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기사

이 기사는 0번 공유됐고 0개의 댓글이 있습니다.

문근식

시인

차 한대 지나갑니다.

또 한대가 지나갑니다.

차들은 하루의 중심을 지나 자정을 향해 질주하고 있습니다. 그렇게 수백 번의 자정이 지나가고 이제 달랑 몇 십번의 자정만 남겨놓고 있습니다. 참 다사다난했던 한해가 그렇게 또 저물고 이제 새로운 한해를 준비할 때입니다.

우리는 그렇게 살면서 수많은 사연으로 가득한 장편소설처럼 한장 한장 시간의 백지를 메워가지요. 도무지 알 수 없는, 아무도 제시해주지 않는 방향과 어디에도 없는 길을 따라 누구와도 동행하지 않는 혼자만의 여행, 그렇게 한장 또 한장 나만의 장편소설을 써내려가고 있습니다.

이제 신축년 한 장의 원고지에 써내려온 사연을 마무리하고 페이지를 넘길 시간, 얼마 남지 않은 시간이지만 몇 번째 1년 365일의 삶을 퇴고 하는 중입니다. 바쁘게 때론 힘겹게 한해를 보내면서 채워진 기쁘고, 슬프고, 아프고 또는 즐거웠던 사연들 하나하나 되짚어보면서 다시 시작되는 또 한 장의 페이지는 좀 더 뜻있고, 행복하고, 아름다운 사연들이 채워 질 수 있도록 기도하는 마음으로 남은 흰백의 공간을 오래 바라보고 있습니다.

오늘따라 지금껏 써내려온 긴 시간의 분량보다 얼마 남지 않은 분량의 시간이 소중하게 느껴지는 이유는 무엇일까요. 아픔이든 슬픔이든 외로움이든 지난 것은 다 아름답고 그립다고는 하지만 그래도 뒤를 돌아보는 시간이 많아진 지금 만져지는 채워야 할 빈 공간의 페이지가 도무지 얇기만 합니다. 그래도 누군가에게는 영원히 채우지 못하고 남아 있을 이 빈 공간을 채울 시간이 내게는 남아 있음이, 작지만 그렇게 채워야할 공간이 아직 남아 있음이 행복이라는 걸 알기에 이 소중한 시간이 더 아쉽기만 합니다.

홀로 사무실 책상에 앉아 이미 저물어가는 창밖을 보면서 또 오래전의 페이지를 뒤적거립니다. 잋혀졌던 기억이 재생되고 문득 할아버지와 할머니와 오래전 세상을 떠나신 아버지의 모습이 보입니다. 내가 취업을 했다고 기뻐하시면서 까만 도장을 새겨 선물로 주시던 아버지, 그 도장을 바른 곳에만 쓰라고 당부하시던 목소리 아직 생생한데 하루는 또 자정을 향해 가고 있습니다.

또 내일이 오겠지요?

그러면 내일은 또 오늘이 되고 오늘은 어제가 되겠지요? 그렇게 어제와 오늘과 내일이 계속되는 시간의 굴레에서 수없이 많은 어제와 오늘과 내일을 보내면서 나는 늘 오늘의 시간에 머물러 있었지만 지천명이 지난 지금은 마음 저 깊이 가라앉아 있는 어제 그 수없이 많은 어제의 시간들이 오늘의 시간 절반을 차지하고 있습니다.

생각해 보면 오늘은 늘 너무 빠르게 지나갔어요. 아니 나는 언제나 오늘에 머물러 있었지만 지금도 오늘에 머물러 있지만 내가 보내지 않은 오늘의 시간들이 시시각각 어제가 되고 있어요. 내일이 시시각각 지워지고 있어요. 산다는 건 내일이 어제가 되는 것이라는 거, 어제는 모두 그리움이 된다는 거

신축년 12월 초

이제 알 것 같아요.

오늘 난 아직 그립지 않은 일들의 경계에서 그리움에 덧칠을 하고 있다는 걸, 훗날 내가 돌아볼 슬픔에 그리움을 덧칠하고 있다는 걸. 그리고 아직은 미완인 내 긴 아주긴 장편 소설의 아름다운 마무리를 위해 아직도 많은 슬픔의 시간을 견뎌야 한다는 걸.
이 기사에 대해 좀 더 자세히...

관련어 선택

관련기사

배너
배너
배너

랭킹 뉴스

Hot & Why & Only

실시간 댓글

배너
배너

매거진 in 충북

thumbnail 308*171

충북일보가 만난 사람들 - 단양교육지원청 김진수 교육장

[충북일보] 몇 년동안 몰아친 코로나19는 우리 나라 전반에 걸처 많은 염려를 낳았으며 이러한 염려는 특히 어린 아이들에게 실제로 학력의 위기를 가져왔다. 학력의 저하라는 위기 속에서도 빛나는 교육을 통해 모범 사례로 손꼽히는 단양지역은 인구 3만여 명의 충북의 동북단 소외지역이지만 코로나19 발 위기 상황에서도 잘 대처해왔고 정성을 다하는 학교 지원으로 만족도도 최상위에 있다. 지난 9월 1일 자로 단양지역의 교육 발전에 솔선수범한 김진수 교육장이 취임하며 앞으로가 더욱 기대되고 있다. 취임 한 달을 맞은 김진수 교육장으로부터 교육철학과 추진하고자 하는 사업과 단양교육의 발전 과제에 대해 들어 본다. ◇취임 한 달을 맞았다, 그동안 소감은. "사자성어에 '수도선부(水到船浮)'라는 말이 있다. 주희의 시에 한 구절로 강에 물이 차오르니 큰 배도 가볍게 떠올랐다는 것으로 물이 차오르면 배가 저절로 뜨더라는 말로 아무리 어렵던 일도 조건이 갖춰지면 쉽게 된다는 말로도 풀이할 수 있다. 교육장에 부임해 교육지원청에서 한 달을 지내며 교육장의 자리가 얼마나 막중하고 어려운 자리인가를 느끼는 시간이었다. 이렇게 어렵고 바쁜 것이 '아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