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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두희

공군사관학교 교수

배나 비행기를 타고 태평양을 건너다보면 바다 한가운데에 '날짜변경선'이란 선을 넘어간다. 서쪽에서 동쪽으로 갈 때엔 날짜가 하루 뒷걸음질 치고, 동쪽에서 서쪽으로 가면 날짜가 앞으로 건너간다. 지리적인 가상의 선 하나가 이쪽은 오늘이요, 저쪽은 어제라는 식으로 시간을 쪼개놓을 수 있다는 사실이 신기하기만 하다.

비행기를 타고 높이 올라가면 '전이고도(轉移高度)'라는 가상의 경계선이 있다. 날짜변경선처럼 시간이 좌지우지되는 것은 아니지만 경계의 위아래는 따라야 할 규칙과 기준이 달라진다. 전이고도 위쪽에서는 표준대기압을 기준으로 한 고도를 적용하고, 그 아래에서는 각 지역별로 측정된 대기압을 기준으로 고도를 나타낸다. 우리나라에서는 14,000피트가 전이고도인데, 이 고도를 통과할 때엔 고도계에 수정된 대기압수치로 바꾸어주어야 한다. 간단한 조작이지만 규칙을 따르지 않으면 항로비행을 하는 비행기끼리 설정 고도가 맞지 않아 충돌하거나 착륙단계에서 고도를 잘못 판단하는 오류가 발생할 수 있다.

이처럼 적용되는 기준이나 규칙이 달라지는 전환점은 우리의 삶에서도 만난다. 특히 학생의 신분에서 취업을 하여 일반인으로 바뀌는 시기가 인생 전체를 볼 때 중요한 전환점이 아닐 수 없다. 부모의 보살핌과 감독에서 벗어나 홀로서기를 할 수 있는 기회이기도 하고, 자신의 인생을 스스로 개척해 나가야 하는 엄중한 지점이기도 하다. 불행하게도 요즘 젊은이들에게 이 전환점의 고도가 더 높아지고 어려워졌다. 옛날에는 고등학교건 대학교건 학교를 졸업하면 대부분 취업이 가능했지만 지금은 사정이 많이 달라졌다. 취업을 위해 1∼2년은 보통이고 3∼4년씩 고통스런 '취업준비생'으로 살아가는 젊은이들을 흔하게 볼 수 있다. 이러한 현상이 여러 가지 사회문제의 시발점이 되고 있지만 별 뾰족한 대책을 찾지 못하고 있다.

27살이 넘어서야 대학을 졸업한 내 아들도 마찬가지였다. 4학년 때부터 시작한 취업문 뚫기 작전을 2년이 넘도록 성공하지 못해 마침내 엄마가 나섰다. 유통업계의 대기업 임원에게 부탁하여 겨우 서류심사를 통과하였고, 두 차례의 면접시험도 무난하게 통과하였다. 형식적 통과의례에 불과하다던 마지막 임원진면접만 남았을 때, 이제 다 된 줄 알았다. 아들은 '취준생' 친구들에게 밥을 사기도 했단다. 하지만 샴페인을 너무 일찍 터드린 결과가 되고 말았다. 외모나 성격이 일선영업직에는 안 맞을 것 같다는 면접관의 평가로 인해 또다시 고배를 마셔야 했다. 아들은 그 어느 때보다 큰 충격을 받았는지 이틀 동안 꼬박 방안에 박혀 있었다. 그러다가 문득 자기를 위해 힘써준 대기업임원의 집을 찾아갔다. 탈락했다는 좌절감과 마지막 문턱에서 미끄러진 억울함을 토로하러 간 것이 아니었다. 오히려 그 집 안주인에게 감사의 뜻으로 꽃다발을 전하고 돌아왔는데, 그 사실을 우리가족은 아무도 몰랐다.

그 이후 아들은 눈에 띠게 달라졌다. 몇 달 동안 이곳저곳 동분서주 하더니 결국 의료분야에서 꽤 탄탄하다고 알려진 중소기업에 당당히 취업을 했고, 지금도 열심히 근무하고 있다. 아들은 자신의 전환점을 그렇게 통과하였다. 대기업의 최상위급 임원까지 나서서 도왔지만 또다시 탈락의 고배를 마셨을 때, 아들은 자신에게 부족한 것이 무엇인지 많은 생각을 했던 것 같다. 좌절이나 억울함을 변명함으로써 자신의 무능함을 감추려 한 것이 아니라, 도움을 주었던 사람에게 감사함을 전하며 새로운 용기를 얻는 기회로 삼았다. 그 일을 계기로 아들은 한 단계 성장했다.

요즘 젊은이들의 취업전선은 자신의 특기나 선호하는 분야를 돌아볼 여유마저도 허락되지 않는 무한경쟁의 전쟁터가 되었다. 더구나 어려운 환경에서 학자금 대출을 받아 공부한 젊은이들은 벼랑으로 내몰리고 있는 상황이다. 지금은 우리 부모들이 조금 더 기다려 주고 그들을 다독여야 할 때다. 나도 옛날 생각만으로 아들을 의심하고 다그치기만 했지 속마음을 읽고 따스한 시선으로 바라보지 못한 것 같아 미안함이 앞선다. 지금 '취준생'의 속은 부모보다 훨씬 더 새카맣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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