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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근식

남영환경컨설팅 대표

내 기억들 모두 깨워도 맞출 수 없는 퍼즐 하나가 있다. 다섯 살 듬성듬성 사라진 기억의 퍼즐. 단양군 대강면 황정산 자락의 작은 마을에 대한 기억이다.

집 앞에는 넓은 개천이 흐르고 냇가 여기저기에는 널 바위가 있었다. 햇볕 따스한 날 거기 한 여자 아이가 서 있다. 얼굴도, 이름도, 사는 곳도 알지 못하는 그 아이. 무엇인가 놀이를 했을 테지만 딱히 기억나는 것도 없다. 다만 이유를 알 수 없는 기억 한 조각이 퍼즐의 한 조각으로 남아 있을 뿐이다. 어쩌다 그 곳에 살았다는 사람을 만나면 그 아이의 소식을 물어 보곤 하지만 아이의 소식을 아는 사람은 없다.

그렇다고 다른 기억이 아주 없는 것은 아니다. 엷은 어둠 속에 서있는 나의 모습과 무섭고 두려웠던 생각, 기억이 선명한 두 번째 퍼즐이다. 나중에 알았지만 동생이 태어났는데 집에는 다섯 살 박이 나 밖에 없었단다. "근식아 엄마 아파 죽을 것 같으니까 뒷집에 가서 어른 좀 불러다 주렴" 어머니는 집에서 100미터 쯤 떨어진 뒷집에 심부름 보내셨단다. 반신반의 하시면서 지푸라기 같은 희망을 잡으셨을 어머니

지금도 어머니께서는 가끔 그 때 일을 회상하시면서 "네가 없었으면 엄마와 네 동생은 죽었을 지도 모르지 네가 살렸어"라고 말씀을 하신다. 그 날 당신께서 죽을 수 도 있다고 했던 말씀이 어쩌면 다섯 살 작은 아이의 가슴을 어둠보다 더 무겁게 짓눌렀을 것이다. 그로 인해, 그 무서움이 지금까지 기억되고 있는 것은 아닐까· 정확한 근거는 없지만 가끔 들려주시는 어머님의 후일담을 바탕으로 내 기억속의 어둠과 무서움 그리고 상상력을 동원하여 유일하게 완성한 단 하나의 퍼즐이다.

그 외에는 성황당 느티나무 아래에서 아버지가 사주신 세발자전거를 타고 놀던 일, 그리고 검둥이가 넓은 내를 헤엄쳐 건너던 일, 마당에 불쑥불쑥 솟아있던 돌부리가 내 퍼즐의 전부이다. 물론, 내 다섯 살의 공간을 빼곡하게 채운 사연과 사람들이 있었을 테지만 지천명을 보낸 지금 기억이 나지는 않는다.

얼마 전 비어있는 기억의 퍼즐을 완성할 수도 있다는 생각에 그곳을 찾았다. 두근거리는 가슴을 쓸어내리며 도착한 그 곳, 아무리 둘러보아도 내 기억을 내려놓을 만한 흔적은 없었다. 넓고 깨끗했던 하천은 매립되어 논이나 밭으로 변해있고, 나무가 울창하던 산비탈에는 축사가 들어서있다. 집은 허물어지고 마당에 돌부리도 찾아볼 수 없었다. 돌아서 오는 길 이 기분은 무엇일까· 애써 간직한 아름다운 추억 몇 개가 지워져 버린 것 같은 허허로움. 오지 말걸… 후회가 끝없이 밀려온다.

그리움은 상상에 가깝다. 상상은 쉽게 깨어지는 사기그릇 같다. 가슴저리도록 그리운 사람이 있다면 그것은 오래 만나지 못했거나 만날 수 없기 때문이다. 상상 속 그리움이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추억은 확인하는 것이 아니다, 간직하는 것이다.

이제 그 아이는 내 다섯 살의 마지막 남아있는 퍼즐이다. 다시는 확인하지 말아야지. 듬성듬성 빈 상태로 온전한 내 다섯 살의 기억들을 그리워만 해야지. 이제 밤새워 잃어버린 그리움의 퍼즐은 지우고 지워진 자리에 아주 작은 풀꽃 하나를 심어야지. 그 꽃이 자라 아이가 되고 소녀가 되고 또 엄마가 되고 할머니가 되면, 그 때쯤 저 빈칸 어디에서 배회하고 있는 그녀의 뒷모습이 얼핏 내 기억의 끝자락을 스치기도 하겠지. 지워진 퍼즐의 조각들이 때로는 꿈속에 나타나 잠을 깨우고 나를 불면의 긴 밤을 방황하게 하겠지, 그러면 나는 퍼즐의 빈 칸에 엎드려 오래 슬픈 꿈을 꾸겠지.

그 곳은 내가 사는 충주에서 자동차로 1시간거리에 있다. 난 가끔 그 곳에 가고 싶은 충동이 일지만 꾹꾹 눌러 참는다. 추억은 추억인체로, 그리움은 그리움 그대로 남겨두기로 했다. 맞추어도 맞추어도 늘 비어있는 다섯 살의 퍼즐 빈 칸에 내 그리움을 마음껏 끼워 넣을 수 있기 때문이다.

알겠다. 추억은 확인하는 것이 아니라 간직하는 것이라는 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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