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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두희

공군사관학교 교수

사계절 중 봄의 속도가 가장 빠른 것 같다. 엊그제 봄꽃을 보며 즐거워했었는데 벌써 여름이다. 공중에서 내려다보는 산과 들의 정경도 짙은 청록으로 일색이고 좁은 조종석에는 벌써 후텁지근한 땀 냄새가 느껴진다. 빠른 것은 비행기라고 하지만 계절의 속도를 어찌 따를 수 있을까.

어릴 적엔 무엇이든 빠른 것이 좋은 줄 알았다. 초등학교 시절 달리기에서 일등을 한 번 해보려고 무던히도 애를 쓴 적이 있다. 빨리 자라서 남들보다 먼저 어른이 되었으면 좋겠다는 생각도 했었다. 조종사가 되고 싶었던 것도 비행기의 속도 때문이었는지 모르겠다. 그렇다고 오토바이처럼 빠른 속도의 스릴을 즐기려는 것은 아니었다. 단지 남들에게 뒤처지고 싶지 않아서 열심히 자전거 페달을 밟았을 뿐이다.

속도에 관한한 우리나라 사람들만큼 민감하게 반응하는 국민은 없을 것 같다. '빨리빨리'가 우리 생활에 깊숙이 배어있어 무엇이든 느린 꼴은 속 터져서 못 참는다. 왜 빨라야하는지, 빠르면 어떤 점이 좋은지 따져보지도 않는다. 유행이란 것은 일반 대중들이 쫓아가기엔 너무 빨라서 늘 숨차게 만든다.

어느 경제학자 말로는 우리나라가 전쟁이후 빛나는 경제성장을 이룩한 배경에는 속도에 대한 집착이 큰 역할을 했단다. 우리의 재빠른 속성을 늦추면 경제성장도 덩달아 느려질 것이란 예측도 내놓았다. 어쩌면 그 말이 맞을지도 모르겠다. 다만 성급함 때문에 생기는 여러 가지 사회문제를 그러한 변명으로 합리화시키기엔 어딘지 모르게 궁색하다.

함께 차를 타고 가는 사람들이 공통적으로 묻는 질문이 있다.

"음속보다 빠른 전투기를 몰고 다니던 사람이 이렇게 천천히 운전하면 답답하지 않나?"

시간당 100킬로미터를 달리던 고속도로에서 규정 속도 60킬로미터의 국도로 나오면 갑자기 굼벵이가 된 느낌을 경험한 사람들의 의문사항이다. 그러나 나의 답은 '아니다'이다. 내가 느끼는 실제의 속도감은 시간당 100㎞의 차를 운전할 때가 700㎞의 비행기를 조종할 때보다 더 빠르다. 이러한 현상은 속도가 본질적으로 '상대성'을 가지고 있기 때문에 일어난다. 주위에 상대적으로 느리거나 가만히 고정된 것이 있어야 '속도'는 발생한다. 높이 날아다니는 비행기의 실제 속도는 자동차보다 훨씬 빠르지만 비교가 되는 산과 들이 멀리 떨어져 있어서 빠른 속도감을 못 느낀다는 말이다.

시간의 빠르기도 마찬가지다. 어린 아이의 하루와 노인의 하루가 완연하게 다르게 느껴지는 것은 주위의 변화를 바라보는 관점에서 생긴다. 사계절의 변화가 거의 없는 아프리카 오지의 부족들은 자신의 나이를 잘 모른다고 한다. 새파랗게 젊은 여인이 200세라고 말해 여행객들을 깜짝 놀라게 했단다.

요즘 들어 아내는 부쩍 세월의 속도를 느낀단다. 남편 뒷바라지에 아이들 키우느라고 주변을 둘러볼 새도 없이 앞만 보고 달릴 때는 몰랐었다. 막상 서른을 훌쩍 넘긴 딸아이가 출가를 하고 둘째가 대학졸업 후 취직을 하면서 갑자기 세월의 속도가 빨라졌단다. 매순간 맞이하는 시간은 느린데 계절은 순식간에 지나가는 현상, 그것이 오십대 후반에 느끼는 모순된 속도감인 모양이다. 감정의 변화가 심해지는 것은 초조함의 표현일 것이다. 애들이나 남편의 무심코 던진 말이 커다란 상처가 되기도 하고 외로움이 파도처럼 몰려들기도 한단다. 그러한 것을 보면 아내의 모습이 곧 나의 모습이란 생각도 든다. 거울을 보듯 서로의 모습에서 세월의 주름살을 느끼게 되는 것이 아닐까.

무리지어 살아가는 초식동물들에게 속도는 곧 생명이다. 달리는 속도가 떨어지면 주위에서 호시탐탐 노리고 있는 맹수들에게 언제 잡혀 먹힐지 모른다. 한가롭게 풀을 뜯다가도 한 마리가 뛰기 시작하면 선두를 따라서 무작정 달리기 시작한다. 그 과정에서 희생양은 쉽게 드러난다. 배고픈 맹수들이 노리는 것은 바로 그것이다.

세월이 빠르다고 해서 초조해 하거나 무작정 따라 달릴 것이 아니라, 주위에서 나를 위협하고 있는 실체가 무엇인지 곰곰이 살펴보는 게 더 긴박한 일인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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