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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두희

공군사관학교 비행교수

나의 주량은 소주 두 잔. 이 한계를 넘어가면 온몸이 벌겋게 달아오르고 이내 졸리다가 나중에는 두통이 온다. 밤잠을 설쳐야 하는 후유증도 겪어야 한다. 남들이 소주 두 병을 마셨을 때의 증상보다 더 심하니 술에 대해서는 상당히 경제적인 체질을 타고 났다고 할 수도 있겠다. 예전에 어느 상관은 말했다. "너처럼 술을 마셨으면 지금까지 절약한 돈으로 집 한 채를 마련하고도 남겠다." 하지만 나는 지금 되묻고 싶다. 두 잔만 마신다고 두 잔 값만 내게 한 적이 있었는가· 오히려 소주 두 잔의 주량으로 한 시절을 버텨내기 위해 얼마나 많은 우여곡절을 겪어야 했을지 상상해 보았느냐고.

술로 인해 얽히고설킨 이야기는 술을 즐겨하고 두주불사를 마다하지 않는 사람에게만 있는 것은 아니다. 술자리에서 소주 한 잔에 해롱해롱하는 사람에게도 나름대로의 술 이야기는 끊임없이 이어진다. 어쨌거나 술이 있어서 우리들의 삶이 더 다사다난해지고 사람과 사람과의 관계가 활기를 띠게 되는 것은 사실이다.

옛날이나 지금이나 자문하게 되는 것은 '술을 왜 먹느냐·'이다. 술을 자주 먹는, 아니 먹어야 되는 사람들에게 물어보면 셀 수도 없을 만큼 다양한 이유가 있을 것이다. 하지만 내가 지켜본 관점에서의 그 이유란 것은 그리 복잡한 것이 아니었다. '사람들이 산에 오르는 이유'와 비슷하다고 간단히 정리할 수 있다.

20세기 중반 뉴욕타임즈 기자가 영국의 탐험가이자 산악인이었던 '조지 멜러리'에게 왜 산에 오르느냐고 물었을 때 멜러리가 말한 답은 명언 중의 명언이 되었다. '거기에 산이 있기 때문'이라는 간단명료한 말이었다. 이 말은 술을 좋아하는 사람에게 '왜 술을 먹느냐·'에 대한 답으로 적용될 수 있다.

우리들이 술을 대하는 습관도 등산과 많이 닮아 있다. 산을 오르는 사람이 산 중턱에서 그만두는 경우는 몸에 이상 징후가 오지 않는 한 거의 없다. 술을 좋아 하는 사람도 한 번 시작했다면 꼭 정상까지 가려는 듯이 도전적으로 술을 먹는다. '반주로 딱 한 잔'이란 말, 99퍼센트 거짓말이다.

가끔 술을 통해 자신의 체력을 과시하고 정복의지를 보여줌으로써 상대방을 굴복시키려는 사람도 있다. 그에게 술에 대한 기억은 수많은 산을 정복한 기록처럼 상대를 굴복시킨 전사(戰史)로 가득 차있다.

술을 마시는 이유 중 등산과 유사한 점은 또 있다. 중독성이다. 높은 산에 오르며 고생할 때엔 내가 왜 이렇게 사서 고생을 하고 있나 싶을 때가 많다. 심지어 죽을 고비를 넘기거나 동상으로 손과 발가락을 잃은 산악인도 많다. 고통이 엄습할 때는 이제 다시 등산을 하지 않겠다고 다짐을 하지만 2년만 지나면 발바닥이 근질근질해진다. 술도 똑 같다. 폭음으로 인한 인과는 늘 고통이 뒤따른다. 육체적인 고통도 있지만 취중 실수로 인해 평생을 두고 후회하는 일이 종종 일어난다. 하지만 며칠이 지나고 나면 또 다시 술 앞에 선다.

술을 먹는 여러 가지 이유 중 가장 슬픈 이유는 술에 의지하지 않으면 버티기 어려운 경우이다. 술을 통해 고통스러운 현재를 잊어야 하는 경우도 그렇지만, 자신의 의지와는 다르게 술로 형성되는 인간관계를 쫓아야 할 때도 슬픈 이유에 속한다. 사실 소주 두 잔의 주량으로 술자리마다 쫓아다닌 이유도 술좌석을 통해 형성되는 울타리 안의 사람이 되기 위해서였다. 함께 한바탕 거나하게 취하고 나면 아군이 되고, 친구가 되고, 형제가 될 수 있지만 술잔을 받아두고 주저하거나 일찍 자리에서 사라지면 결코 의리 있는 사람이 될 수 없었다.

요즘 술을 좋아하는 친구들이 술자리에 나를 부르는 일이 잦아졌다. 세상은 오래 살고 볼 일이다. 술좌석에서 서로 주거니 받거니 하고 무슨 말인지도 모르는 반복적 대화를 통해 아군이 될 수 있다고 믿던 친구들이 술을 못 먹는 나를 술친구로 받아들이기로 한 것이다. 자기주장만 하는 친구들을 적당히 중재도 하고 차에 태워 각자의 집까지 무사히 데려다 줄 친구 한 명이 필요하게 된 것이다. 옛 속담에 술과 세월을 이기는 사람은 없다고 했는데 이제 그 나이가 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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