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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우연

시인

빈 박스와 가득 찬 손수레

해거름

전선 위에 벗어 논

직박구리 한 켤레는

폐지 실은 손수레를 밀던

바닥이었습니다

가난한 왼짝이 날아가고

그녀 살던 쪽방 건너

오른짝이 우두커니 앉아 있습니다

반 열린 대문 안에

매화꽃이 막 피기 시작하였고

밀다 만

리어카 손잡이 같은

전선 위에는

어느새

밑창 닳은 헌 신발들이

저렇게나 많이 날아와 걸려 있습니다

해가 기울고

오른짝 신발이

푸르르 족적을 털고

붉게 녹슨 먼 하늘로 날아갑니다

시 <새 신발> 전문

최근 폐지 가격이 하락하고 있다. 지난해 말 1㎏당 120원에서 150원 정도 하던 것이 85원 정도로 하락했다고 한다. 고물상 매입 가격도 폭락해 60원 이하라고 한다. 상점 밖에 내놓기 무섭게 사라지던 빈 박스가 근래 눈에 많이 띄는 이유인가 보다.

폐지의 가격 하락은 폐지 수거로 생계를 잇는 분들의 어려움뿐만 아니라 환경문제를 발생시킬 수 있다. 납작하게 하여 차곡차곡 손수레에 쌓인 폐지. 손수레에 가득 찬 폐지의 무게를 최대 35㎏ 정도로 볼 때 폐지 가격은 2천100원을 넘지 못한다. 하루 한 끼 식사비로도 부족한 금액이다.

우리나라 폐지 수거 재활용에 노인들의 참여율이 20.6% 정도를 차지한다는 통계수치를 고려할 때, 폐지 가격 하락은 노인들의 생계를 위태롭게 하고 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이렇게 폐지 가격이 하락한 이유는 경제 침체 때문이라고 한다. 경기 불황으로 포장 등에 쓰이는 종이 수요가 급격히 줄어들었다. 게다가 우리나라 폐지를 수입하던 동남아와 중국의 폐지 수입량이 감소하면서 자연히 폐지 재고가 쌓이게 된 것이다.

재고 물량이 늘면서 폐지 압축상과 제지 공장에 폐지 재고가 늘고 있다. 그러다 보니 폐지 재고를 보관할 창고 확보 문제는 여러 가지 환경문제까지 일으키고 있다.

국내외 경기 상황이 둔화하는 추세라 당분간 이런 현상은 지속될 것으로 보인다. 중국의 폐지 수입 중단으로 발생했던 2018년 폐지 대란이 다시 오는 것인지 걱정도 된다. 다각적인 면에서 대비책이 시급해 보인다.

폐지 줍는 분들을 자주 본다. 주로 노인분들이다. 폐지 가격이 폭락하여 수입이 급감했음에도 폐지를 줍는 노인분들은 줄지 않았다.

자신의 키보다도 높이 폐지를 싣고 좁고 경사진 골목길을 다니는 모습이 여간 위태로운 것이 아니다. 힘에 부쳐 멈추었다 가기를 반복하기도 하고, 지나가는 오토바이나 차량이 손수레를 아슬아슬하게 비껴가기도 한다.

새벽녘에 손수레를 끄는 분들도 많다. 밤늦게 영업을 마친 상점에서 내놓은 빈 박스를 수거하기 위해 어둡고 위험한 상점 골목길을 다니는 것이다.

친정집 반지하에 살던 할머니께서도 폐지 줍는 일을 하셨다. 아들이 서울 어디에 산다는 얘기를 언젠가 지나가는 말로 했던 것 같다. 할머니는 일 년 열두 달 하루도 빠지지 않고 새벽 3시면 손수레를 끌고 폐지를 주우러 나갔다.

산더미처럼 쌓은 폐지를 끌고 날이 환해져서야 돌아왔다. 봐 두었던 폐지를 먼저 가져가 버린 이웃 할아버지에게 악담을 쏟아 붓는 목소리가 먼저 들렸다. 그 작은 체구로 어떻게 손수레를 끌로 왔는지 차력사가 따로 없다 싶었다.

그렇게 폐지를 주워 모은 돈으로 비싼 옷 한 벌, 외식 한 번 안 하시던 분이었다. 그러던 그분이 언젠가부터 보이지 않았다. 마음 한편이 아프고 허무한 생각이 들었다.

시 <새 신발>은 그때의 심정을 적은 글이다. 내리는 비를 맞으면서 혼자 앉아 있는 새 한 마리. 그날 전깃줄에 날아와 앉아 있던 한 마리 직박구리는 마치 그분이 늘 신고 다니던 작고 낡았던 신발 한 짝 같았다.

당분간 폐지 가격은 내림세다. 그러나 물가는 오르고 있고, 공공요금도 오르고 있다. 이런 시국일수록 소외계층의 지원 정책이 적절하게 시행되어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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