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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우연

시인

면목동 잠수정


밀린 세를 받으러 갔다

반지하 셋방이

잠수정처럼 어둠에 반쯤 잠겨 있었고

길바닥이 턱밑까지 차올라 있었다

문창살에 매달린 불빛이

제 몸을 채 썰어 도주를 하고 있는 사이

믹스커피 냄새가

천장을 향해 자라난 곰팡이 냄새와

난처하게 섞이고 있었다

반지하 수압에

가자미처럼 납작해진 사람들

일자리를 잃고

더 깊이 모래 속으로 박히고 있는 남자

건조대에 널린 아이들에게서

물에 불린 미역 냄새가 났다

이거 정말

면목 없습니다

면목 없는 남자는

되돌아가는 주인 여자를 향해

찬 파도를 맞으며

오래 문을 열고 서 있었다

여자가 올라가는 계단을 비추던

불빛을 거두고 문이 닫혔을 때

출렁,

잠시 잠수정이 수면 위로 부상했다 가라앉았다

다는 아니겠지만 서울로 유학을 가 본 사람들이나 상경하여 정착한 사람들은 저렴한 서울의 반지하에 살아본 경험이 있을 것이다. 나 또한 그렇다.

작은 창문으로 비춰 들어오는 햇빛만으로는 늘 부족해 낮에도 전등을 켜놓았었다. 지나가는 발소리, 길고양이 울음소리, 전화 통화를 하는 누군가의 사생활을 풍겨오는 담배 냄새와 함께 늘상 듣고 살았다. 늦은 밤 가끔 술 취한 사람의 볼일 보는 소리와 애인끼리 울고불고 싸우는 소리도 들어야 했다.

「면목동 잠수정」은 반지하에 살던 생각이 나 쓴 시이다. 대문을 들어가 계단을 더 내려가야 하는, 반쯤 지하에 잠긴 반지하 주택은 마치 물속에 잠겼다가 잠시 떠오른 잠수정처럼 느껴지곤 했다.

반지하는 햇살이 잘 비추지 않고 습해서 한겨울을 빼고는 내내 곰팡이하고의 전쟁을 치른다. 그래서 눅눅하고 축축한 특유의 냄새가 날 수밖에 없다.

영화 기생충을 보면 반지하에 사는 사람들이 겪는 에피소드와 주택의 특징을 잘 보여준다. 폭우가 내리자 지대가 낮은 반지하는 물에 잠기고, 만취한 남자가 지퍼를 열고 창문 앞에다 소변을 보고, 부잣집 부부는 반지하 가족에게서 나는 특유의 공통적인 체취에 대해 말하는 장면이 떠오른다.

얼마 전 기록적인 폭우로 서울의 반지하 주택에 살던 일가족이 침수로 인해 사망했다는 안타까운 소식을 들었다. 그러자 서울 시장은 앞으로 20년 동안 지하·반지하 거주 주민들을 공공임대주택으로 이주시키고, 이를 위해 매달 20만 원씩 월세를 보조하는 특정 바우처도 신설한다는 방침을 발표했다. 경기도는 건축 허가 시 반지하 주택을 억제하고, 침수 지역의 방재시설 강화 대책을 추진하겠다고 했다.

서울과 경기도에는 급격한 도시화에 따른 주택난을 해소하고자 저렴한 반지하 주택 구조가 많다. 그러나 기후변화로 인해 자주 찾아올 폭우에 취약한 것은 분명하므로 이러한 정책들이 실효성을 거두길 바란다.

외신이 반지하를 우리 말 발음을 그대로 영어로 표기하여 'banjiha'라고 소개하며 영화 기생충 속 장면을 함께 소개한 것을 보면, 반지하 구조는 우리나라의 사회경제적 양극화를 반영하는 독특한 주택구조인 것이 분명하다.

반지하에 사는 내내 나는 음지식물이 떠올랐다. 감자처럼 내 몸 어딘가에서 흰 싹 눈이 돋는 것만 같았다. 전등 불빛만으로는 채울 수 없던 그늘에 햇빛이 늘 그리웠다. 빨래를 널러 옥상에 올라가면 그 눈 부신 햇살과 바람을 한 보따리씩 싸서 집으로 가져오고 싶었다.

보름께에도 누런 가로등만 비스듬히 들어올 뿐 창밖으로 보름달을 볼 수 없었다. 화분 선물을 받게 되면 그늘진 집 안에서 잘 자랄지가 항상 걱정이었다. 심지어 그늘에서 자라는 음지식물조차도 햇빛은 필요하다는 것을 그때 알았다.

그늘이 많은 집 반지하. 사람이든 식물이든 바람이 살랑이고 따듯한 햇살이 비추는 곳에 살아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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