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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웹출고시간2020.01.30 17:11:43
  • 최종수정2020.01.30 17:11:43

안남영

전 언론인

외국인에게 한국어를 가르칠 때 어미와 조사에 이르면 참 곤혹스럽다. 그들에게 생소한 문법적 기능인 데다 오밀조밀한 뉘앙스 탓에 설명과 이해 양쪽 다 고문 수준이다. 중급쯤 되면 뒷말의 목적이나 원인을 뜻하는 '-느라고'를 배운다. '부정적 결과의 변명용'이란 꼭 집은 설명이라야 이해가 빠르다. 그렇다고 외국인이 단박에 '-아(어)서', '~ 바람에'와 구별해서 쓰긴 어렵다. 어쩌면 한국어의 '깊이'인 양 싶다.

우리말에만 있는 요 어미의 존재가 새삼스럽다. 온갖 변명이 미세먼지처럼 세상을 덮고 있기에 말이다. 혹 한국인에게 습관적 변명의 유전자라도 있는 것일까· 추론컨대 근거 없는 가설은 아니리라 본다.

오래도록 계급사회를 유지해 오는 동안 하층민에겐 일상적인 수탈과 핍박 아래 보신하려면, 양반으로선 체통에 금가지 않으려면 그 '변명의 재주'가 요긴했다. 그것은 책임과 비난을 회피하기 위해 관대함을 기대하거나 미안함을 덜어내려는 수작이라서 대개 거짓말에 물들어 있게 마련이다. 일종의 본능적 방어 기제다. 10개가 넘는 핑계 관련 속담이 반증이랄 수도 있겠다. 선각자의 갈파에도, 통계에도 그 습성이 잡히고 보면 참 씁쓸하다.

양사언의 시조를 보자. '태산이 높다 하되 (중략) 사람이 제 아니 오르고 뫼만 높다 하더라'의 주제를 필자는 변명으로 이해한다. 도산 선생이 "죽더라도 거짓이 없어라"란 말을 무시로 외친 데는 다 이유가 있었다. 이광수는 『민족개조론』에서 거짓말에 능한 민족성을 언급했거니와 나중에 "실력을 기르는 게 우선"이라는 말로 자신의 친일 행보를 변명했다. 100년 전 일본은 "평균적 한국인이 거짓말쟁이라는 건 사실"이라고 단정하고 멸시를 주저하지 않았다. 몇 년 전 사기범죄에서 한국이 전 세계 1위라는 기사가 좍 퍼진 적도 있다. 이는 근거 불명 시비가 뒤따르긴 했지만, 사기·무고·위증 같은 3대 거짓말 범죄의 통계야말로 우리를 부끄럽게 만든다. 대검 집계 결과를 찾아보니 2018년 사기범죄는 27만8천여 건으로 10년 전 22만3천여 건보다 20%가량 늘었다. 어떤 자료를 보면 무고와 위증이 일본 대비 400배 이상에 달한다. 인구비례를 감안한 숫자는 생각조차 꺼려진다. 작년에 이런 행태에 냉정한 자성을 촉구하던 어느 전직 교수는 반민족주의자로 내몰리기도 했다. 아무튼 거짓이 풍미하는데야 변명인들 투명하랴.

우리만 그런 걸까? "승자는 늘 계획이 있지만 패자는 늘 변명을 갖고 있다"라는 유대인 금언으로 미뤄 무릇 변명이 만백성에게 필연인 듯 믿고 싶다. 기 소르망의 『중국이라는 거짓말』이라는 책 제목이 고소한 건 필자뿐 아니리라. 하긴 삼국지에서 조조가 자신의 피신을 돕던 여백사 일가족을 몰살한 까닭을 묻는 진궁에게 "내가 천하(사람)를 버릴지언정 천하가 나를 저버리게 두진 않겠다"라고 답했다는 변명의 압권도 있다. 영화 <실미도>의 명대사 "비겁한 변명입니다"는 변명이 예술이 된 케이스랄까. 2차세계대전 후 신생 독립국에 지원된 원조액이 약 120조 달러에 이르지만, 나라 발전의 마중물이 못 된 것은 부조리 때문이란다. 원조효과성에 대한 반성과 개선을 위해 나온 2005년 파리선언도 따지고 보면 무수한 거짓과 변명에 대한 반작용이었다.

측은한 게 변명이지만 실은 구차하고 뻔뻔하거나 간교하기 일쑤다. 그게 누구에게나 항상 준비돼 있는 인간다움이겠으나, 근거로써 설득력을 가지면 해명이고 소명이다. 그러나 '-느라(고)', '~ 탓에' 등 핑계형 언사가 판치는 세상인지라, 어떤 지점에선 진실은 아랑곳없고 의혹만 쌓여간다. 바야흐로 '변명무쌍'이요, '제행불신(諸行不信)'의 시대다. 방어적 핑계 유전자가 공격적인 남 탓이나, 불신으로 진화한 세태다.

공자는 정치의 요체로 믿음이 식량, 군사보다 중요하다고 했다. 무신불립(無信不立)이다. 선거철을 맞아 믿음을 저울질할 게 많아져서 걱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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