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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은숙

청주대학교 명예교수·교육학박사

나이 70을 넘어 선 지금, 지나 온 길을 뒤돌아 본다. 어느 날, 초등학생이었던 딸이 학교에서 돌아와 시무룩한 얼굴로, "학교에서 엄마 나이를 조사했는데, 다른 아이들 엄마는 다 30대 인데 엄마만 왜 40대이지?" 하고 물었다. 예상치 않았던 질문에 조금은 당황했던 기억이 난다. 엄마가 40대여서 좀 부끄러웠던 것 같다. 나 역시 철 없을 때는 40도 넘은 아줌마들은 참 안됐다고 생각한 적이 있었다. 그때 우리 딸도 그런 생각이었을까.

친정 어머니가 60세 쯤 되셨을 때다. "내가 다섯살만 젊었으면 얼마나 좋을까" 하는 것을 들으며 '다섯 살이 젊어져도 55세 인데, 뭐가 좋을까'하고 속으로 웃었다. 나도 곧 늙으리라는 것을 그땐 정말 몰랐던 것 같다. 며칠 전, 지인이 보낸 노랫말에 이런 구절이 있었다. '누가 다시 세월을 돌려준다해도 싫다고 말을 할거야. 또 알 수 없는 안개 빛 같은 젊음이라면 생각만 해도 힘이 드니까' 지금의 내 심정을 말해주고 있는듯 하다.

지난 70년을 돌아보면, 행복했던 기억은 거의 없다. 어려서는 부모님들이 싸우는 것을 보며 항상 무서웠고 슬펐다. 결혼해서는 시댁과의 문화와 종교의 차이로 너무 힘들었다. 전형적인 충청도 사고방식으로 사는 시댁에서 여자의 존재는 거의 없었다. 기독교 집안에서 남, 녀 차별 없이 자란 나는 이해할 수 없었지만 내 자신이 선택한 이상 누구를 원망할 수도 없었다. 그래서 남편만 바라보고 살아야겠다고 결심 했지만 결혼 한지 한 달도 안돼서 그것 역시 허망한 기대였다는 것을 깨달았다.

그 시절엔 볼펜이 없었기 때문에, 매일 밤 일기를 쓰면서 흘린 눈물이 잉크를 적시면서 번졌다. 길에서 우연히 마주친 서울 번호판을 단 택시가 사라질 때까지 지켜보기도 했다. 결국 결혼 5개월 만에 모든 것을 포기하고 무작정 서울로 돌아왔다. 그때 친정 어머니는 느닷없이 들어 선 딸의 모습을 물끄러미 바라보다가 "잘 왔다" 그 한 마디 외엔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지금까지도 그 당시의 어머니의 반응이 언뜻 이해가 가지 않지만, 그 생각이 떠오를 때면 늘 감사한 마음이다.

그땐 친하게 지내던 친구들도 모두 결혼했고 내 맘을 털어놓고 하소연할 곳도 없었다. 나 역시 내 처지를 남에게 알리고 싶지도 않았다. 나는 차츰 내 마음의 문을 닫고 홀로 살고 있었다. 지금 생각해 보면 그때가 바로 우리가 이혼해야 했던 적절한 시기가 아니었나 싶다. 그러나 그 시절에는 이혼이라는 것은 현실적인 이야기가 아니었다.

올해가 결혼 50주년, 금혼식이다. 반 세기가 되는 그 긴 세월을 어떻게 살아왔나 나 자신도 신기하다.

자녀들 앞에서 부모가 싸우는 모습을 보여서는 안된다고 학생들에게 강의하면서도 나 자신은 우리 아이들 앞에서 부부 싸움을 몇 번이나 했던가. 그럴 때 아이들의 얼굴에서 어릴 적 내 모습이 떠 올라서 미안하고 또 미안했다.

이젠 모두 다 내 곁을 떠나고, 그처럼 나를 힘들게 하던 남편만 남았다. 지금은, 아플 때 물 한잔 떠 줄 수 있는 사람이 오직 남편 뿐이지 않은가. 자식들도 제 갈길로 갔고, 친구도 멀리 있고, 형제도 부모가 떠나고 나면 남이나 별로 다르지 않다. 더구나 멀리 있으면 아무 도움이 안된다. 이제는 나도 철없고 이기적인, 나이 많은 어린애가 된 것일까? 같이 밥을 먹을 수 있고, 대화를 할 수 있고 같은 공간에서 사람의 훈기를 느낄 수 있는 사람이 필요할 뿐이다. 가끔, 풀 죽어 있는 남편의 늙은 모습을 보면서, 연민의 정마저 느낀다. 결국, 내 인생의 마지막 친구는 지난 날 그토록 미워했던 남편이 아닐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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