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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근식

남영환경컨설팅 대표

언뜻 잠을 깼습니다.

근거를 알 수 없는 허전함이 새벽 두 시의 창을 두드립니다. 감나무 가지에 남아있는 달빛 사이로 이른 후후새 소리가 바스락바스락 마음의 틈을 비집고 있습니다. 늦도록 당신을 생각하다 잠이 든 밤, 밀려오는 그리움에 또 선잠을 깼습니다.

어제는 고향집에 갔습니다. 마당 가장자리 담장 밑에 당신이 심어놓은 개나리가 만발했습니다. 아내가 꽃잎 몇 개를 땄습니다. 노랗게 물든 아내의 손을 보며 한동안 당신 생각에 또 잠을 설치겠지요. 자꾸 가슴을 파고드는 그리움이 늦도록 불면의 밤을 함께하고 있습니다.

"어이 문 계장"

"저녁 먹었는가?"

오래 병석에 계신 이후 부쩍 말씀이 많아지신 당신, 당신의 야윈 손을 잡을 때마다 긴 생의 허기를 느끼곤 했습니다. 한 번도 당신의 허기는 걱정해 본 적 없어 늘 비어 있던 당신, 그렇게 당신의 곳간이 비어가는 줄 모르고, 앙상하게 말라가는 줄도 모르고 나는 무심코 나의 공복을 채웠습니다.

깊은 밤 후후새 소리 슬프게 지나간 자리 고요가 몰려듭니다. 텅 빈 가슴, 고요만 가득한 당신의 빈자리에 또 알 수 없는 그리움이 어둠속에 뿌리를 내립니다. 문득 무언의 대화가 수없이 오갔던 당신의 싸늘한 손이 그리워집니다,

지금은 세상이 모두 잠든 밤입니다. 텅 빈 가슴에 그리움이 꼬리에 꼬리를 물고 지나가고 점점 깊어지는 외로움은 당신이었습니다. 달빛으로 집안 곳곳을 정리했습니다. 책장 서랍에 손수 적어두신 아들들의 전화번호, 그리고 아직 사용기간이 남아있는 약봉지, 집안 구석구석 온통 당신께서 만들어 놓은 흔적들, 누워도 눈을 감아도 자꾸 재생되는 기억, 어쩌면 모두가 슬픔에 닿아 있는지요. 알겠습니다. 그리움은 슬픔이라는 걸. 생은 슬픔에 맞닿아 있다는 걸, 이 불면의 그리움도 당신이 내게 남긴 슬픈 생의 흔적이라는 걸…….

문득 구석구석 채워진 어둠에서 점점 선명해지는 당신의 숨소리를 듣고 있습니다. 숨소리에 촉촉하게 젖어드는 눈동자는 못내 놓지 못한 인연의 끈이겠지요. 당신의 흔적 무엇 하나 아프지 않은 것이 없습니다. 그립지 않은 것이 없습니다. 하지만 이제 당신은 슬퍼하지 마세요. 그 슬픔 제가 이렇게 견디고 있으니까요.

"식사는 많이 하셨어요?" "어." "복숭아 좀 드셔요." "안 먹어." "춥지는 않아요?" "난 괜찮아." 늘 단답형 대화를 하시면서도 잡은 손을 놓지 않으시던 그 아쉬움의 몸짓, 텅 빈 가슴을 엄습해오는 고독과 외로움 그 외로움을 조금이라도 아들에게 기대고 싶은 심정 알면서도 더 꼭, 더 오래 손을 잡아드리지 못하고 방을 나선 내가 오늘 이렇게 미울 수가 없습니다.

언젠가 계단에서 "근식아 나 좀 업고 가라." 부탁하신 아버지께 "아버지 저도 환자예요. 아버지와 똑같이 심장 수술을 했다고요." 그 말에 고개를 떨구시던 당신, 그렇게 한동안 말이 없으시던 아버지,

이제 업을 수도, 손을 잡아 드릴 수 없기에 발버둥 쳐도 벗어날 수 없는 이 후회의 시간. 아버지 오래 안아드리지 못해 죄송합니다. 가시는 길 지켜드리지 못해 죄송합니다. 눈물조차 부끄럽지만 당신과 함께한 53년 행복했습니다. 다시 세상을 살 수 있다면 저는 또 당신의 아들로 살겠습니다.

언 듯 달빛이 비껴가는 창문너머로 금방이라도 야윈 손을 흔들며 나타나 줄 것 만 같은 당신 그립습니다. ·보고 싶습니다.

아버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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