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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는 척하기와 알은척하기-'척자생존'과 '잊힐 권리

사잇길

  • 웹출고시간2020.02.27 17:28:57
  • 최종수정2020.02.27 17:28:57

안남영

전 HCN충북방송 대표이사

"아는 것이 힘이다." 속담이 아니라 베이컨의 명언이다. 고교 때 국어책에서 봤다. 거기 등장한 베이컨은 이런 대목도 남겼다. "글을 별로 쓰지 않는 사람은 기억력이 좋아야 하고 대화가 적은 사람은 재치가 있어야 하며, 책을 잘 읽지 않는 사람은 모르는 것도 아는 척할 줄 알아야 한다." 평소 독서 강박을 신문읽기로 퉁 칠 수 있도록 해준 고마운 문장이기도 하다.

기자 시절, 들으면 기분 묘해지는 말이 있었다. "기자니까 잘 아시겠지만…"이라는 취재원의 음험한 말문이다. 으쓱해짐도 잠시, 뭔가 좀 아는 척해야 하는 부담이 쫙 밀려왔던 거다.

알아야 할 게 참 많은 지식정보사회다. 현명한 처세의 본질이 여기 함축돼 있다. 지식과 정보가 곧 자산이고 권력이요, 생존의 방편, 생활의 지혜임을 시사한다. 아는 척할 줄 알아야 살아남는다―'척자생존(-者生存)'이다.

아는 척하는 게 마치 필수과목처럼 회자된다. 서점가에 역사·철학·경제 등에 관해 '아는 척하기'시리즈가 나와 있을 정도다. 클래식이나 오페라에 대한 책도 있는데, 그 타깃이 짐작된다. 신조어도 이수할 과목이다. '알쓸신잡'이니 '티엠아이'(TMI·Too Much Information)니 하는 것도 정보 과잉에 침놓는 말장난이지만 "알아서 남 주나"란 저의 속에 생겨났을 것이다. 2020년엔 '오팔세대'(OPAL·old people with active life·활동적으로 살아가는 장년)라는 말쯤 주워섬겨야 한다니, 아는 척하기도 참 피곤한 지경이다.

다행스럽게도 인터넷 덕분에 아는 척하기가 어렵지 않다. 하지만 조심할 일이다. 집단지성의 대명사 위키피디아의 경우, 거기 2만여 항목을 집필·편집했다는 교수가 젊은 백수였다는 사실이 드러나서 신뢰에 금이 갔다. 가짜뉴스도 판친다. 어설피 나대다가는 즉석 망신도 각오해야 한다.

곡학아세, 견강부회도 척자생존의 일종인가 보다. 청주의 한 정치인은 "중국은 침략 DNA가 없다."라고 해서 구설에 오른 적 있다. 당나라의 삼국통일 개입 이후 우리를 침범한 건 주변 북방세력일 뿐이라는 모 교수 주장과의 연관성은 모르겠으되 불편하다. 시진핑이 트럼프에게 "한국은 오랜 기간 중국의 속국이었다"라고 말했다는 사실을 상기하자면, 식자가 우환이다.

인터넷 뉴스의 댓글을 보자. '자기성찰 지능' 떨어지는 사람들의 아무 말 대잔치가 가관이다. 얕은 지식 허튼 정보로 도나캐나 물고 뜯느라 난리다. 익명성에 숨은 아는 척하기다. 하긴 이렇게 꼬집는 것조차 아는 척이니….

인터넷 포털이 지식욕을 채워주고 있다면 사회관계망서비스(SNS)는 현대인의 '알은척하기'(≠아는 척하기) 욕구를 한껏 자극한다. 『여씨춘추』의 편찬자 여불위나 조선의 전설적 상인 임상옥도 "사람 장사가 가장 많이 남는 장사"라고 했던가· 잘 알지도 못하는 사람과 친구맺기가 성행하고 자신 알리기에 너도나도 빠져든다. '대인관계 지능'이 높은 사람들에서 두드러진 모습인데 누구도 탓할 일이 아니다. 자기피알(PR) 시대에 남에게 관심을 끌거나 두는 것 하나하나가 추억의 책장이 될 테니 말이다. 더구나 정치인이나 장사꾼에겐 알은척이 생업이나 다름없고 경쟁 요소라서 얼마든지 장려돼 마땅하다. 문제는 알은척이 허례와 통정하고 있다는 것이다.

아는 척하기와 알은척하기는 어쩌면 능력이고 매너인 것이다. 하지만 매뉴얼이 있을 리 없다. 지나치면 병이고 현학이고, "재수 없다"란 소리 듣기 딱 좋다. 자칫 꼰대라거나 정치적이란 비아냥이 기다리기 일쑤다.

"아는 것을 안다고 하고 모르는 것을 모른다고 하는 것, 그것이 곧 앎이다." 공자의 말씀이다. 애들 학습에 필요하다는 '메타인지'의 중요성을 일찍이 설파하신 셈인데, 그저 고개가 끄덕여진다.

나이 들면 알은척이 문득 숙제가 된다. 카톡방에서도 자유롭지 않다. 번다함에 지친 타성과 뚝 떨어진 기억력 때문이리라. 그 답이 '인맥다이어트'는 아니더라도 '잊힐 권리'에 기웃거리는 이가 점점 많아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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