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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은숙

청주대학교 명예교수·교육학박사

선진국과 후진국을 가늠하는 기준은 그 나라 국민들의 의식수준에 달려있다고 생각한다. 한 나라가 아무리 경제적으로 성장을 이뤄도 국민의 의식수준이 이에 따르지 못한다면 그 나라는 선진국이라고 자부할 수 없을 것이다. 이러한 국민들의 의식수준은 그들의 질서의식을 통해서 잘 표현된다.

1980년 초, 처음으로 미국 여행을 갔을 때 경험했던 부끄러운 일이 생각난다. 지금은 우리도 한 줄 서기 정도는 상식으로 알고 있지만 그때만 해도 국내엔 그런 개념이 없어 전혀 의식하지 못했었다. 식당에서 화장실을 갔는데, 화장실 입구는 사람들이 있었지만 안으로 들어서니 세 개의 화장실 문 앞에는 아무도 서 있지 않았다. 기다리는 사람이 없다고 생각하고 늘 하던 대로 그중 하나의 문 앞에 섰다.

그런데 이상한 느낌이 들어서 뒤돌아보니 화장실 입구 쪽에 한 줄로 쭉 서 있던 사람들의 모든 시선이 나를 향하여 마치 이상한 사람을 보는 것 같은 표정을 하고 있었다. 그 순간 '아차, 이게 아니구나' 눈치채고는 얼굴을 붉히며 재빨리 한 줄로 서 있는 사람들의 맨 뒤로 가서 줄을 섰다.

이윽고 한 사람이 화장실에서 나오자 줄 맨 앞에 섰던 사람이 들어갔다. 세 군데 어느 곳에서 나와도 맨 앞에 섰던 사람의 차례가 됐다. 당시 우리나라처럼 운이 좋으면 줄을 잘 선택해서 먼저 온 사람보다 빨리 화장실을 사용할 수 있는 행운(?)은 기대할 수 없었지만, 참 공평하다고 생각돼 감동이었다.

또 한 가지는 운전 질서였다. 단체여행 중에는 운전할 필요가 없어서 몰랐지만 직접 미국 운전을 하면서 알게 되었다. 미국은 법으로 신호등 없는 사거리에서 먼저 정지선에 도착한 차부터 차례로 진입하게 돼있고 운전자들이 이를 잘 지킨다. 하지만 2021년인 지금까지도 우리는 그런 약속이 없다.

우리나라는 아직도 뱃장 좋은 사람이 먼저 건너고 그 뒤를 따라서 여러 대가 줄지어 건넌다. 겁 많은 사람은 다른 차가 다 건넌 후에야 건널 수밖에 없다. 초보들은 못 가고 기다리다가 뒤차가 왜 안 가느냐고 빵빵거리는 욕을 먹기 일쑤다. 내가 초보 때에는 수동변속기 차를 몰았기 때문에 뒤 차들이 빵빵거리면 당황해서 시동을 꺼뜨리곤 했다.

처음 미국에서 운전을 하다가 신호 없는 사거리에서 앞차가 진입하니까 하던 습관대로 따라가다가 나보다 먼저 정지선에 도착해 대기하고 있던 차가 당연히 자기 차례니까 진입하는 바람에 충돌할 뻔했던 아찔한 기억이 있다. 그들의 생각은 내가 바쁘면 상대방도 바쁠 수 있고, 기회는 모두에게 공평해야 한다고 생각하는 것이다. 이런 것들이 선진의식이라 생각된다.

이러한 시민의식은 대부분 합리적인 법제화의 뒷받침에서부터 시작된다. 최근에 실시된 어린이 보호구역 운영 제도를 예로 들어보자. 24시간, 365일, 아이들이 없는 새벽시간이나 공휴일에도 속도를 제한하는 것은 불합리하다.

1980년대 초에도 미국은 이미 실시하고 있었지만 우리와 다른 점이 있었다. 학교 앞 어린이 보호 제한속도가 표시된 기둥에 램프와 종이 있어서 등, 하교 시간에만 점등되고 종소리가 나서 어린이 보호 속도제한이 운영 중임을 알리며 보다 합리적이고 효율적인 아동보호를 유도하고 있다.

불합리한 법제화는 불필요한 범법행위를 유도해 오히려 질서의식의 저해를 유발할 수 있다. 우리도 어린이 보호뿐 아니라 운전자들의 편의를 배려하는 동시에 비효율을 줄일 수 있는 제도 보완이 필요하다.

우리나라도 이제는 선진국 대열에 들어섰다. 다른 선진국들과 대등한 의식의 선진화를 이뤄야 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법제 시 합리성과 효율성을 고려할 필요가 있다. 그래서 모든 사람이 납득하고 기꺼이 실천이 가능해 질 때 우리의 시민의식은 한층 더 고취될 수 있을 것이다.

선진국 여러 나라를 여행해 보긴 했지만 한 나라의 제도나 의식수준은 여행을 통해서 아는 것에는 한계가 있어서 실제로 살아 보았던 미국의 예를 들었다. 이 밖에도 다른 선진국의 좋은 점도 받아들여 시민의식을 고취시킬 수 있는 합리적인 법제화에 적용하는 것이 좋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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