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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근식

남영환경컨설팅 대표

그때, 내가 두 팔을 벌려 둘레를 재도 모자라던 동네 어귀 느티나무 그루터기에 앉아본다. 동그란 나이테에 갇혀 있던 기억들이 소용돌이치며 실핏줄을 타고 올라온다. 후끈 온몸이 달아오른다. 엷은 어둠이 발등에 내려앉고 멀리서 기차 소리가 높은 등고선을 넘는다. 유년이 꼿꼿이 재생된다.

저녁이 되면 나는 종종 이 느티나무 밑에서 어둠을 기다리곤 했다. 꼭 어둠 때문만은 아니지만 그래도 느티나무에 기대어 어둠에 지워져 가는 마을을 바라보는 것은 하루 중 가장 소중한 일이었다. 살 어둠 사이로 저녁연기가 오르고 연기 끝에는 늘 어머니의 구수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어머니가 종일 쌓인 피로를 내려놓으시고 하루만큼 굳어진 허리를 펴시는 시간이다.

마을에 전기가 들어오기 전에는 놀 거리가 별로 없었다. 밤이면 호롱불 밑에 둘러앉아 어머니는 육 남매를 순서대로 무릎에 누이고 귓밥을 파 주셨고. 우리는 그 시원함이 만들어 주는 행복감과 가슴 깊이 젖어드는 어머니의 살 냄새에 스르르 잠에 빠져들곤 했다. 아랫목 이불 속에는 하얀 쌀밥이 가득 담긴 밥그릇이, 화로 위에서는 된장찌개가 아직 귀가하지 않은 아버지를 기다리며 끓고 있었다.

아버지는 초등학교 교사였다. 종종걸음으로 40분은 걸어야 도착할 수 있었던 시골 초등학교를 아버지는 자전거를 타고 출퇴근을 하셨고 유난히 술을 좋아하시던 아버지는 하루걸러 자전거를 끌고 오셨다. 그때마다 우리는 아버지 마중을 나갔다. 눈을 감고도 걸을 수 있는 익숙한 길이지만 열한 살 우리에게 어둠에 싸인 시골길은 무서웠다.

조금만 더 조금만 더 두려움 누르고 가다 보면 어느새 아버님이 단골로 이용하는 학교 앞 대포 집앞 "목숨보다 더 귀한..." 늘 그랬듯 우리는 노랫가락이 들리는 쪽을 향해 아버지를 불렀다. "아버지..... 아버지이~~"

아버지는 곧바로 자전거를 챙겨 나오셨다. 늘 머뭇거림이 없으셨다. 당신의 자식들이 어른이 걸어도 무서울 어두운 길을 걸어 예까지 마중 나온 것이 마음에 걸려서 일게다. "가자!" 어둠 속 아버지의 손은 따스했다.

아버지가 저녁을 드시는 동안 우리는 밥상에 빙 둘러앉았다. 어른이 식사하는 동안 누워 있으면 안 된다는 어머니의 가르침이 있기는 했지만 실상 그 가르침은 뒷전이고 마음은 엉뚱한 곳에 있었다. 하얀 쌀밥에 구수한 된장찌개 그리고 계란찜이 차려진 아버지의 저녁상이다. 아버지는 절반도 드시지 않고 수저를 놓으셨다. 우리는 한꺼번에 달려들어 순식간에 아버님이 남긴 쌀밥에 겨란찜을 먹어치웠다.

지금 내게 그때 기억이 오롯이 남아있는 것은 밥과 반찬이 맛있어 서만은 아니다. 당신만 쳐다보는 자식들의 눈을 보고 차마 밥이 넘어가지 않아 당신의 배도 채우지 못하고 숟갈을 놓으셨을 아버지의 힘겨운 살이가 지금에야 느껴졌기 때문이다. 그때 생각 없이 삼켰던 아버지의 허기가 지금 내 속을 채우고 있기 때문이다.

난 어둠을 좋다. 그래서인지 내 유년의 기억을 더듬어 가면 그 중심에는 늘 어둠이 있다. 아프지만 소중한 유년을 기억하고 있는 어둠, 그리고 아버지의 애창곡 (제목은 나중에 알았지만) 그 노래가 좋다. 늦은 저녁 야근을 끝내고 집에 가는 차 안에서 종종 불러보는 그 노래, 중간 중간 가사가 끈기기는 하지만 그때마다 아버지의 그 꼿꼿하시던 모습이 떠올라 슬프지만 행복하다.

자리에서 일어난다. 느티나무 잘려나간 밑동, 나이테 하나하나 짚어 본다. 나이테마다 아버지의 낡은 자전거 소리가 들린다. 살어둠 짙어지는 시간 아버지는 어느 별로 자전거를 끌고 가실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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