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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은숙

청주대학교 명예교수·교육학박사

달력이 마지막 한 장 남았다. 세월의 속도는 나이대로 간다더니 그 속도가 새삼 느껴진다. 언제 스무 살이 되나 간절히 기다리던 때가 생각난다. 그 때가 되면 교복도 벗어 던지고 영화관에도 자유롭게 갈 수 있다는 희망, 그런 단순한 희망에 부풀었던 시절도 있었다.

'늙어 간다는 것은 이제까지 입어 본 적이 없는 납으로 만든 옷을 입어 본다는 것'이라는 어떤 사람의 글을 읽으며 공감하고, 또 공감했다. 어떻게 이런 적절한 표현을 할 수 있을까. 경험해 보지 않고는 알 수 없는 느낌! 어려서 읽었던 공상과학만화에서만 가능했던 일들이 모두 현실이 되어 있어서 세상은 너무도 편리하고 신기하기만 하지만, 노인들에게는 납으로 만든 옷을 입고 있는 냥, 불편하고 거북하기만 하다.

식당에 가도 기계에다 주문해야하는 불편한 세상, 스마트폰을 가지고 있어도 잘 쓸 줄을 모른다. 자식들에게 물으면 귀찮아해서 은근히 자존심도 상한다. 기계를 잘 모르고 살아가려니 그저 불편하기만 하다. 게다가 고물자동차처럼 하루가 다르게 몸이 여기 저기 고장 나는 것도 괴롭다.

모든 것은 자신이 경험해 보지 않으면 느껴지지 않는다. 젊은 시절, 버스를 타면 운전기사 취향대로 크게 틀어대는 유행가 소리에 짜증이 날 때가 많았었다. '고향이 그리워도 못 가는 신세….' 태어나서 줄 곳 서울을 벗어나보지 못한 나로서는 고향이 왜 그리워서 저리 청승맞게 노래를 하는지 통 이해가 안 갔다.

그 후, 결혼해서 멀리 가게 됐는데, 주위에는 시댁식구 외에 아무도 없었다. 게다가 남편마저도 내 편이 되어주지 않으니 한없이 외롭고 슬펐다. 그 당시에는 휴대폰은 물론, 전화 있는 집도 거의 없던 시절이어서 어디에 내 맘을 터놓고 얘기할 데도 없었다. 오직 일기장에 눈물로 기록할 뿐이었다. 어느 날, 장보러 나갔다가 서울에서 온 영업택시의 번호 판을 사라질 때까지 바라보기도 했다. 서울이 있는 북쪽하늘을 바라보며 눈물을 흘린 적도 있다. 그때야 비로소 고향에 대한 그리움을 노래한 그 의미를 이해했다.

이렇듯 늙는다는 것도 늙어보지 않으면 그 불편함도, 그 아픔도 모른다. 사람들은 나이는 숫자에 불과하다고 애써 부정해 보지만 그 강한 부정 속에 있는 부정할 수 없는 진실이 나를 안스럽게 바라본다. 그래도 예전에는 경로사상이 있어서 노인들에게 직접적인 불손함을 드러내는 일은 드물었다. 그러나 요즈음은 젊은이들과의 갈등은 의식적으로 피한다. 결국 심한 모멸감만 느끼게 될 것이 뻔하기 때문이다.

신이 우리에게 주신 유일한 공평함은 누구나 늙고, 누구나 죽는다는 것이다. 젊은이들도 결국 늙는다. 우리가 몰랐던 것처럼 그들도 모르고 있다. 10년이 하루같이 지나간다는 것을 경험해 보지 않았기에 젊음이 영원할 것이라 착각하고 있다. 그 때가 되면 저들도 이제까지 입어 본 적이 없는 납으로 만든 옷을 입고 살아야 한다는 것을 깨닫게 될 것이다.

작년 국가 검진의 결과에서 약간의 문제가 있으니 전문의를 찾아서 재검해 보라고 했다. 병원을 찾았을 때 50대 쯤 되어 보이는 의사의 말이 "암이라 하더라도 5년은 가니까 걱정하실 필요가 없어요.다음부턴 그런 검사 받지도 마세요" 하였다. 그 말의 뜻은 앞으로 5년 정도만 더 살면 거의 다 살았는데 뭘 더 살려고 애를 쓰느냐는 것 아닌가.

속으로 화도 났지만, 어쩐지 창피한 마음도 들어서 아무런 말도 못하고 그냥 나왔다. 사실 나이가 많다는 것이 창피한 일은 아닌데, 늙었다는 열등감일까. 나중에 생각해 보니 아무 말도 못하고 나온 내 자신에게 화가 났다. 의사로서의 자질이 부족한 그 사람에게 한 마디 따끔한 말을 해 주었어야 하는데….

얼마 전에 TV에서 '고장 난 벽시계'라는 노래를 들은 적이 있다. 전 부터 많이 들었던 노래였지만 무심히 들어서 그 가사가 어떤 내용인지 몰랐다. 그런데 그 날은 이상하게도 노래가사가 귀에 들어왔다. '고장 난 벽시계는 멈춰 섰는데, 저 세월은 고장도 없네' 세월 가는 것을 안타까워하는 노래였다. 납으로 만든 옷을 입고 사는 것처럼 불편해도 더 오래 살고 싶은 것은 인지상정인 듯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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