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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진영

세명대 교양과정부 조교수

2023년이 밝았다. 새해가 되면 늘 그렇듯이 좋은 일이 많기를 바라는 희망과 기대를 품게 된다. 그렇지만 작년에 이어 사회적으로도 그렇고 개인적으로도 해결하거나 헤쳐나가야 할 어려움은 여전히 쌓여있는 것 같다. 고통이나 위기가 없는 삶이 있을까? 물론, 고통의 크기가 제각각이고, 우리가 애쓰고 노력하면 없앨 수 있는 고통도 분명히 있을 것이다. 그렇지만 아무리 노력해도 고통 없이 살아가는 것은 불가능하다. 우리는 사랑하는 사람의 죽음이나 무서운 질병처럼 평생 겪지 않기를 바라는 일들을 경험하기도 하고, 자연재해나 범죄 같은 큰 사건이나 사고에 노출되기도 한다. 살아있는 한 고통을 피할 수 없다면, 우리는 그 고통을 어떻게 받아들여야 할까? 보통 삶의 위기나 외상 경험에 맞닥뜨리게 되면, 상당 기간 강렬한 불안이나 우울, 분노와 죄책감 같은 부정적인 정서를 경험하게 된다. 또한, 자신과 주변에 대한 관점이 부정적으로 변화되면서 고립된 생활에 갇혀 버리는 경우도 있다. 일부 사람들은 시간이 지났음에도 심각한 고통에서 헤어 나오지 못하고 일상생활을 감당하지 못해 외상후스트레스장애 진단을 받기도 한다. 그러나 아주 극단적인 경우가 아니라면 많은 사람들은 고통스러운 사건이나 위기를 조금씩 받아들이며 나름의 방식대로 그 상황에 적응하며 살아가게 된다. 그리고 드물지만 '적응'의 수준을 넘어서는 이들이 있다. 바로 '외상후성장(post-traumatic growth)을 이루어낸 사람들이다. 이들은 삶의 위기나 고난을 겪어내면서 자신의 숨겨진 역량을 발견하고, 보다 의미 있는 대인관계를 만들어갈 수 있게 된다. 또한 인생에 대한 깊은 이해와 통찰을 얻으면서 새로운 방향성을 찾게 되고, 그러면서 삶의 우선순위가 변화되고 일상의 작은 일에도 감사함을 느낄 수 있게 된다.

오래전에 만났던 한 아동의 어머니가 떠올랐다. 그 어머니는 유복한 가정에서 태어나 좋은 교육을 받고 사회경제적으로 성공한 삶을 살고 있었다. 두 딸 역시 똑똑하고 학교생활도 잘하고 있어 걱정할 것이 없었다. 그런데 늦둥이 막내아들이 문제였다. 아이는 외양에는 전혀 문제가 없었지만 친구들과 어울리지 못하고 감정과 행동 조절이 어려워 유치원에 적응하지 못했다. 여러 병원을 전전한 끝에 귀한 막내아들은 자폐스펙트럼장애 진단을 받았다. 어머니는 처음 아이의 장애를 받아들이지 못하고, 슬픔과 분노를 보이며 혼란스러워했다. 치료를 거부하고 종교에 매달리기는 모습을 보이기도 했다. 얼마간의 시간이 지난 후 다시 만났을 때, 어머니는 누구보다 치료에 열심히 참여하고 있었고 아이의 더디지만 작은 변화와 발전에 크게 기뻐하고 있었다. 상담 시간에 다시 만난 어머니는 자신의 경험을 담담하게 말해나갔다. 아이의 장애를 받아들이기까지 너무나 힘들었지만 지금은 아이의 장애가 축복처럼 느껴지기도 한다고. 아이의 장애를 알기 전까지 자신들이 얼마나 교만했는지 알지 못했지만, 지금은 작은 일에도 감사할 수 있게 되었다고 말했다. 또한, 가까운 사람들의 소중함을 알게 되었고, 어려움에 처한 사람들을 돌아볼 수 있게 되었다고 했다. 그 가족을 만난 지 10년이 지났지만, 지금도 그 어머니의 얼굴이 잊히지 않는다.

힘든 상황에 놓여 있는 사람들에게 '성장'을 강요할 수는 없다. 그 상황을 버텨내는 것 자체가 대단한 일이고, 엄청난 고통일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정말 피할 수 없는 일이라면 혹은 이미 벌어진 일이라면 조금은 다른 관점에서 바라보려는 시도를 해보는 것은 어떨까? 비 온 뒤에 땅이 굳어지고, 타고 넘어가야 할 벽이 있어야 담쟁이 풀은 더욱 풍성하게 자랄 수 있다고 한다. 쉽지 않은 과정이지만 위기와 역경을 인정하고 수용할 때 삶을 버텨낼 수 있는 힘을 얻으며 성장해나갈 수 있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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