가 된 아이들의 기사를 심심치 않게 접하게 된다. 때로는 '아이들이 행복한 세상'을 바라는 것이 과한 욕심이 아닌가 싶을 때가 있다. 최소한 '아이들이 안전한 세상'만이라도 확실히 만들어지길 기대한다.

※ 본 글에 언급된 이야기는 실제 사례를 바탕으로 재구성한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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