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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근식

시인

깜박 잠이 들었을까.

달달달 맷돌 돌아가는 소리가 들린다. 아침나절 물에 불려둔 메밀을 어머니께서 갈고 계셨다. 커다란 대야에는 불려놓은 메밀이 가득했다. 서너 시간의 긴 침묵을 견디고서야 도저히 줄어들 것 같지 않던 메밀이 어머니의 마지막 숟가락을 떠났다.

"팔 아프지?"

힘이 들어서 왼팔 오른팔을 번갈아 돌리던 나에게 한 손으로는 맷돌을 돌리고 다른 한 손으로는 메밀을 떠 넣으시던 어머니의 그 짧은 말 한마디가 힘겹게 돌아가는 맷돌을 타고 세월의 눈물보다 슬프게 떨어지고 있었다.

중학교 1학년 때쯤인 것으로 기억난다. 저녁 무렵 우연한 기회에 어머니와 팔씨름을 한 적이 있었다. 두 세 번 연거푸 지면서 어머니가 나의 든든한 울타리라는 걸 확인하던 날, 한참을 지나 그 울타리가 온전히 어머니의 땀과 고통으로 만들어진 것이라는 걸 알게 된 날, 그날도 어머니는 당신이 만든 세상의 울타리 밖에 서 계셨다.

오늘도 어머니가 만들어놓은 그 울타리 안에서 지난 시간을 돌아보고 있다. 그리움이다. 그리움은 늘 한가한 시간에 찾아온다. 그때마다 아내에게 메밀 부침개를 부탁해 보지만 그때 그 맛은 아니다. 고통과 이야기 그리고 땀방울을 섞어 빗어 낸 이 세상 누구도 재현할 수 없는 그 맛, 어머니의 허기가 만들어낸 손맛이다.

이제 조금은 알겠다. 자식들을 위해 허기진 팔로 맷돌을 돌리던 어머니, 기억조차 희미해 져가는 어머니의 야윈 손을 잡을 때마다 긴 생의 허기를 느끼곤 했지만 한 번도 어머니의 허기를 걱정해 본 적 없어 늘 비어 있었을 어머니의 가슴, 고요만 가득한 그 자리에 알 수 없는 슬픔이 겹겹 뿌리를 내린다. 문득 무언의 대화가 수없이 오갔던 어머니의 따스한 손이 그리워진다, 알겠다. 그리움은 슬픔이라는 걸. 생은 슬픔에 맞닿아 있다는 걸, 이 슬픔도 어머니가 내게 남긴 소중한 그리움의 한 조각이라는 걸….

우연히 골동품 가게 앞을 지나다 아무렇게 버려진 맷돌을 발견했다. 문득 어머니 생각이 난다. 다가가 어처구니를 잡았다. 그때 어머니와 수없이 나누었던 이야기들이, 손을 통해 전해오던 따스한 온기가 재생된다. 기억 속 앞마당 감나무에서 참매미가 울어댄다….

난 어린 시절을 보낸 시골이 좋다. 그래서인지 내 그리움을 더듬어 가면 그 중심에는 늘 그곳이 있다. 아프지만 소중한 유년을 기억하고 있는, 그리고 어머니가 땀과 고통으로 만들어준 내 든든한 울타리가 있는. 아픈 팔을 참아가며 우리의 울타리를 만들기 위해 맷돌을 돌리던 유년의 어머니가 계신 그곳, 늦은 저녁 집으로 돌아가는 길 종종 핸들을 돌려 단숨에 달려가는 그곳, 오늘도 어둠 속에서 이제는 사라져 버린 어머니의 울타리를 확인하고는 밑동만 남은 유년의 느티나무에 걸터앉아 가만히 불러보는 어머니.

"근식아 팔 아프지?" 그 짧은 한마디가 아득한 시간의 도화선을 넘어와 이명처럼 남아있다. 늦은 시간이지만 오늘은 어머니를 찾아봬야겠다. 그래서 아직 못다 한 이야기, 한 번도 하지 못했던 이야기, 하고 싶었던 이야기 모두 해 드려야겠다. 더 늦기 전에. 오래된 집의 지붕 위에 서서 나를 기다리는 어머니 같은….

지붕 위에 개망초 하나

솟대처럼 서 있다

사랑은 저렇게 목을 빼고도

모자라는 것

망초 흔들릴 때마다

문 여닫는 소리

아직 눕지 못하고

하늘 고스란히 견디고 섰는

저 기둥

어머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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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경순 인구보건복지협회 세종충북지회장 인터뷰

[충북일보] 지난 1961년 출범한 사단법인 대한가족계획협회가 시초인 인구보건복지협회는 우리나라 가족계획, 인구정책의 변화에 대응해오며 '함께하는 건강가족, 지속가능한 행복한 세상'을 위해 힘써오고 있다. 5월 가정의 달을 맞아 조경순 인구보건복지협회 충북세종지회장을 만나 지회가 도민의 건강한 삶과 행복한 가족을 지원하기 위해 하고 있는 활동, 지회장의 역할, 앞으로의 포부 등에 대한 이야기를 들어 봤다. 조경순 지회장은 "인구보건복지협회 충북세종지회는 지역의 특성에 맞춘 인구변화 대응, 일 가정 양립·가족친화적 문화 조성, 성 생식 건강 증진 등의 활동에 앞장서고 있다"고 설명했다. 그는 자신의 33년 공직 경험이 협회와 지역사회의 협력 네트워크를 강화하는 일에 도움이 될 것으로 내다봤다. 충북도 첫 여성 공보관을 역임한 조 지회장은 도 투자유치국장, 여성정책관실 팀장 등으로도 활약하고 지난 연말 퇴직했다. 투자유치국장으로 근무하면서 지역의 경제와 성장에 기여했던 그는 사람 중심의 정책을 통해 충북과 세종 주민들의 행복한 삶과 건강한 공동체를 만드는 일에 참여할 수 있다는 점에 비상임 명예직인 현재 자리로의 이동을 결심했다고 한다. 조 지회장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