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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웹출고시간2020.10.22 16:32:43
  • 최종수정2020.10.22 16:32:43

안남영

전 현대HCN 대표이사

중학교 때 운동화 끈 매는 법을 새로 배우고는 기뻐했던 적이 있다. 전에는 감치기 비슷하게 매서 석 삼(三)자가 드러났는데 새발뜨기 식으로 매니까 X자 모양의 맵시가 돋보였던 거다. 요즘은 끈이 길게 나와 매듭이 치렁치렁 망측하다. 그래서 엊그제 새로운 끈매기가 있다는 걸 알고 시도해 봤더니 정말 십상이다. 이런 게 어쩌면 '소확행'이 아닐까.

봄이야 볕과 함께 반길 것이 많다. 그러나 가을이면 뭔가 쓸쓸함을 달래 줄 게 필요하기에 소확행의 의미가 새삼스럽다. 주책없게도 종종 그런 단상이 옆으로 번질라치면 인생관과 마주친다. 그저 내맡기거나 적당히 즐길 것이냐, 아니면 아등바등 치열하게 목표를 향할 것이냐의 선택 문제다. 즉 인생을 얼마나 대수롭게 보느냐다.

얼마 전 읽은 책이 생각났다. 제목부터가 도발적이다. 『하마터면 열심히 살 뻔했다』인데 세상의 꿈꾸는 자, 노력하는 자를 비웃는 투다. 저자는 삽화가로 6년가량 일하다 '퇴사의 맛'을 꿀맛에 비유하며 백수를 자원한 30대다. 방황을 맘껏 즐기겠다는 당찬 용기가 멋있어 보였다. 처자식을 위해 워라밸은 생각도 못한 채 놀기는 고사하고 맘 편할 날 없는, 돈 때문에 밥벌이에 나선 이 땅의 직업인들에게 보내는 메시지가 하도 통렬해서 불편하기도 했다.하지만 "속세의 옷을 벗으니 시원하구나"라는 문구를 개성적 삽화와 함께 실어놓은 페이지에서 그의 자칭 현명한 포기는 개똥철학 수준을 한참 넘어선 듯하다. 50편의 에세이 중 <노력이 우리를 배신할 때>에서 책을 쓴 동기가 읽히거니와, 한번쯤은 내 맘대로 살고 싶었다는 그는 "노력의 시대는 갔다"라고 과감히 선언했다. 더 이상 사회가 정해 놓은 정답을 향해 가지 않겠다는 그의 다짐―물론 후회하지 않으려는 감상적 멘트도 있지만―은 사실 오늘날 거부할 수 없는 명제다

아무튼 이 책은 수많은 자기계발서를 무릎 꿇렸다. 꿈, 성공, 도전, 목표, 시간관리 등 숨 가쁘게 살지 않으면 안 될 것 같은 가르침 다 뭐냐는 거다. 오늘 걷지 않으면 내일은 뛰어야 한다느니, 잠을 자면 꿈을 꾸지만 공부하면 꿈을 이룬다느니, 장애물은 승자에겐 도전이 되지만 패자에겐 변명이 된다고 일깨우거나 "실패한 것이 죄가 아니라 하지 않은 것이 죄다", "시간을 지배하라"는 따위의 아포리즘이 모두 맥없이 무색해지는 것이다.

여기서 생각난 것은 노자의 무위자연(無爲自然) 또는 흐르고 도는 물처럼 사는 게 최고라는 상선약수(上善若水)다. 윤선도의 "두어라 이 다섯밖에 더하여 무엇하리"('오우가' 중)도 떠오르고, 소확행의 옛말이 안빈낙도(安貧樂道)인가 싶기도 했다.

그래도 역사는 도전과 꿈에 부푼 인물들이 창조해 왔다. 바른 목표와 노력은 그래서 앞으로도 숭상되어야 한다. 그러나 틈바구니에서 희망과 용기를 잠식당하는 영혼들이 있으니, 초연한 태도와 자기 위안의 기술만으로도 풍진을 이겨내기 쉽지 않은 세태다.

살다가 누구나 선택의 기로에서 헤매게 되는 이유다. 사실 짬뽕과 짜장을 고르는 것부터 크게는 문과와 이과 중 진로에 관한 것까지, 종류는 천태만상이요 깊이와 폭은 천양지차, 광대무변이다. 모두 호락호락하다면 싱거운 인생이다.

인생의 정도는 과연 자강불식일까 안분지족일까? 여긴 정답이 있을 리 없고 오직 선택만이 있을 뿐이다. 누군 열심가로 살고 누군 자연인으로 살든 말이다. 하지만 선택에는 만족 여부와 성패 같은 결과 때문에 고충이 따라다닌다. 불행히도 선택을 도박하듯 하고, 내 선택만이 정답이라는 사람들도 많다.

장자는 '냐냐주의'가 아니라 '도도주의'를 강조했다 한다. '이거냐 저거냐' 대신 '이것도 저것도'라는 유연한 선택, 즉 "이럴 수도 있구나"란 깨달음의 중요성을 설파했다는 것이다. 열정과 무욕 사이 정답이 없더라도, 도덕과 사회통념을 벗어버리고 싶더라도 우리의 인생관에 거창할 것까진 없지만 디딜판은 필요하다. 그게 호기심이라면 어떨까. 신들메를 바꿔 매면서 느낀 것이 호기심 충족이었다. 이 가을 나의 소확행은 호기심으로 수렴되는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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