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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성우

청주 단재초 교사

6월에는 애달픈 비목(碑木)의 곡조가 한반도에 울린다. 75년 전, 가난한 소년은 땔나무를 하던 친구랑 해방을 맞았다. 탱크가 삼팔선 위로 물러난 뒤 강원 화천 백암산 계곡에서 북을 향해 총부리를 겨누던 달빛 아래, 화약 연기를 뚫고 날아온 탄환이 가슴에 박힌다. 양지 녘에 돌무덤이 만들어지고 십자 나무가 세워졌다. 10년이 넘도록 돌보는 사람 없고 비바람만이 돌무덤을 감싸는 동안, 울어 지친 비목에 낀 이끼만이 외로운 망자를 위로해 준다.

유신의 불꽃이 끄먹거릴 때, 김민기가 만든 상록수를 양희은이 부른다. "돌보는 사람도 하나 없는데, 비바람 맞고 눈보라 쳐도 온 누리 끝까지 맘껏 푸르다." 애국가 2절의 소나무와 달리 비장함이 느껴진다. 비목은 죽은 자를 위로한 기념비였지만, 푸른 솔잎은 대자연이 가난한 자에게 준 기념비였다. 학교는 닮아야 할 삶의 모습으로 소나무를 선정하여 교목(校木)으로 삼았다. 북한 주석 김일성 숨이 얼마 남지 않았을 때는 노래패 꽃다지가 바위처럼 살자 하였다. "모진 비바람이 몰아친대도, 어떤 유혹의 손길에도 흔들림 없는 바위처럼 살자꾸나." 왜 바위처럼 사는가? 작은아들이 입학한 남고와 우리 동네 여고 교정에 서 있는 커다란 바위에는 학생이 평생 맘에 품을 덕목을 새겨 교훈(校訓)으로 삼았다.

6년 전, 핵심역량 아이디어와 함께 세종청사 14동 마당 바위에 공교육 정상화 문구가 새겨졌다. 입시와 내신의 상대평가가 이미 철갑을 두른 상태에서 선행학습만 근절하면 사교육비와 학습 부담이 줄고, 자기 주도 학습이 늘어나면서 공교육이 정상화된다고 선전하였다. 부담은 줄지 않았으며 학생 주도의 창의력 학습에 대한 비전은 '미래를 여는 행복 교육'이라는 구호 속으로 숨어버렸다. 영국이 버린 핵심역량과 미국이 실험하다만 미래교육이 교육청 마당 바위에 혁신미래학교라는 이름으로 새겨졌다. 철갑을 제거하지 않으니 흔들리지 않을 리가 없다.

지금은 수업의 의미마저 흔들리고 있다. 수업은 강의와 달리 대화를 통한 탐구과정이라 생각했다. 자율적으로 탐구하도록 동기를 유발하고, 또래 집단끼리 소통하고 협력하는 과정이 중요하다 여겼다. 최종적으로 자신만의 개성을 표현하는 만큼 성장한다고 믿었다. 그런 수업은 이젠 사라졌다. 25년 경력의 교사가 온라인 공간에서 동기유발을 하느라 교생처럼 허우적거린다. 교실에 와도 얼굴을 가리는 마스크는 서로의 감정을 빠르게 읽고 반응하지 못하게 하였다. 대면수업의 비바람과 온라인수업의 눈보라가 번갈아 몰아친다.

급식까지 흔들릴 줄 몰랐다. 코로나 정보가 쏟아졌지만 맘 카페와 쌤의 소통메신저가 따로 굴러 갔다. 국물을 주지 않는다고, 부실한 식사가 제공된다고, 더 먹게 해주지 않는다고 민원이 제기되었다. 방역 당국의 지침에 따라 최적의 급식을 설계한 맘에 비난의 화살이 꽂아지자 굳게 서 있던 다리가 흔들렸다. 여린 양심은 비바람 앞에 쉽게 무너진다. 기초 부진과 생활 부적응에 항상 신경을 썼던 마음은, 단 한 명의 학부모 민원에도 반응할 준비가 되어 있다. 그 민원이 학교와의 합리적 소통으로 다가오지 않고 교육청과 청와대를 통해 내리꽂으려 하면 열정의 날개를 접고 떠날 곳을 물색한다. 총 맞은 것처럼 쓰러지는 교사를 옆에 두고 있는 동료의 맘도 끝없이 추락한다.

불통의 비바람은 산 자를 죽은 자처럼 만든다. 백지영이 노래한 대로 정신은 없고 웃음만 나온다. 삼부인의 환웅이 태백의 신시학교 바위에 새겨놓은 글자가 우리 마음에 새겨질 때까지는 외롭고 그리운 비목이라도 붙들고 있어야 한다. 한두 가락 붙잡은 곡조에 의지하며 두 다리에 힘을 준다. ♬깨치고 나아가~ 끝내~ 이루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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