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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근식

시인

하얀 국화를 바라보고 있습니다. 할머니의 옛날이야기 같기도, 벤치에 앉은 노부부의 귓속말 같기도 한 국화꽃이 하나 둘 꽃잎 떨구고 있어요. 아주 짧은 시간 눈 한 번 감았다 떴을 뿐인데 저렇게 꽃잎 떨어져 있습니다. 살면서 잊고 싶은 것 많아서인지 허공의 시간에서 스스로를 지우는…….막 또 하나 꽃잎이 떨어집니다.

때론 그럴 때 있습니다. 가끔 세상에서 나를 지워 버리고 싶을 때 있습니다. 의자에 등 기대고 눈 감고 세상의 풍경에서 나를 삭제하면 서서히 세상의 시간에서 나도 지워지겠죠· 그래도 여전히 세상의 시계는 돌아가고 내일은 또 오늘이 되겠지요? 그렇게 오늘이 또 오늘이 계속 돌아오면 꽃잎 떨어진 자리 새살로 돋은 하늘처럼 우리 살면서 오늘이 만든 상처에도 새살이 돋을까요?

오늘따라 아침에 걸치고 나온 옷의 무게가 종일 지켜온 침묵보다 무겁네요. 세상을 향해 꼭꼭 닫아 두었던 마음 속 내가 서있는 길이 섬처럼 떠있고 한발 디딜 때마다 생기고 없어지던 섬들이 썰물에 부표처럼 흔들립니다. 가만히 있어도 어디론가 흐르던 길도 몇 시간째 그대로 떠있고 때때로 요란한 손 전화 벨소리가 정지된 생각을 흔들지만 생각과 생각사이 팽팽한 적막은 좀처럼 깨지지 않습니다.

얼마 전 뭐가 그리 급했는지 64년의 생을 서둘러 정리하고 떠난 친구가 생각의 발목을 잡는 저녁나절 나는 아직 지워지지 않은 그의 시간을 물끄러미 바라보고 있습니다.

"문대표 코로나 예방주사 맞았는데 당분간 조심해 무리하지 말고, 이상하면 바로 병원가고……."

친구가 쓰러지기 전날 커피를 마시면서 나눈 한 시간여의 대화 중 그가 나에게 한 마지막 말. 그와 나의 시간에서 서로를 지운 말, 그렇게 그는 세상의 시간에서, 나의 시간에서 스스로를 지웠습니다. 하지만 섣불리 나의 시간에서 그가 지워지지 않습니다. 생각과 생각 사이 그리고 과거의 시간과 시간의 갈피에 숨겨진 기억들이 자꾸 가슴에서 재생되고 있습니다.

이제 저렇게 꽃들에 둘러싸여 웃고 있는 그를 보면서 수십 년을 함께한 아내에게 아이들에게 잘 있으라는, 고생했다는 더불어 행복했다는 말 한마디 건네지 못하고 간 친구를 생각하면서 "고생했어. 그곳에서는 고통 없이 잘 살아라" 이런 두어 마디의 말과 사뭇 슬픈 표정 그리고 이 두 번의 절로 나의 시간에서 그도 지워지겠지요.

생각해보면 사는 게 늘 그랬던 것 같아요. 사는 동안 그 많은 아픔과 슬픔과 기쁨의 시간들이 얼룩이 되고 무늬가 되고 추억이 되었듯 오늘의 시간도 머지않아 나의 기억에 작은 무늬로 남겠지요. 우린 또 그렇게 다가오는 낯선 오늘에 점점 익숙해져 가고요. 그래야 살아남을 수 있으니까요. 그래서 친구야 너를 위한 아니 나를 위한

이 짧은 시로 나의 시간에서 너를 지운다.

오늘 나의 하루가 얼마나 길었는지 모를 거다.

아니 관심도 없을 거다.

상관없다

그냥 나의 하루는 나 혼자 길면 그만이다

지루한 나의 시간에 잡음처럼 끼어드는

세상의 시간

잠시 높게 흔들리다가 또 잠잠해지는

술잔 속 파도

혼자, 묵묵히, 그냥, 조용히, 쥐죽은 듯, 남몰래

그 짓만 되풀이하면 되는 거다, 그래서

오늘도

서로에게 관심 없는 세상을 위해

너를 위해

한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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