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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봉표 전무와 함께하는 유럽여행 - 모든 길은 로마로 통한다 上

'지중해의 보석' 수상도시 베니스의 매력속으로 '풍덩'

  • 웹출고시간2011.09.22 18:06:14
  • 최종수정2015.01.16 11:31:39
스위스가 자연경관을 즐기는 여행지라면 이탈리아는 주로 역사 관광 코스다.

하지만 유물만이 관광의 전부가 아니다. 찬란한 역사의 흔적이 곳곳에 살아 숨쉬고 있는가 하면, 현대의 첨단 패션과 유행을 조화롭게 발전시키는 나라다. 그래서 이 곳을 찾는 여행자라면 누구나 유서깊은 역사의 향기와 남국의 강렬한 태양, 지중해의 상쾌한 바람, 산타루치아의 감미로운 선율에 빠져들고 만다.

연장17km터널을 지나 이탈리아로 향하는 차들의 모습

스위스에서 이탈리아로 넘어가기 위해서는 유럽 본토에서 가장 긴 장장 17km의 터널을 지나야 한다. 터널 안에서 추돌이 알어나면 대형사고로 연결되기 때문에 차간 거리를 어느 정도 일정하게 유지하기 위해 터널 진입 전에 신호등을 달아 출발시간을 인위적으로 조정해 준다.

터널을 약 20분 정도 달렸을까. 하루 종일 찌푸렸던 하늘이 터널을 나오는 순간 맑게 개였다. 아직 스위스를 벗어난 건 아니지만 알프스 자락을 빠져 나오니 온화한 지중해의 바람이 햇살과 함께 부드럽게 피부에 다가왔다.

고속도로를 달리다보니 'MILANO 100km' 표지판이 눈에 들어온다. 예부터 '모든 길은 로마로 통한다'고 했던가. 국경에서 밀라노로 연결되는 A8번 고속도로를 계속 타고 가다 보면 로마로 들어가는 A1 고속도로와 연결된다.

어느 새 버스는 알프스 자락을 완전히 벗어나 드넓은 이탈리아 북부의 평야지대를 달리고 있다. 여행 첫 날부터 버스를 운전해온 로마 출신 기사는 출장 엿 새 만에 자기 나라 땅에 들어서서인지 얼굴에 생기가 돈다.

밀라노로 들어서니 시내 교통 상황이 우리의 서울 뺨치게 혼잡하다. 길게 사람들이 줄을 서 있어 보니 축구경기를 보러 모인 시민들이다. 프로 축구의 인기가 높은 이유를 알 것 같다.

배가 출출할 때 쯤 식당으로 들어섰다. 이탈리아에 왔으니 정통 피자와 스파게티를 맛봐야겠다는 기대를 했으나 좀 실망스러웠다. 크기와 양은 '슈퍼급'인데 너무 짜서 일행 대부분이 절반은 남겼다.

로마가 이탈리아의 정치적 수도라면 밀라노는 경제수도 역할을 한다. 그래서 그런지 빌딩, 차량, 공장 등이 눈에 많이 들어왔다. 두오모로 불리는 아름다운 건축물과 음악가들의 꿈의 무대인 스탈라 극장이 위치한 곳이요, 페라리와 람보르기니 등 이탈리아 고급 브랜드의 본사가 밀집해 있는 부유한 도시다.

저녁을 먹고 호텔에 여장을 푼 다음 시내 나이트 투어에 나섰다. 우선 밀라노의 심장부인 두오모 광장으로 향했다.

그 곳에서 목격한 두오모 대성당은 놀라움 그 자체다. 우선 어마어마한 성당의 크기(바티칸에 이은 세계 두 번째)에 놀라고, 건축재료가 모두 돌덩이(대리석)인데 놀라고, 하늘을 찌를 듯 지붕 위 100m 높이로 솟은 135개의 유리 첨탑과 3,000개가 넘는 입상 조각들이 성당 외벽의 대리석에 새겨져 있는데 또 한 번 입이 벌어진다.

14세기 말 비스콘티 공작의 감독 아래 공사가 시작돼 18세기 나폴레옹에 의해 완성된 고딕 양식의 걸작품이다.

두오모 성당 앞에는 밀라노 시 당국의 계획 아래 1862년 조성된 두오모 광장이 있어 수많은 시민과 여행자들의 휴식 공간으로 활용되고 있다.

비토리오 에마누엘레 2세 갈레리아 천장

광장 한 켠을 가로 질러서는 비토리오 에마누엘레2세 갈레리아(갤러리) 건물이 여행객들에게 손짓한다. 13년의 공사기간을 거쳐 1877년 완공된 이 아케이트는 유리로 장식돼 자연채광이 되는 둥근 천정과 모자이크로 시공된 바닥이 절묘한 조화를 이루고 있다.

통로 양 쪽엔 분위기 좋은 카페와 레스토랑 등이 있고 그 옆엔 밀라노에서 가장 큰 백화점이, 2층엔 세계의 내놓라 하는 기업 사무실들이 입주해 밀라노 경제를 좌지우지한다.

아케이트를 따라 반대편 출구로 나가면 그 유명한 스칼라 극장이 나온다. 1778년 '산타마리아 델라 스칼라 교회'를 헐고 세운 오페라 전용 극장으로 제2차 세계대전 때 연합군 공습으로 파괴됐다가 1946년 복원돼 토스카니니 지휘의 콘서트로 문을 열면서 다시 유명세를 타기 시작했다.

19세기 이후 베르디의 '오베르트'를 비롯해 푸치니의 '나비부인' 등 많은 오페라가 초연됐으며 우리나라의 정명훈씨나 조수미씨 등도 이 곳에서 실력을 인정받았다. 비록 외관은 단순하지만 3,000명을 동시에 수용할 수 있는 내부는 붉은 카펫과 화려한 상들리에 등으로 치장돼 무척 고급스럽단다.

다음 날 아침 식사를 마치자 마자 물의 도시 '베니스(베네치아)'로 이동했다. 전쟁을 피해 모인 사람들이 바다 밑 뻘을 메워 118개의 작은 섬을 운하(177개)로 연결해 조성한 이 섬은 중세 때 지중해와 콘스탄티노플까지 장악하며 동방무역을 독점했다.

특히 1204년 십자군 원정을 이 곳에서 시작해 막대한 부를 축적하면서 14세기까지 이탈리아 최강의 국력을 과시했다. 그런 이탈리아 반도의 막강한 도시국가 베니스는 이제 최고의 관광도시 중 하나가 돼 오늘날 세계의 관광객을 불러 모으고 있다.

물 위의 섬 베니스로 들어가기 위해서는 선착장에서 페리를 타고 약 20분 정도를 이동해야 한다. 섬에 올라서면 전 세계에서 모인 사람들로 북새통이다. 소매치기도 조심해야 한다.

관광은 걸어서 다니는 코스와 베니스를 대표하는 낭만의 상징 '곤돌라'를 타고 좁은 운하를 도는 코스, 수상택시로 대운하 주변을 감상하는 코스 등이 있다. 내친 김에 이 세 가지를 모두 선택했다.

135개의 첨탑지붕이 인상적인 대리석 건축

베니스에 가면 꼭 봐야 할 게 몇 가지가 있다. 우선 산마르코 성당과 산마르코 광장이다. 산마리코 성당은 베네치아의 상징이라고 해도 틀리지 않을 만큼 유명한 곳. 828년 창건된 이 건물은 화재로 유실됐다가 1063년부터 10년에 걸쳐 지어졌다. 로마네스크 양식과 비잔틴 양식이 혼합된 사원으로 바깥 둘레가 330m에 이르며 정면에서 바라보면 지붕에 5개의 대형 반원형 뚜껑과 그 위의 많은 첨탑들이 눈길을 끈다.

나폴레옹이 '세계에서 가장 아름다운 응접실'이라고 격찬했다는 산마르코 광장은 산마리코 성당 이외에도 두칼레 궁전과 박물관 등 볼거리가 몰려 있는데다 수많은 비둘기 떼와 노천 카페의 라이브 음악이 있어 항상 붐비는 곳이다. 1720년 개업해 바이런, 괴테, 바그너 등이 단골로 찾았다는 '카페 플로리안'은 이곳의 명물이다.

탄식의 다리도 꼭 봐야 한다. 운하를 사이에 두고 두칼레 궁전과 프리지오니 감옥을 잇는 이 다리는 중죄인들이 한 번 건너 감옥으로 가면 다시는 햇빛을 볼 수 없다고 해서 붙여진 이름으로 카사노바도 이 다리를 건넜다고 한다.

물 위에 건설된 탓에 베니스는 섬 전체가 조성 당시보다 수십 센티미터 내려앉았다고 한다. 실제로 지반 침하로 산마리코 광장 앞을 지나다보니 광장 바닥의 하수구에서 바닷물이 역류하는 게 목격됐다. 썰물 때가 되면 하루에 두 번 이렇게 바닷물이 솟아 오른다니 세계적인 문화유산이 훼손되는 것 같아 안타깝다.

◇베니스와 운하

곤돌라를 폼 나게 젓는 베니스 청년

베니스에는 100개가 넘는 크고 작은 운하가 흐른다. 그 중 간선도로 역할을 하는 대운하(Grande), 그보다 작은 운하를 카날레 카나레조(C무믿 Canarego), 아주 좁은 운하를 리오(Rio)라고 한다. 이탈리아에서 모든 교통수단은 우측통행이지만 운하를 운행하는 배는 예외적으로 좌측통행이다. 일찍이 곤돌라는 부자 상인이나 귀족들이 힘을 과시하기 위해 크고 호화롭게 꾸몄으나 1562년 공화국 정부의 포고로 현재와 같이 날렵한 형태를 갖추게 됐다. 전성기 때는 1만여대의 곤돌라가 있었다고 하지만 지금은 약 500여척 정도만, 그것도 대부분 관광용으로만 남아 있다. 총길이 3.3km로 시 중심부를 흐르는 대운하는 베니스의 메인 스트리트 역할을 한다. 운하 양 편으로는 화려한 귀족풍의 저택이 늘어서 있어 수상 버스나 곤돌라를 타고 구경하는 것도 하나의 볼거리다.(자료제공:롯데관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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