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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두희

공군사관학교 비행교수

7월의 낡은 달력을 뜯어내고 8월을 바라보다 문득 망막을 자극하는 빨간 글씨, 8월15일! 집 앞에 태극기를 다는 역사적 의미가 있는 날이지만 사실적으로 피부에 와 닿는 느낌은 쉬는 날이라는 것이다. 매일 출근하는 사람에게는 달력 맨 왼쪽 줄 빨간색 날짜와 맨 오른쪽의 파란색 날짜 중간에 빨간색 날짜가 끼어 있으면 없던 기운마저 다시 솟는다. 더구나 중간부분이 아니라 왼쪽 일요일이나 오른쪽 토요일 쪽으로 연결되었을 땐 명절 같은 설렘이 부풀어 오른다. 가슴이 뛸 만큼 즐거운 계획이 없더라도 그냥 쉰다는 것 자체가 기다려진다.

그렇게 살아온 세월이 어언 50여년을 훌쩍 뛰어넘었다. 그런데 어느 날 갑자기 달력에 표시된 날짜의 색깔들이 한 가지 색으로 통일되었다. 모두 빨간색 날짜가 되어버린 것이다. 더 이상 빨간 날짜의 반가움이나 색깔 있는 날짜를 기다리는 설렘이 없어졌다. 오히려 남들이 다 쉬는 그런 날을 피해야 하는 입장으로 바뀌었다. 교통체증이나 예약중복을 피해 값싸고 편안한 시간여행을 하려면 남들이 일하는 시간을 노려야 한다. 그런데 아직 적응이 덜 되어서일까. 노는 시간이 그렇게 편안하게 느껴지지 않는다. 딱히 할 일이 없는 것이 불안하고 멍하게 지내는 것이 허송세월인 것 같아 불편하기까지 하다.

창밖에는 대지를 온통 삶아버리려는 듯 무더위가 밤낮으로 식을 줄 모르니 누에고치처럼 방안에서 꼼지락거리며 탁상공상에 빠져 있다. 더위를 견디는 방법 중에 가장 경제적인 방법이기는 하다. 문제는 하루하루 1분1분 쉼 없이 다가오는 원고마감시간이다. 퇴직을 하면 조용한 음악을 틀어놓고 책을 읽으며 사색을 즐기겠다는 꿈을 꾸었다. 글쓰기는 여유로운 마음이 되면 누에가 실을 풀어내듯 숨은 감성들이 술술 풀어져 나오게 될 것이라 믿었다. 그러나 그게 아닌 것 같다. 여유로운 마음은 글을 지어내는 자양분이 되기는커녕 해야 할 일을 뒤로 밀어내고, 몸을 움직이는 동력을 떨어뜨리면서 멍때리는 시간만 늘여놓았다. 나의 착각이 어디서부터 잘 못된 것인지 알 것 같은데 마감일은 이미 코앞에 닥쳤다. 오늘도 하릴없이 이 책 저 책 뒤적이다 소설가 김유정의 불행했던 삶의 이야기를 접하게 되었다.

김유정은 1908년에 태어나 겨우 29살의 나이에 요절하였다. 그는 죽기 전 3년 남짓한 기간에 30여 편의 소설을 남겼다. 더구나 영양실조와 폐결핵으로 죽음의 길을 걷고 있었다. 평생지기였던 작가 안회남에게 남긴 편지를 보면 그가 얼마나 배고프고 힘든 상황에서 글을 써 내려갔는지 잘 나타나 있다. 그는 친구에게 50일 이내 인기를 끌만한 탐정소설을 번역해 보낼 터이니 돈 백 원을 마련해 달라고 부탁하였다. 그 돈으로 닭 30마리, 살모사와 구렁이 10여 마리를 고아 먹겠다고 했다. 그는 어떻게든 다시 살아나 글을 계속 쓰고 싶다고 했다. 그리고 생의 막다른 골목에 서서 돈, 돈, 돈이 나를 슬프게 만든다고도 했다. 이렇게 피가 묻어나는 편지를 보낸 후 열흘 만에 세상을 떴다.

옛날이나 지금이나 작가들은 벼랑 끝에서 글을 쓴다. 그래야 좋은 글이 나오는가 보다. 죽음이 다가오는 절박한 심정, 간절한 바람, 온몸이 무너져 내리는 아픔을 안고 쓴 글이어야 사람들의 마음을 진동시킬 수 있나보다. 그것도 아니면 이 세상을 한탄하고 삶을 비관하면서 술에 취해 써 내려간 글이어야 하는지도 모르겠다. 그래서 글은 여유롭게, 재미있게 쓰는 것이 아니라 피를 토하고 혼을 쏟아내듯, 몸을 바스러뜨리는 용기로 써야 하나 보다.

8월은 1년 중 가장 혹독한 달이다. 숨이 막힐 것 같은 무더위도 그렇지만 모든 것을 휩쓸어가는 태풍, 느닷없이 들이닥치는 소나기와 우박이 호시탐탐 우리 삶을 노린다. 한편으로는 뜨거움이 있기에 상대적으로 시원한 곳이 생기며 예측하기 어려운 혹독함을 통해 나태함을 경계하게 한다. 뜨거움을 통해 식물들은 생장의 힘을 한껏 끌어 모아 열매를 숙성시킨다. 어쩌면 8월은 쉬어가는 달인가 싶지만 사실은 허술한 내면을 채우고 비장한 의지를 새롭게 다지는 시기인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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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현우 충북도체육회장, "재정 자율화 최우선 과제"

[충북일보] 윤현우 충북도체육회장은 "도체육회의 자립을 위해서는 재정자율화가 최우선 과제"라고 밝혔다. 윤 회장은 9일 본보와의 인터뷰에서 지난 3년 간 민선 초대 도체육회장을 지내며 느낀 가장 시급한 일로 '재정자율화'를 꼽았다. "지난 2019년 민선 체육회장시대가 열렸음에도 그동안에는 각 사업마다 충북지사나 충북도에 예산 배정을 사정해야하는 상황이 이어져왔다"는 것이 윤 회장은 설명이다. 윤 회장이 '재정자율화'를 주창하는 이유는 충북지역 각 경기선수단의 경기력 하락을 우려해서다. 도체육회가 자체적으로 중장기 사업을 계획하고 예산을 집행할 수 없다보니 단순 행사성 예산만 도의 지원을 받아 운영되고 있는 형국이기 때문이다. 그렇다보니 선수단을 새로 창단한다거나 유망선수 육성을 위한 인프라 마련 등은 요원할 수 밖에 없다. 실제로 지난달 울산에서 열린 103회 전국체육대회에서 충북은 종합순위 6위를 목표로 했지만 대구에게 자리를 내주며 7위에 그쳤다. 이같은 배경에는 체육회의 예산차이와 선수풀의 부족 등이 주요했다는 것이 윤 회장의 시각이다. 현재 충북도체육회에 한 해에 지원되는 예산은 110억 원으로, 올해 초 기준 전국 1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