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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웹출고시간2023.04.25 16:15:47
  • 최종수정2023.04.25 16:15:47

조우연

시인

소문 무성하던

표지도 속지도 빨간 만첩萬牒의 홍매가 출판되었다

오, 이런 뜨거운 내통!

만 장의 편지에는

가히 사무치는 문장들이 절창이다

발간되기 무섭게 베스트셀러다

고려 말 조선 개국을 두고

원수 집안이 된 사내를 사모한 여인의 연서란 추측이 있고

결혼한 사내를 사랑한 개화기 신여성이 썼을 거라 믿기도 했다

누가 누구에게 쓴 편지인지는 정확하지 않았으나

그럴수록 붉은 연서의 구독률은 올랐다

한 牒 한 牒

붉은 염료를 먹이고

햇살 고운 날 바람에 펼쳐 말린 후

노란 비단실로 수를 놓고

총총 적어 내려갔을 활자를 생각하면

지는 꽃잎을 쓸어 모아

수만 개의 그리움을

적고 또 적어 보내고 싶은

얼굴도 마음도 말도 못 하게 붉어지는

봄날 저녁

한 차례 비 오고 나면

절판이 임박하다 하니

아직 못 읽었다면 서두르는 게 좋다

마지막 장에는

끝내 연서를 받지 못하고 죽은 그가

동박새로 환생해

그제야 편지를 읽느라

만첩홍매를 찾아와 운다는 설화가

짤막이 소개되어 있다

-시 「만첩홍매」 전문

홍매는 피었다 벌써 졌다. 매화 중에서 꽃잎이 여러 장 겹쳐 핀 매화를 만첩홍매(萬疊紅梅)라고 한다. 나는 매화의 꽃잎을 편지에 비유에 만첩홍매(萬牒紅梅)로 고쳐 시를 써 보았다.

경제위기, 기후위기, 평화위기 등 시국이 온통 위기인 것 같아서 여기저기 피어나는 꽃을 보고도 마음이 영 어수선하다. 꽃 보는 저녁의 서정이 꽃 같기만 했으면 좋을 텐데 말이다.

그럼에도 꽃 피는 봄밤에는 연애를 하든 안 하든 설렌다. 꽃향기를 맡으며 누군가를 생각하든 안 하든 그저 설렌다. 그저 꽃이 피어 봄이 좋고 밤이 좋다.

매화야 벌써 피었다 졌지만 근래 봄 날씨가 수상하다. 지나치게 봄 기온이 상승하여 모기가 벌써 날아다니는 것이 보였고, 음식물에서 여름에나 걱정하던 식중독균이 검출되기도 했다. 제주 농가에서는 이상기온 탓에 새로운 해충이 발견되었다는 소식도 들었다.

반면에 밤사이 저온 현상으로 인한 피해 소식도 들렸다. 지인들의 페이스북에서 감자 싹이 얼었다는 안타까운 소식을 읽기도 했으며, 새벽에 내린 서리의 사진도 종종 보았다.

꽃들은 피고 있는데, 어찌 된 영문인지 덥고 춥기도 하여 쉽사리 겨울옷을 벗어 옷장에 넣어 놓을 수가 없을 정도로 날씨는 풀리지 않고 있는 듯하다. 계절에 바뀌고 그 계절의 꽃들은 만개하고 열매를 맺으려 애쓰고 있는데, 날씨가 예전 같지 않은 것은 이상기후현상 때문일 것이다.

만첩홍매가 피고 지는 동안에도 북극의 빙하는 여전히 녹아내렸을 것이고 다가올 여름에는 얼마나 더 많이 녹아버릴 것인가. 씁쓸하고 염려스러운 마음이 꽃 진 자리에 뚝뚝 떨어진다.

아름다운 꽃을 피우는 지구별을 지켜주자는 외침이 곳곳에서 들리고 있다. 가정에서 작은 실천들이 모이는 것도 중요하지만 큰 줄기의 생태친화적인 정부 정책이 수립되고 시행되는 것이 큰 효과를 거둘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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