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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두희

공군사관학교 비행교수

이맘때쯤이면 어김없이 그리워지는 것들이 있다. 추위에 움츠려들고 삶에 지친 발걸음을 경쾌하게 만들어주던 크리스마스 캐럴. 텅 빈 주머니 속의 휑한 마음을 데워주던 구세군 종소리. 먼 고향의 아련한 향수를 불러일으키던 군밤과 군고구마 냄새. 집안에 들어서면 발개진 콧등을 시큰하게 만들던 어머니표 배추된장국. 그리고 졸린 눈을 부비며 기다리던 주말의 명화 벤허, 십계, 쿼바디스, 사운드 오브 뮤직…. 묻혀있던 화롯불이 되살아나듯 기억의 저편에서 연기처럼 폴폴 일어나는 이 그리움은 거의 조건반사적이다.

한 해를 마무리하는 일은 추수마당에서 풍구를 돌리는 것과 같다. 지난 한 해 동안의 일들이 갈무리할 알곡이 아니라 대부분 죽정이로 날아가 버리는 공허함을 확인하는 일이다. 바쁘게 살아왔지만 결코 채워지지 않는 빈자리의 결핍이 이것저것에 대한 그리움으로 나타나는 게 분명하다. 사실 그것들도 당시에는 그저 스치며 지나치던 죽정이 같은 일상이었다. 흔한 일상이 맨 앞쪽에 내려앉은 알곡이 되어 그리워지기까지는 시간의 반복이라는 묵은 때가 켜켜이 쌓여있다. 손때가 묻어 반들반들해진 것에는 내 영혼의 일부가 깃들어 있다.

어저께도 밤늦은 시간에 하릴없이 TV 채널 속을 방황하다가 '디어 헌터(The Deer Hunter)'라는 영화를 보게 되었다. 이 영화는 격동기인 1970년대 말 극장 개봉 시기부터 지금까지 적어도 세 번 이상 본 영화중의 하나이다. 영화가 끝난 시간은 벌써 새벽이었지만 영화에 몰입되었던 감동의 여운이 남아 노곤함 속에서도 잠은 되돌아오지 않았다. 세 시간이나 되는 길고 긴 상영시간 동안 나는 무엇을 보고, 무엇을 찾고 있었을까· 특유의 박진감 넘치는 스토리전개와 뛰어난 영상미, '카바티나'라는 감성적인 배경음악은 익히 잘 알고 있어서 더 이상 흡인력이 되지 못할 터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또 다시 빠져드는 것은 아무래도 내 속의 식지 않은 갈망 때문이 아닐까 싶다. 평소에는 잊고 있었지만 영화라는 자극을 통해 내가 꿈꾸던 것이 무엇인지 얼핏 엿보게 되는 것이다. 영화를 본 다음 날, 나는 영화 속 의리의 사나이 '로버트 드 니로'가 되어 어깨를 우쭐대며 다녔다.

산다는 것은 연자방아 도는 것과 같은 반복의 연속이다. 반복이 좋아서가 아니라 어쩔 수 없이 반복을 하게 된다. 반복을 통해서 삶이 익숙해지고, 좀 더 깊어질 수 있기 때문이다. 반복의 틀에 갇힌 현실을 탈피해보려고 발버둥 치는 노력도 따지고 보면 좀 더 의미 있는 삶을 향한 갈망이다. 연말이 다가오면 왠지 모르게 허전하고, 그 어딘가를 향해 훌쩍 떠나고 싶은 것도 꿈에 한 발자국 더 다가가지 못한 반성이자 갈증이다. 그런데도 반복적인 삶에서 무작정 벗어나려고 하면 그 탈출은 실패하기 쉽다.

매일 새로운 아침을 맞이하면서도 무료한 반복이라고 생각하는 것은 눈에 들어오는 현상과 몸에 다가오는 느낌들을 너무 쉽게 일반화시켜버리기 때문이다. 우리의 기억은 무언가 새롭지 않으면 지워버리고 만다. 그렇게 하루하루를 자꾸 지워가다 보면 일 년이 어떻게 지나갔는지 모른다. 남는 것은 달라진 몸의 변화뿐이다. 우리 몸의 변화만큼 이 세상도 변하고 있는 것이 사실이다. 다만 우리가 그 변화를, 그 속의 새로움을 찾아내지 못할 뿐이다.

우리 주변에는 아직 발견되지 않고 깨닫지 못한 것이 수없이 많다. 아니 누군가가 알고 있는 것이고 그것을 재확인하는 일에 지나지 않는다 해도 가치는 충분하다. 내 삶에 있어서는 처음이니까 그렇다. 콜럼버스가 인디언들이 살고 있던 아메리카 대륙에 상륙하여 신대륙을 발견했다고 한 것과 똑같은 이치다.

지친 삶의 허기와 갈증을 해소하려면 새로운 땅을 다시 파내려 가는 방법도 있지만 파헤친 곳에서 좀 더 깊이 파보는 것이 더 빠를 수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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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북일보가 만난 사람들 - 단양교육지원청 김진수 교육장

[충북일보] 몇 년동안 몰아친 코로나19는 우리 나라 전반에 걸처 많은 염려를 낳았으며 이러한 염려는 특히 어린 아이들에게 실제로 학력의 위기를 가져왔다. 학력의 저하라는 위기 속에서도 빛나는 교육을 통해 모범 사례로 손꼽히는 단양지역은 인구 3만여 명의 충북의 동북단 소외지역이지만 코로나19 발 위기 상황에서도 잘 대처해왔고 정성을 다하는 학교 지원으로 만족도도 최상위에 있다. 지난 9월 1일 자로 단양지역의 교육 발전에 솔선수범한 김진수 교육장이 취임하며 앞으로가 더욱 기대되고 있다. 취임 한 달을 맞은 김진수 교육장으로부터 교육철학과 추진하고자 하는 사업과 단양교육의 발전 과제에 대해 들어 본다. ◇취임 한 달을 맞았다, 그동안 소감은. "사자성어에 '수도선부(水到船浮)'라는 말이 있다. 주희의 시에 한 구절로 강에 물이 차오르니 큰 배도 가볍게 떠올랐다는 것으로 물이 차오르면 배가 저절로 뜨더라는 말로 아무리 어렵던 일도 조건이 갖춰지면 쉽게 된다는 말로도 풀이할 수 있다. 교육장에 부임해 교육지원청에서 한 달을 지내며 교육장의 자리가 얼마나 막중하고 어려운 자리인가를 느끼는 시간이었다. 이렇게 어렵고 바쁜 것이 '아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