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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두희

공군사관학교 교수

새들의 날개는 어깨에 달려있지만 조종사의 날개는 가슴에 달려있다. 까마득하기만 했던 비행훈련과정을 마치고, 마침내 은빛 찬란한 날개를 가슴에 달았을 때의 기분은 그때까지 경험한 하늘 중 가장 높은 곳에 닿아있었다. 하늘을 나는 모든 생명체는 날개를 갖고 있다. 비록 신체의 일부가 아니라 "윙(wing)"이라 불리는 작은 표식에 지나지 않지만 조종사에게 날개가 있어야 한다는 점은 물리적, 혹은 철학적으로 타당한 이치일 것이다. 조종사의 가슴에 날개를 다는 것은 일종의 권위를 상징한다. 하늘을 주름잡을 수 있는 권위…. 그러나 그 권위는 끊임없이 몸과 마음을 벼리고 닦아야 하는 책임과, 희생정신을 통해 그 권위에 응답해야 하는 의무를 요구한다. 그런 의미에서 조종사의 날개인 윙은 직접 양력(揚力)을 발생시키는 역할이 아니라, 자신이 누구인지를 자각하게 하는 심리적 동력원(動力源)인 셈이다.

'윙(wing)' 표식.

조종사의 상징이라면 사람들은 단연코 빨간마후라를 떠올린다. 검은 선글라스에 빨간마후라를 맨 조종사의 모습에 매료되어 꿈을 키운 사람들이 많다. 요즘도 비행훈련을 시작하는 학생들에게 왜 조종사가 되려하느냐고 물어보면 거의 대부분이 '조종사의 멋'이 동기(動機)가 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그만큼 빨간마후라가 불러일으키는 감성적 효과가 크다는 말이다. 거의 2년이나 걸리는 비행훈련을 마치고 정식 조종사가 되는 자리에서도 주인공은 단연 빨간마후라이다. 공군의 수장인 참모총장이 신임조종사들에게 일일이 빨간마후라를 매어주며 악수를 나누는 순간이 행사의 절정이다. 그러나 조종사로서 실질적인 자격과 권한은 왼쪽 가슴에 반짝이는 윙에 있다. 윙은 날개를 활짝 펴고 있는 독수리 모습을 형상화하고 있다. 비록 빨간마후라에게 명예와 주도권을 내주긴 했지만 날개가 없으면 날 수가 없듯 명실상부한 실권은 윙이 가지고 있다. 조종사는 가슴에 달린 윙을 통해 등급이 나뉜다. 조종사로서 7년 이상의 경력과 비행시간을 쌓아야 독수리의 머리 부분에 별을 붙인 '선임조종사' 윙을 달 수 있다. 그리고 15년 이상 최고의 경력을 가진 조종사에게는 별에다 월계관을 씌운 '지휘조종사' 윙이 부여된다. 조종사라면 누구나 빨간마후라를 맬 수 있지만, 아무 조종사나 월계관을 쓴 윙은 달지 못한다는 것이다.

어릴 때부터 내 모습을 보며 자랐던 조카가 나의 뒤를 이어 공군사관학교로 진로를 택했다. 4년 뒤 졸업을 하고 비행훈련을 시작하기 직전, 소중하게 보관해오던 나의 첫 번째 윙을 그녀에게 선뜻 내 주었다. 거기엔 나보다 더 훌륭하고 멋진 전투조종사가 되라는 간절한 바람이 담겨 있었다. 하지만 중급훈련과정에 있던 어느 날 그녀로부터 전화가 왔다. 중간 평가에서 탈락의 위기에 처했다는 것이었다. 내가 물었다. "지금 나의 도움이 필요한 거냐·" 그녀의 답은 "괜찮다(No)"였다.

10여년이 지난 지금, 그녀는 조종사의 윙이 아닌 군수장교 마크를 달고 근무하고 있다. 사실은 그 당시 내가 도와줄 수 있는 무언가는 없었다. 마지막 비행평가를 맡은 조종사에게 '선처'를 부탁할 수는 있었지만, 내가 조종사인 이상 그럴 수 없었다. 비행이나 우리들의 삶은 누군가가 대신해 줄 수 있는 것이 아니다. 또한, 누군가의 도움으로 위기를 잠깐 회피한다 하더라도 그녀의 안전과 진정한 행복을 위한 길이 아님을 잘 알고 때문이었다. 단지 내가 먼저 도움이 필요한지 물었던 것은 삼촌으로서 그녀의 불안한 마음을 살피기 위해서였다. 하지만 그녀는 끝까지 스스로의 노력에 의지했고, 자존감을 지켰다.

내가 그녀에게 넘겨 준 조종사 윙은 끝내 그녀의 가슴에 달리지 못했다. 처음부터 그것은 하나의 지표(指標)가 되길 바랐을 뿐, 그녀의 윙이 되길 기대했던 것은 아니었다. 그녀는 그녀의 윙을 달아야 한다. 그것이 발전이고, 계승이다. 그렇다고 나의 윙을 되돌려 받을 생각도 없다. 그녀의 삶에 있어서 그것이 스스로 자긍심을 지키는 징표(徵標)로 남길 바랄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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