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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은숙

청주대학교 명예교수·교육학박사

인간사회의 모든 희로애락은 사랑에서 시작된다. 시, 노래, 소설 등의 주제는 거의 모두 사랑이다. 사랑이 없이는 인간의 삶도 의미가 없는 것처럼 보인다. 그러나 이 사랑은 신비의 베일을 쓰고 있어서 그 베일이 벗겨질 때, 아름답게도, 또 추하게도 드러난다. 따라서 어떤 사랑은 재앙이 될 수도 있다.

가정의 달, 5월을 맞이하여, 대표적인 사랑의 조직, 가정을 생각해 본다. 가정은 운명적이고 본능적으로 형성되어서 그 사랑의 한계는 인간의 상상을 초월하며 한 인간을 만들고 또 부수기도 한다. 또한 인격형성을 위한 보약이기도 하고 동시에 독약이 되기도 한다.

우리 아버지는 삼대독자이다. 다행히 첫 아들을 낳았지만 백일 만에 잃었다. 그 시절에는 아들이 필수적인 조건임에도 우리 어머니는 그 후 딸 셋을 내리 낳았다. 첫 딸을 낳았을 때는 그런대로 참았지만 연년생으로 두 번째 출산하는 아이는 꼭 아들일 꺼 라고 믿어 의심치 않았던 것 같다. 첫 번째가 아들, 두 번째가 딸이니까 세 번째는 분명 아들 차례일 것이라고…….

아버지는 마당에서 첫 딸을 안고 출산을 기다리다가 또 딸이라는 소식에 크게 낙심하여 "너만 못할 짓 했구나"를 연발했다고 한다. 나중에 외할머니가 전해 준 말이었다. 두 번째 딸이 바로 나였다. '아! 나는 태어난 순간부터 환영받지 못한 자식이었구나' 하는 슬픔과 동시에 그동안 내가 느꼈던 차별대우가 오해가 아니었다는 것을 깨달았다.

내게는 지금까지도 잊혀 지지 않는 기억이 있다. 6·25 전의 일이었으니 다섯 살이 안됐었던 것 같다. 우리 집은 기독교 가정이라 크리스마스에는 선물을 받았다. 아침에 일어나니 머리맡에 산타할아버지의 선물이 놓여 있었다. 그런데 언니의 머리맡에는 커다란 소꿉놀이 세트가 놓여있었고, 내게는 석고로 만든 손바닥만한 산타할아버지 인형이 놓여 있었다.

언니의 소꿉놀이 세트에는 조그만 도마며 양동이, 밥솥과 밥그릇 등 없는 것이 없었다. 얼마나 부러웠는지 모른다. 언니에게 같이 가지고 놀자고 하니까 싫다고 했다. 난 언니에게만 좋은 선물을 준 산타할아버지가 너무도 원망스러웠다. 초등학교 때도 언니에게 새 가방을 사주고 내겐 언니가 쓰던 헌 가방을 주었다. 그래도 싫다고 떼쓴 기억이 없다. 떼쓰면 매 밖에 돌아오는 것이 없었으니까.

중학교 때였다. 무엇을 사달라고 했는데 엄마는 역시 거절했다. 그때 처음으로 엄마에게 "왜 날 낳아놓고 구박만 하는 거야?"하고 울며 반항했다. 사춘기의 용기였었는 것 같다. 결과는 또 매 밖에 없었지만, 울고 있는 나에게 엄마는 이렇게 설득했다. "야, 이것아, 너 손가락 열개 다 깨물어 봐라. 안 아픈 손가락이 있니? 엄마도 너희들을 모두 꼭 같이 사랑해"라고 했다. 글쎄, 엄마의 그 말은 사실이었을까?

요즘은 자녀를 하나 또는 둘 밖에 낳지 않는다. 따라서 부모들의 자녀에 대한 사랑과 정성은 대단하며 기대 또한 크다. 그러나 인간의 능력의 크기, 방향과 욕구도 다 다르다. 그럼에도 부모는 사랑이란 미명하에 자신의 기대에 대한 보상을 강요하고 있지 않은지, 무분별한 사랑을 쏟아주고 있는지, 또는 불공평한 편애를 하고 있지는 않은가를 냉정하게 반문해 봐야 한다.

대부분의 자녀들은 나름대로 부모의 기대에 어긋나지 않기 위해서 최선의 노력을 한다. 하지만 계속적인 한계에 부딪칠 때 좌절하며 쓰러진다. 그 결과는 가족 간의 화목과 신뢰는 물론, 사회의 질서를 파괴하고 독버섯처럼 번져나간다. 최근의 사회면을 크게 장식하고 있는 청소년들의 일탈을 바라보면서 '문제의 자녀는 없고, 오직 문제의 부모가 있을 뿐이다'라는 말을 깊이 되새겨 보아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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