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기사

이 기사는 6번 공유됐고 0개의 댓글이 있습니다.

이두희

공군사관학교 교수

마침내 12월이다. 가을비가 몇 차례 지나가더니 본격적인 겨울로 접어들었다. 싸늘해진 바람이 길 위의 낙엽들을 이리저리 쓸고 다니며 겨울을 재촉한다. 달랑 한 장 남은 달력 탓인가, 한껏 싸맨 거리의 행인들은 쫓기듯 종종걸음으로 집을 향하고 있다. 시골집의 따스한 아랫목이 그립다.

생각해보면 일 년 중 이맘때가 가장 잔인한 계절인 것 같다. 4월을 잔인하다고 하지만 그것과는 전혀 다른 이유로 사람들을 웃고 울리는 계절이다. 일 년, 혹은 십 년 이상 나름대로는 최선을 다해 살아온 결과가 종이위에 써진 이름 세 글자로 희비가 가려질 때, 인생은 참 가볍다는 생각이 든다. 무거운 짐을 지고 산을 오르듯 살아온 삶이지만 합격과 불합격이란 결과 앞에선 물에 뜬 종이배처럼 흔들리고 만다. 학생들의 수능과 취직, 일반인들의 승진과 보직 등 갖가지 인생의 관문이 한층 문턱을 높인 채 이 계절에 도사리고 있는 것이다.

이맘때쯤이면 으레 떠오르는 화두가 있다. 과연 10여 년 동안의 공부가 단 하루 동안 치러지는 시험으로 당락을 가르는 것이 정당한 것인가·

엊그제 내가 담당했던 학생조종사 한 명이 다른 길을 향해 떠났다. 그 동안 피나는 노력을 했지만 결국 조종사로서의 자질이 부족하다는 평가를 받았다. 조종복 대신 얼룩무늬 전투복을 입고 여행용 가방과 이불보따리, 책가방 하나의 단출한 짐을 꾸려서 떠나는 그의 뒷모습에 가슴이 아릿하다.

오랜 시간동안 꿈꾸어 온 조종사의 길이 물거품이 된 지금, 그 무슨 말로 위로할 수 있을까. 사관학교 입학이후 동료들과 함께 걸어온 배움의 길에서 탈락된 좌절감은 또 어떠할까· 어쩌면 찬바람 부는 들판에 혼자 내쳐진 것처럼 외롭고 허망하리라.

그에게 주어진 기회는 많지 않았다. 약간 소심한 성격이 그의 첫 평가비행을 엉망으로 만들었던 것 같다. 이어진 재평가에서는 다소 나아진 모습이었지만 결정적인 실수를 하고 말았다. 떨어지면 마지막이란 중압감을 이겨내지 못한 탓이었다. 성격이 차분하고 성실하였지만 규정화된 평가기준에 드러나지 않는 노력까지 반영하기는 어렵다. 그래서 '실수도 실력'이고, '운도 실력'이란 말에 이견을 달지 못한다.

나도 여러 차례 쓰라린 경험을 했다. 시골 중학교에서 도회지 고등학교 진학을 꿈꾸면서 어린나이에 고독하고 답답한 재수를 경험했다. 군 생활 중 보직은 결정적인 순간에 바뀌곤 했다. 이미 보직심사를 거쳐 확정되었다가도 전임자에게 사정이 생기거나 상황의 변화로 내가 원하던 보직으로 가지 못했다. 그러한 일이 두세 차례 반복되자, 누군가가 나를 음해하고 있다는 생각까지 들 정도였다. 마지막 진급심사에서도 내 이름은 없었다.

세월이 흐른 지금 생각해보면 삶이란 것이 본래 그런 것이었다. 그렇게 뒤바뀌고 요동치면서 이어가는 것이 우리들의 삶이었다. 원래 정해진 것이란 없었다. 단지 내 욕심이었을 뿐이었다. 한편으로는 바뀌어버린 결과가 꼭 나쁜 결과를 초래한 것도 아니었다. 오히려 그러한 변화와 시련이 지금의 나로 성장시켜 왔다고 자부한다.

'아침편지'로 유명한 고도원작가는 젊은이들의 고민에 대해 "꿈 너머 꿈"을 생각해보라고 했다. 앞에 닥친 꿈만 바라보는 것이 아니라 그 꿈 너머에 더 크고 가치 있는 꿈을 생각해보라는 말이다. 당장의 꿈은 조종사이지만 조종사가 된 이후의 꿈을 생각하면, 막막한 순간에도 갈 길에 대한 답을 찾을 수 있다. 설상 조종사가 되지 못하더라도 좌절할 이유가 없다. 길은 길로써 연결되어 있다고 하지 않던가. 또 끝까지 조종사로 살 수는 없지 않은가.

탈락의 아픔을 안고 떠나는 학생조종사에게 나는 단호한 어조로 말했다.

"뒤돌아보지 마라."

가지 못한 길에 미련이 남지 않을 수는 없겠지만 뒤를 돌아다보는 일은 가야할 앞길에 방해만 될 것이기 때문이다. 다시 택한 길에서 앞만 보고 달리는 것만 못하다는 말이다.
이 기사에 대해 좀 더 자세히...

관련어 선택

관련기사

배너
배너
배너

Hot & Why & Only

실시간 댓글

배너
배너

매거진 in 충북

thumbnail 308*171

윤현우 충북도체육회장, "재정 자율화 최우선 과제"

[충북일보] 윤현우 충북도체육회장은 "도체육회의 자립을 위해서는 재정자율화가 최우선 과제"라고 밝혔다. 윤 회장은 9일 본보와의 인터뷰에서 지난 3년 간 민선 초대 도체육회장을 지내며 느낀 가장 시급한 일로 '재정자율화'를 꼽았다. "지난 2019년 민선 체육회장시대가 열렸음에도 그동안에는 각 사업마다 충북지사나 충북도에 예산 배정을 사정해야하는 상황이 이어져왔다"는 것이 윤 회장은 설명이다. 윤 회장이 '재정자율화'를 주창하는 이유는 충북지역 각 경기선수단의 경기력 하락을 우려해서다. 도체육회가 자체적으로 중장기 사업을 계획하고 예산을 집행할 수 없다보니 단순 행사성 예산만 도의 지원을 받아 운영되고 있는 형국이기 때문이다. 그렇다보니 선수단을 새로 창단한다거나 유망선수 육성을 위한 인프라 마련 등은 요원할 수 밖에 없다. 실제로 지난달 울산에서 열린 103회 전국체육대회에서 충북은 종합순위 6위를 목표로 했지만 대구에게 자리를 내주며 7위에 그쳤다. 이같은 배경에는 체육회의 예산차이와 선수풀의 부족 등이 주요했다는 것이 윤 회장의 시각이다. 현재 충북도체육회에 한 해에 지원되는 예산은 110억 원으로, 올해 초 기준 전국 1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