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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우연

시인

덤. 덤은 제 값어치 외에 노력이나 대가 없이 조금 더 얹어 주는 일 또는 그런 물건을 이르는 말이다. 종종 우리는 덤을 얻게 되었을 때, 제 값어치를 준 물건을 얻을 때보다 훨씬 큰 만족감을 느끼곤 한다.

스토아학파 철학자이자 정치가였던 세네카는 하루를 '루크룸'으로 여겼다고 한다. 라틴어로 '루크룸 lucrum'은 '예상치 못한 이윤, 이자, 로또'라고 한다. 그러니까 세네카는 아침에 일어나 맞는 하루를 즐거운 덤으로, 즉 뜻밖에 받은 선물로 여겼다는 것이다.

매일 반복되는 하루를 덤으로 생각하고 사는 사람의 하루는 그렇지 않은 사람의 하루와는 확연히 다를 것이 분명하다. 그에게 그 하루는 이루 말할 수 없이 소중하며 놀라울 테고, 최선을 다해 그 덤을 살 것이기 때문이다. 덤에 관해 써서 모 잡지에 기고했던 시가 있다.

시대를 팔아먹는 작가가 있었고

빛을 팔아 보려다

미친놈 소리를 들은 화가가 있었다

사랑을 팔다 부도가 나

현해탄에 몸을 던진 가수도 있었다

재고의 사연은 어디에나 쌓여 있었다

판다는 것은

산다는 것

살아보겠다는 것

버스를 기다리며

대파 한 뭉치를 파는 노년을 바라본다

그 거상에게서 나는

묵직한 철학을 샀다

시든 대파는



-시 「덤」전문

몇 년 전 청주에 사는 내가 충주로 발령이 나 매일 시외버스를 타고 출퇴근을 하게 되었다. 퇴근하고 버스를 타러 충주시외버스터미널로 가다 보면 근처 횡단보도 길가에서 채마를 팔던 할머니를 만나곤 했다. 버젓한 노점을 가진 것이 아니라 작은 텃밭에서 소일로 길렀을 법한 채소 몇 가지를 길바닥에 늘여놓고 팔았는데 내가 지나가는 저녁 시간에는 그중 많은 채소가 시들해져 있었다.

얼갈이배추, 아욱, 대파, 쪽파, 가지, 조선호박, 호박잎, 상추, 호랑이콩, 늙은 오이 등. 늙을 대로 늙어버리거나 단단해진 늙은 오이나 콩만 저녁까지 짱짱했다. 계절 따라 파는 채소도 조금씩 달라졌는데 잎채소들은 대부분 시들했다.

버스에 오르면 청주까지 오는데 1시간 30분이 더 걸렸지만 시든 채소를 부지런히 사다가 저녁을 지어 먹었다. 시든 채소를 물에 씻어 소쿠리에 얹어 놓고 빨래를 갰다. 다 개 놓고 가보면 언제 시들었냐는 듯 채소들은 밭에서 막 뜯어온 것처럼 파릇파릇 숨이 살아나 있었다.

마치 시든 채소 앞에서 졸고 계시다가도 내가 "할머니, 이거 얼마예요? 네, 이거랑 이거 다 주세요." 하면 금방 잠이 싹 달아난 초롱초롱한 눈으로 연실 웃으며 채소를 담아주시던 할머니처럼 말이다.

그러면서 할머니는 "이래 봬도 가져가서 물에 씻으면 금방 씽씽해져." 하면서 시든 파를 덤으로 주시곤 하셨다. 대파는 덤이었는데도 요리에 꼭 필요한 그 대파가 요긴하여 어찌나 좋았는지 모른다. 덤으로 파를 주면서 시든 채소를 파신 할머니도, 덤으로 파를 받아 저녁 밥상을 차리던 나도 모두 덤으로 행복했다.

덤의 힘은 그런 것이다. 제값으로 매길 수 없는 것의 힘. 뜻밖의 선물이라서 벅차오르는 기쁨. 스토아학파 철학자의 생각을 빌리지 않더라도 우리에게 주어지는 하루하루와 매일 익숙하게 만나는 사람과 나무와 하늘과 꽃과 바람을 덤이라 생각한다면 우리도 세네카처럼 삶에 감사하며 잘 살아갈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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