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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웹출고시간2021.10.21 15:37:23
  • 최종수정2021.10.21 15:37:23

안남영

'까칠한 우리말' 저자

둘 이상 합쳐진 단어가 있다. 따로 쓰이던 말끼리 붙어서 생기면 합성어이고, 홀로는 쓰이지 못하는―아닌 것도 있지만― 접사와 결합해 만들어지면 파생어라고 한다. 어휘는 파생어 형태로 무진장 늘어난다. 우리말도 그렇다. 별 관심거리가 못되겠지만 가장 많이 쓰이는 접미사는 뭘까? 아마 '-하다'가 첫째라면 다음은 '-적'이 아닐까 싶다.

문득 그 '-적(的)'이 들어간 단어가 마뜩잖다. '-적'이 하도 많이, 혹은 분에 넘치게 쓰여서다. '재미적 요소, 데이터적 손실, 아가페적 헌신, 스포츠적 성공'처럼 요즘 '-적'은 어줍거나 말거나 날로 그 생산성을 자랑한다. 이건 일본에서 영어의 어미인 '-ic,-tic'을 음차해서 쓰던 거란다. 'romantic(낭만적)'이 그 예다. 우리에겐 19C까지만 해도 없던 건데, 일본에서 들어왔다. 이오덕 선생에 따르면 최남선이 '소년' 창간호에 처음 썼다고 한다. 그는 30년 전쯤 '우리글 바로쓰기'에서 그 남용을 개탄했다.

"우리 반원이 인간적으로 친밀적으로 생활하려면 안면적으로 알아야 한다. 그래서 협조적인 정신을 발휘해서 모든 것을 타협적으로 상의적으로 해나가면…" 이어령 선생은 50여 년 전 쓴 한 수필에서 '-적'을 마구 쓰는 이웃의 말버릇을 이렇게 전했다.

원래 접미사 '-적'은 '~와 같은 성질이 있는', '~(차원)의'라는 뜻을 지닌다. '-스럽다', '-롭다', '-답다'와 비슷하다. 때로 요긴하겠지만 이를 말끝마다 남발하는 건 일종의 허세다. 마음적(?)으로 한자어를 통해 뭔가 묵직해 보이는 배움의 흔적을 드러내고 싶은 것이다. 소설 '완장'의 주인공이 "오순적도순적으로…"라고 말하는 대목이 해학적으로 들리는 이유와 같다. 사실 필자도 졸저 '까칠한 우리말'에서 접미사를 다루면서 '문제적 접미사'란 제목을 호기롭게 써 봤다.

'소모적 논쟁'이니, '미온적 태도'니 하고 말하면 '쓸데없는 ~', '미지근한 ~'표현보다 유식해 뵈는 게 언어 현실이다. 계절적 요인, 언어적 유희, 책임적 조치, 반대적 입장 등 이런 건 다 '-적'을 없애거나 '-의'로 바꿀 수 있다는 점에서 과시적(?)이다. 물론 사용자마다 느끼는 뉘앙스가 다르기에 이런 지적이 지나치거나 좀스러워 보일 수도 있겠다.

모름지기 지나침이 문제다. 중용의 가르침이 아니던가. 치우침이 없고 변하지 않는 중용, 그 적정(適正)함의 가치는 결코 비겁한 게 아닐 텐데 사람들은 선명해야 한다는 강박에 쉬이 극단으로 치닫는다. 정치에서는 중도가 배척당하고 억압을 받는 모양새다. 언제부턴가 '민주적' 하면 '적대적'인 생리를 떠올리게 되었다. 합리적 의심이 부당한 매도로 반박되고, 민주적 의사 결정이 다수의 횡포로 보일 때가 있고 보면 중용의 가치, '적(適)을 아는 분수'는 여간해서 건사하기 어려워 보인다.

하긴 누군가의 혁신이 누군가에게는 파괴적(?)이 될 수 있어서 적(適)은 고사하고 적(敵)으로 만날 일을 피해 가야 하는 세상이다. 대화 자리에서 정치 얘기는 요즘 금기가 돼 버렸다. '민주적 사회'에서 '민주적 주장'들이 어쩌면 민주적 공존을 말아먹는 중인가 싶다. -적'이 '-다움'을 잃고 허접해져서인지, 원래 너덜너덜한 게 민주주의이어서인지 모르겠다. 아무튼 '-적'의 본뜻이 무색해졌다. 민주적임을 자랑할수록 독선적이어서 적을 배태하는 상황이다. 강준만 교수가 시국을 '증오의 재생산 체제'라고 일갈한 것도 이런 맥락이다.

민주주의는 인권존중에서 출발한다. 인권의식은 양심과 배려 양쪽에서 작동한다. 남에겐 따뜻한 봄바람 같지만 자신에겐 추상같이 엄격한 태도, 즉 청와대 비서실 훈교라는 '춘풍추상(春風秋霜)' 같은 거다. 이런 마음 자세가 충만한 사회라면 법치 아니라도 민주주의를 완성할 수 있다. 20일 대규모 집회를 열어 코로나 적(敵)쯤은 우습게 여긴 집단에게선 '몰풍스러운 민주적'을 목격한다.

정치와 미술 평론가인 전인권은 "민주발전의 가장 결정적인 순간은 '관용의 시대'를 통과할 때"라고 했다. 남을 추궁하고 공격하는 데 준비적(?)인, 그래서 늘 적대적인 사람들이 넘쳐나는 판에 관용의 시대는 과연 언제쯤 올까?

민(民)이란 공동체에는 '너'와 '나'가 들어있다. 민주적(民主的)이려면 의당 나를 적(適)히 다스리고 너와 함께 '오순적도순적'이어야 할 터, 그러지 않으면 '민주적(民主敵)'이 되고 말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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