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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두희

중원대학교 초빙교수

중국 동북부 지린성에 있는 차간호(査干湖) 사람들의 사는 모습을 직접 보았다. 그들은 한겨울 호수의 두꺼운 얼음판에 수백 개의 구멍을 뚫어 물고기를 잡는다. 얼음 아래 2킬로미터가 넘는 거대한 그물을 펼치는 기술도 대단하지만 많을 땐 4톤이나 되는 물고기를 한꺼번에 잡을 때도 있다니 관광객이 모여드는 것은 당연하였다.

서서 누는 오줌줄기가 얼어붙는다는 맹추위 속에서 그물을 끌어 올리는 과정은 극한의 고된 작업이었다. 그러면서도 오직 사람과 말의 힘에만 의지하는 전통적인 방법을 고수하고 있었다. 하지만 그들의 표정과 행동, 어디에서도 삶에 찌든 면은 보이지 않았다. 더구나 내가 간 날은 그물에 걸려 얼음 위로 올라온 고기가 대여섯 마리 밖에 되지 않았다. 30여 명이 매달려 한 사람 몫도 안 되는 빈 그물을 끌어올리면서도 그들의 팔뚝에는 힘이 남아 있었다.

그물에 걸린 고기가 몇 마리밖에 되지 않자 구경하던 사람에게 그냥 나누어 주었다. 수많은 관광객이 찾아와 그들의 삶에 동참하고 같이 안타까워 해주는 것만으로도 고맙게 생각하는 것 같았다. 작업 도중 북적이는 관광객들로 인해 적잖이 방해가 되었을 터인데 그 누구도 짜증을 내거나 귀찮아하는 표정은 없었다.

중국인 특유의 만만디정신이었을까· 하루를 허탕 치고 빈손으로 돌아가야 했지만 그것을 허탕이라고 생각하지 않는 것은 웬만큼 삶을 달관하지 않고서는 어렵다. 어부들은 고기가 많이 잡혀 만선일 때도 있지만 빈 배로 돌아올 때에도 그것을 일상으로 여기는 여유가 있다고 한다. 하지만 강추위 속의 작업은 그렇게 여유를 부릴 수 있는 상황이 아닌 것 같았다. 겨울철 한두 달 동안만 이루어지는 생업인데 이럴 때도 있고 저럴 수도 있다며 낙관할 처지는 아니었을 터이다.

오전부터 눈 덮인 얼음 위에서 발을 동동 구르며 그 과정을 지켜보았다. 오후 중반이 넘어서야 그물이 다 끌어올려졌고 그 때까지 자리를 떠나지 못했던 나도 허탕은 아니었다. 직접 작업을 한 어부들이 허탕이라고 여기지 않는데 둘러 싼 관광객들이야 허탕일 리가 없었다. 끝없이 펼쳐진 하얀 얼음평원 위에 수많은 사람들과 차량들이 한 군데에 모여 구멍을 뚫는 작업을 해도 "쩡∼쩡∼" 소리 한 번 내지 않는 얼음의 견고함은 경이로웠다. 그곳에 가기 전 TV로 보았던 풍성한 수확이 아니라 오히려 허탕을 친 모습에서 그들의 너른 인심과 유연한 삶의 태도가 나를 되돌아보게 했다.

삶은 얻어지는 결과로 평가된다. 얻은 것이 없고 가진 것 또한 없으면 헛살았다고 생각하게 마련이다. 그게 삶의 일반론이지만 차간호 사람들을 보면서 그 일반론이 오답일 수도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노력에 대한 대가가 꼭 있어야 한다는 각박한 일반론을 내세우는 한 우리의 삶은 늘 피곤하고 곤궁하고 후회스러울 수밖에 없을 것 같았다.

내일의 작업을 위해 텅 빈 그물을 다시 차곡차곡 정리하고 있는 차간호 사람들을 뒤로하고 눈 덮인 얼음 위를 아스팔트인양 쌩쌩 달리는 총알택시를 탔다. 20여분을 달린 후에야 마침내 버스가 기다리는 호숫가에 가 닿을 만큼 차간호는 넓었다. 저녁 무렵 주변 식당에서 물고기 요리를 먹었다. 민물고기 특유의 흙냄새가 배어 있어서 그리 맛있게 먹지는 못했지만 배가 불렀다. 하루를 얼음 위에서 보낸 덕분에 추위에 대한 내성을 얻었고, 그들의 표정에서 배운 여유와 널찍한 인심이 배 속을 이미 채우고 있어서였는지도 모른다.

기억에 남는 장면은 추운 얼음 위에서 쳇바퀴 돌듯 뱅글뱅글 돌며 그물을 끌어올리던 말들의 모습이었다. 특별히 제작된 얼음용 편자를 신고 연자방아 돌리듯 쉴 새 없이 도르래를 돌리는 말들의 온몸에서는 더운 김이 무럭무럭 피어올랐다. 쳇바퀴 돌듯 고단한 삶을 살기는 사람과 똑같았다. 하지만 주인과 함께 집으로 돌아가면 하루의 고단함을 내려놓고 따스하며 푸근한 저녁을 맞으리라. 정초의 행운을 가져다준다는 차간호 물고기들이 그물 속으로 가득가득 들어오는 꿈과 함께 그들의 노곤한 밤은 깊어 가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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